조선 정조때 독도 영토비 설립 건의

  • 양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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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1 07:37  |  수정 2019-12-11 09:16  |  발행일 2019-12-11 제1면
승정원일기·일성록에 내용 실려
“日 침탈 야욕 대응책 강구한 것”
‘조선, 독도 존재 몰라’연구 반박
20191211

200여년 전 독도에 영토비를 세울 것을 건의했다는 사료가 발견됐다. 조선왕조가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최근 연구결과를 반박할 수 있는 명백한 근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북도 독도사료연구회는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의 정조 17년(1793년) 10월1일자 기사에서 ‘예조정랑 이복휴가 우산도(독도)를 울릉외도(蔚陵外島)라고 칭하고, 이곳에 영토비를 세워 우리 땅임을 증명하자고 건의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승정원일기(사진)에는 ‘울릉외도는 그 이름이 송도(松島)로, 바로 옛날의 우산국입니다.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나무사자로 섬사람들을 겁주어 항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만일 송도에 비를 세워 이사부의 옛 자취를 기술한다면 그 섬이 우리나라 땅임을 증빙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한문으로 적혀 있다. 일성록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실렸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한 승정원에서 취급한 문서·사건을 기록한 일기다. 일성록에는 1760년부터 1910년까지 151년간 국왕의 동정·국정 등이 기록돼 있다.

독도사료연구회 유미림 박사(한아문화연구소장)는 ‘울릉외도’는 독도를 지칭한다고 설명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산국은 동국문헌비고(1770년)에서 울릉도·우산도(독도) 모두 우산국 땅이라고 기록한 것을 근거로 작성됐기 때문이라는 것. 유 박사는 “당시 일본인이 우산도를 松島(마쓰시마)라고 불렀는데, 울릉외도의 이름이 송도(松島)라는 것은 ‘울릉외도=송도=우산도’라는 공식이 성립한다”며 “이복휴가 ‘울릉외도’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우산도가 울릉도의 부속 도서임을 잘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는 이 사료에 대해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도서임을 분명히 나타냈고 일본의 독도침탈 야욕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조선의 왕과 관료가 영유권 확립을 구상한 것은 조선 정부가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서장환 경북도 독도정책과장은 “이는 조선왕조가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최근의 연구를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이라며 “앞으로 연구회가 국내사료 발굴·연구성과를 집적해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연구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양승진기자 promotion7@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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