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문경의 고산자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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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3   |  발행일 2019-12-03 제31면   |  수정 2019-12-03

그는 문경의 고산자(古山子)였다. 조선시대 지리학자인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라는 걸출한 작품을 남겼다면 그는 ‘문경의 명산’이라는 책을 남겼다. 고산자가 전국을 3번이나 직접 돌아다니면서 만들었다는 설이 잘못 알려진 것이라면 그는 문경의 산하를 직접 모두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등산로를 개척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책이 문경의 66개 산을 상세한 등산로를 곁들이고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편집한 220여 쪽짜리 ‘문경의 명산’이다. 이 책은 그가 집필했지만 1996년 문경시의 이름으로 초판이 나왔다.

자연을 지극히 사랑했던 그의 이름은 김규천씨다. 문경시청 공무원으로 정확히 20년 근무했던 그는 문경의 아름다운 산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관련 부서에서만 근무하기를 고집했다. 진급을 위해 소위 노른자위 부서나 핵심부서에서 일하기를 기피했다. 전문서적에 가까운 책을 한 권 만들 정도의 그는 능력이나 열정을 다 갖췄지만 공직생활은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시간 날 때마다 문경의 산하를 누볐고 사진도 수준급 실력이었다. 퇴직 후에는 등산장비점을 운영했고, 사업이 여의치 않자 고향인 동로면 황장산 아래에서 사과와 오미자 농사를 지었다.

오미자로 맥주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던 그는 오미자맥주의 개발자로 이름을 남겼지만 대부분 그렇듯이 성공한 사업가는 되지 못했다. 퇴직 후에 향토사에 관심이 많아 잘못된 지역의 역사를 바로잡거나 숨겨진 역사를 찾아내는데도 열정을 쏟았다. 이렇듯 고향의 산하와 고향의 역사를 한없이 사랑했던 그가 며칠전 유명을 달리했다.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62세의 한창 나이에 모두의 곁을 떠나갔다. 지난해 병든 몸으로 부인에게 몸을 기대다시피 올라간 황장산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으며 찍은 영정사진을 보니 더욱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늘 2번째 작품으로 ‘문경의 샘’이라는 책을 집필하기를 꿈꿨지만 끝내 이루지 못해 안타까워 했다. 그가 남긴 유형적 유산은 별로 없지만 수천 권의 등산 서적과 수많은 등산장비는 하나의 박물관을 만들 정도이며 정신적 유산은 셈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재인은 박명이라 했던가. 내 책상위에 항상 꽂혀 있는 ‘문경의 명산’을 펼쳐보니 새삼 그의 부재가 크게 다가온다. 그의 명복을 빈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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