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나를 찾아줘’ 이영애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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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6   |  발행일 2019-12-06 제43면   |  수정 2019-12-06
“쌍둥이 낳은후 맡은 엄마역할 아이의 심리·감정 좀 더 이해”
“배우로, 아내로, 엄마로 삼박자 균형 잘 맞추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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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은 6년 전 아들 수호를 잃었다. 실종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부부의 일상은 피폐해졌지만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명국(박해준)이 아들을 봤다는 허위 제보를 좇다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다. 남편과 서로 의지하며 힘들게 버텨온 정연은 결국 무너져내린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정연은 실종된 아이가 발견되었다는 지방의 어느 낚시터를 혈혈단신으로 찾아간다. ‘나를 찾아줘’의 정연 역으로 1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이영애의 모습은 파격적이고 강렬하다. 화장품 CF가 만들어준 ‘산소 같은 여자’ 이미지 대신, 헝클어진 머리와 화장기 없는 거친 피부로 관객 앞에 섰다. 그리고 웃음기마저 제거한 절망적인 얼굴로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아이를 잃은 실의와 죄책감, 낯선 곳에 들어서며 시작되는 의심과 불안 등 쉽게 상상하기 힘든 엄혹한 상황을 마주한 그 표정 속에는 복잡미묘한 수만 가지 감정이 오롯이 담긴다. “프레임 안의 공기마저 달라지게 하는 배우”라는 김승우 감독의 말처럼 특유의 아우라를 발산하며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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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현장은 14년 만이다. 공백이 길었던 이유는 뭔가.

“늦게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고 엄마가 되었기 때문에 가정에 집중하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흐른지 몰랐다. 20~30대를 배우로서 온전히 나만 생각하고 지냈다면, 40대는 가족과 아이를 위해서 집중을 하는 시간이었다. ‘대장금’ ‘친절한 금자씨’로 사랑받고 나니 ‘이제 뭘 더 바라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더 좋은 걸 찾다 보면 내 옆에 가족은 없겠구나, 욕심내지 말자 했다. 물론 연기할 생각은 꾸준히 있었다. 좋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엄마나 아내가 아닌 배우의 입장이 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좋은 기회가 찾아오더라도 내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을 계기로 배우로, 엄마로, 아내로, 삼박자의 균형을 잘 맞춰나가고 싶다.”

▶그간 영화 제안이 많았을 텐데 신인감독의 작품을 선택했다. 다소 의외였다.

“대본이 너무 좋았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물론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주인공이라 할 만큼 캐릭터의 밀도가 높았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주제가 분명했고 구성도 잘 짜여 있어 쉽게 읽혔다. 마치 한 편의 좋은 연극 시나리오를 보는 것 같았다. 특히 놀라웠던 건 각본을 쓴 김승우 감독님이 12년 동안 원석을 다듬듯 이 작품에 천착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완성도에 빈틈이 없을 것 같았고, 이런 열정과 의지를 가진 분이라면 충분히 믿고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중의 관심이 큰 만큼 흥행에 대한 부담감도 있을 것 같다.

“결혼하고 나서의 장점 중 하나가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겼다는 점이다. 20~30대는 새벽기도라도 가야 할 정도로 ‘안되면 어떡하지’하는 흥행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잘됐으면 좋겠고 간절함은 여전하다. 다만 ‘이게 안되면 안돼’라는 식의 어떤 뾰족한 마음은 많이 둥글둥글해졌다. 늘 그렇듯 작품에는 최선을 다해 임하지만 결과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좋은 평가가 나오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나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20∼30대, 배우로서 자신만 생각
40대, 가족·아이 위해 집중한 시간
신인감독의 12년간 잘 다듬은 작품
실종된 아이 찾아가는 엄혹한 상황
완성도·대본 너무 좋아 믿고 따라가

결혼후 긴 공백기 가지며 전원생활
자연과 친해진 아이 인격형성 도움
장르보다‘좋은 영향’주는게 우선

연예계 극단적 선택 후배 안타까움
자신과 지속적 대화 하며 힘 키워야



▶모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캐릭터는 자칫 진부하기 쉬운데 정연을 어떤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나.

“이 영화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정연이 단순히 모성애만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모성애는 정말 숭고한 정신이지만 이를 보편적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과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모성애를 좀 더 확대해 나가고 싶었다. 아이를 낳은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아닌, 모두가 넓게 품어 안을 수 있는 거시적 사랑인 인간애로 접근했다.”

▶실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전과는 마음가짐이 달랐을 것 같다.

“‘친절한 금자씨’(2005)도 아이를 둔 엄마 역할이고, ‘나를 찾아줘’도 아이를 찾는 엄마 역할이다. 하지만 말한 것처럼 내가 이제 진짜 엄마가 됐다는 차이가 있다. 엄마이기에 정연의 심리와 감정이 충분히 이해됐고, 이를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만큼 접근하는 게 감정적으로 더 힘들고 아팠지만 한편으론 ‘친절한 금자씨’ 못지않게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이 이야기 속에는 기시감이 느껴지는 실제 사건들이 녹아 있어 더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아이들과의 저녁기도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멘트가 세계의 평화다. 너무 멀리간 듯 하지만 세계가 평화로워야 한반도가 평화롭고 각 가정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과거에는 나만 생각했다면 이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다 깊이있게 생각하게 됐다.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밝은 미래를 어른인 우리가 조금씩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 영화가 보기에는 조금 힘들고 껄끄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모든 영화가 다 그렇듯 존중받아야 하고 나름의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실종 어린이를 찾는 전단을 한번 더 유심히 살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만든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본다.”

▶극 중 보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정연을 극한으로 몰아간다. 힘들진 않았나.

“현실은 더하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은 어깨동무하듯 한꺼번에 찾아 온다고 하는 것처럼 정연이 맞닥뜨린 험난한 상황을 두시간 내에 응축시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관객들이 힘들어 할 것 같았다. 감정을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몇몇 장면들이 편집됐다. 배우 입장에선 욕심이 나는 장면들이었지만 감독님과 진지한 논의 끝에 뺐다. 반면 액션신은 대부분 살렸는데 재밌었다. 액션이라고 내세울 건 없지만 ‘이 맛에 액션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액션 영화를 몇 개 더 해야겠다.”(웃음)

▶홍경장을 연기한 유재명과 남편 역의 박해준 등 모두 처음 만난 배우들인데 호흡은 어땠나.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들이다. 그런 분들과 호흡을 맞추게 됐으니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유재명씨는 평소 과묵하고 얌전하고 멋진 분인데 현장에서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대단한 몰입도를 보여줘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멋있는 분이 인정사정없이 나를 막 내던지고.(웃음) 극 중에선 나와 갈등을 일으키는 관계라 현장에서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서로에 대한 보이지 않는 신뢰는 대단히 두터웠다. 박해준씨도 개인적으로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너무 흔쾌히 출연 결정을 해줘서 고마웠다. ‘독전’에서 봤던 그런 강렬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정말 진짜 남편 같고 의지가 되는 큰 존재감을 보여줬다. 영화를 보면 무슨 얘기인지 알 거다.”

▶그간 서울에서 벗어나 전원생활을 해왔다. 오랜 공백기간도 그렇고 차츰 제도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조바심은 없었나.

“오히려 자연을 벗하며 살았던 그 시간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값진 순간이었다. 시골에 살면서 비가 와도 아이들과 매일 산에 올라갔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자연과 친해졌는데 올바른 인격 형성에 많은 도움이 됐다. 나 역시 감수성이 전보다 높아졌고 덕분에 연기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방탄소년단(BTS)의 열렬한 팬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덕을 많이 보고 있다.(웃음) 우연히 노래를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 방탄소년단을 보기 위해 2017년 마마 시상식에도 참석했다. 그 친구들이 노래도 잘하지만 아주 순수하다. 그 점에 깊이 매료됐다.”

▶최근 가족과 함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사실 딸이 TV에 나오는 걸 좋아해서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출연했다. 해보니 재밌고 즐겁더라. ‘인생 뭐 있나, 재밌게 살면 그만이지’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이 역시 결혼 후 생긴 변화이다.”

▶앞으로 안방극장과 스크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건가.

“기회가 된다면 이제 계속하고 싶다. 하지만 아내와 엄마 역할도 중요하다. 아이들이 아홉살 쌍둥이라 아직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가정과 일을 얼마나 조화롭게 병행하느냐가 관건일 것 같다.”

▶출연작들 하나하나가 레전드가 됐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결혼 전에는 역할과 장르를 중시했다면 지금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작품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가능하면 아이들도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를 찾아줘’ 역시 15세 관람가라 아이들은 볼 수 없지만 따뜻한 영화다. 지리멸렬한 군상들도 나오지만, 그게 현실이고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연예계에 꽃다운 나이에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지고 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 역시 20~30대에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책을 보고 산을 타고 기도를 하고, 또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스스로의 힘을 키웠던 것 같다. 물론 각자 처해진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힘(맷집)을 키우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생각의 힘이기도 하다. 주위의 친구들과 어울리고 얘기하면서 고민을 푸는 과정도 필요하지만 먼저 명상하듯 자신과 대화를 하는 습관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당신의 소확행을 말한다면.

“하늘 보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도 파란 하늘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가능한 자연과 가깝게 지내면서 가족들과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게 나의 소확행이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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