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역사 청송 문화재 여행 .19] 명승 제11호 주왕산 주왕계곡 일원과 주왕 전설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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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9   |  발행일 2019-11-19 제14면   |  수정 2020-03-13
우뚝솟은 암봉에 계곡마다 전설…‘조선팔경’ 힘찬 기세 볼수록 장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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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에는 주왕계곡을 중심으로 ‘주왕’ 전설이 다양하게 전해진다. 급수대는 주왕 전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김주원이 절벽 위에 대궐을 짓고 식수를 얻기 위해 두레박으로 계곡의 물을 퍼올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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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이 숨어 있다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 알려진 주왕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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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비칠 때면 호롱이나 나뭇잎 모양의 실루엣을 살며시 드러내는 연화굴.

호수가 산이 된 기적. 기적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약 6천만 년의 시간이 걸렸다. 때로는 격렬했고 때로는 순했다. 그러나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유유한 계곡에, 느닷없는 단애들에, 장엄하게 낙하하는 폭포들에, 감추어 둔 동굴들에, 원시의 향기를 묻어 둔 숲에 그 시간을 차곡차곡 기록했다. 어느 날에는 사람들이 그 기적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 전설을 더했다. 기적과 전설이 합해져 그곳은 탄성이 되었다. 청송 주왕산이다.

조선팔경의 제6경으로 꼽히는 명산
동식물 1천790종 서식 생태계 寶庫
1976년 국립공원·2003년 명승 지정
주왕굴·연화굴·급수대·장군암·범굴
산·계곡 곳곳에 주왕의 전설 깃들어


#1. 청송 주왕산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오면서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두타산, 태백산을 지나 남하하다, 경북도 동부의 가운데인 청송군 부동면에 빚어놓은 산이 주왕산이다. 일찍이 조선팔경의 제6경으로 꼽힐 만큼 놀라운 경관을 가진 명산이다.

‘천 떨기의 부용꽃이 솟고/ 만 가닥의 찬 구슬이 흐르네/ 절벽은 실로 기이하고 우람하며/ 막다른 숲은 참으로 깊숙하네/ 높은 풍모가 훌륭한 자취에 남아/ 멀리 생각하니 홀로 슬퍼지네/ 우주는 마치 지나가는 새인 듯/ 몇 번이나 아름다운 이름 남겼던가.’

조선 중기의 학자 대암(大菴) 박성(朴惺)의 시가 보여주는 주왕산의 파노라마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우주를 지나가는 새’로 만들어버리는 주왕산의 풍모는 과거 지질시대에 거듭된 화산폭발과 그 이후의 긴 시간이 만든 것으로,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할 만큼 다양한 층위의 지질학적 유산을 지니고 있다. 또한 식물 888종, 동물 902종, 총 1천790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생태계가 가장 잘 보전된 국립공원으로 꼽힌다.

태백산맥의 산줄기임에도 불구하고 주왕산의 능선 및 봉우리의 해발고도는 약 600~900m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지형의 경사가 매우 급하고 기복도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주왕산의 주 관광로인 주왕계곡에는 장군봉, 기암, 망월대, 급수대, 학소대 등의 암봉 및 단애와 용추폭포, 용연폭포 등의 폭포가 계곡을 따라 집중적으로 분포하여 절경을 이루고 있다.

주왕산은 이름이 많다. 바위로 병풍을 친 것 같다고 석병산(石屛山), 골 깊어 숨어살기 좋다고 대둔산(大屯山), 금강산처럼 아름답다고 소금강, 신라의 왕족인 김주원(金周元)이 원성왕과의 왕위 다툼에서 밀려나 이곳에 머물렀다고 주방산(周房山), 그리고 중국 당나라 시대에 진나라의 주왕(周王)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도망 와 숨어살았다고 해서 주왕산(周王山) 등이다.

‘푸른 절벽 삼천계에 깎은 듯 서서/ 주왕이란 산 이름 팔백 년이라/ 높고 험한 기세는 볼수록 장하니/ 대지를 억눌러 하늘에 솟구쳤네’라는 문징(文徵)의 시를 믿어보자면 주왕이라는 이름은 적어도 800년 이상 오래되었다.

#2. 주왕 이야기

주왕은 누구인가. 그에 대해 가장 많이 알려진 전설은 중국 당나라 시대때 진나라 사람인 주도(周鍍)라는 인물이다. 주도는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 즉 ‘주왕’이라 칭하고 진나라의 재건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이후 주왕은 잔병을 이끌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어들었다. 주왕을 제거해 달라는 당나라의 요청에 신라는 마일성 장군과 그의 형제들에게 주왕을 토벌케 했다. 주왕산 깊은 굴속에 숨어 있던 주왕은 결국 마장군에 의해 최후를 맞았다.

또 다른 인물은 신라의 왕족인 김주원(金周元)이다. 조선 후기 청송부사를 지낸 홍의호(洪義浩)가 쓴 ‘주왕산삼산기(周王山三菴記)’에 ‘옛날 신라의 왕자 중에 태백(泰伯)의 기풍을 가진 자가 있어 명주(현재의 강릉)에 은둔하여 살다가 죽어서 시호를 얻어 주원왕이 되었다. 그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번창하고 있다. 지난번에 내가 명주에서 벼슬할 때 그 까닭과 사실을 알았으니 산을 주왕이라 일컫는 것은 반드시 주원왕 때문일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김주원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7세손이다. 신라 37대 선덕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김주원이 임금으로 추대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김주원이 궁으로 가던 중 홍수를 만나 입궐하지 못하자 그와 왕위를 다툰 김경신(金敬信)이 화백회의를 장악하여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가 신라 제38대 원성왕이다. 김주원은 ‘임금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며, 내가 큰비를 만난 것도 하늘의 뜻’이라고 여기며 어머니의 고향인 명주로 향했다. 명주의 길목에 기암으로 둘러싸인 산으로 들어간 김주원은 ‘명주군국(溟州郡國)’이라는 독자적인 국호를 세우고 통치조직을 구축했으며 군사기반까지 다진다. 그는 사후에 ‘주원왕’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주왕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도 주왕산 곳곳에 성벽을 쌓은 자리와 궁궐터 등이 전해진다. 그러나 중국의 주도와 신라의 김주원 두 이야기 모두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3. 계곡에 펼쳐진 전설

주왕산은 주왕계곡을 중심으로 산 전체에 주왕이라는 이름을 종횡으로 품고 있다.

주왕계곡에는 최후를 맞은 주왕과 그 군사들의 피가 주방천에 흘러 그 이듬해 검붉은 반점의 수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신라 문무왕 12년인 672년에 창건되었다는 대전사는 주왕의 아들인 대전도군의 이름을 딴 것이라 하고, 백련암은 주왕의 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딴 것이라 한다.

주왕산 기암은 주왕을 제거한 마장군이 깃발을 꽂았다는 바위, 또는 주왕이 전투를 시작할 때 깃발을 꽂았다는 바위로 알려져 있다. 무장굴은 주왕의 군대가 병장기를 보관하던 곳, 주왕굴은 주왕이 숨어 있다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연화굴은 주왕의 군사가 훈련을 했다는 곳으로 주왕의 딸 백련공주가 성불한 곳으로도 전해진다. 이 외에도 주왕의 시체를 화장했다는 범굴, 주왕의 장수가 지휘를 했다는 장군암,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하였다는 망월대가 있다.

연화굴 근처에는 자하성터가 있다. 주왕산성 또는 주방산성이라고도 불린다.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하음(河陰) 신집(申楫)이 1604년에 쓴 ‘유주방산록(遊周房山錄)’에 ‘신라왕이 적병을 피해 왔을 때 지은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거기에는 나왕전(羅王殿)이라는 궁궐에 대한 이야기도 수록되어 있는데 ‘신라왕이 적병을 피할 때 머무른 대궐터’라 하며 ‘봉우리를 돌아 굽은 길을 5~6리쯤 가야 나왕전이 나온다’고 했다.

압도적인 모습으로 서 있는 급수대는 김주원이 절벽 위에 대궐을 짓고 식수를 얻기 위해 두레박으로 계곡의 물을 퍼 올렸다는 벼랑이다. 꼭대기에서 쇠줄에 쇠 두레박을 매달았으며 한 사람이 매달려 내려와 물을 길었다는 꽤나 자세한 이야기가 전한다. 그렇게 물을 길어 올렸다고 급수대, 또는 급수봉, 격수암, 길고암이라고도 한다.

이 외에도 청학과 백학이 다정하게 살았다는 학소대, 만개한 연꽃 모양 같다는 연화봉, 멀리 동해가 보이는 험준한 왕거암,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용추협곡, 청학이라는 기이한 새가 산다는 청학동, 용이 살았다고도 하고 바다와 통해 있다고도 하는 용연폭포,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소, 용이 살다 승천했다는 용추폭포, 선녀가 목욕했다는 선녀탕 등 주왕산이 가진 전설은 너무 많다. 몹시 기이한 것들, 너무 아름다운 것들, 인간적인 스케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전설을 낳는다.

주왕산은 1976년 3월 우리나라의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 10월에는 주왕계곡 일원의 총면적 836만8천56㎡가 ‘청송 주왕산 주왕계곡 일원’이란 명칭으로 명승 제11호로 지정되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청송군지, 주왕산지, 주왕산유람록, 주왕산국립공원 홈페이지, 한국지명유래집, 향토문화전자대전, 청송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 홈페이지.

공동기획지원 :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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