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가정통신문 만들기

  • 박종문
  • |
  • 입력 2019-11-18 08:04  |  수정 2020-09-09 14:20  |  발행일 2019-11-18 제18면
"부모에게, 자녀에게 `함께하고 싶은 것` 알려주세요"
20191118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아이들과 만화영화 보고 감상문 쓰기, 놀이공원 가서 놀이기구 4가지 이상타고 사진 찍어 제출하기, 아이들과 게임을 3시간 이상 하고 진 사람이 소감문 쓰기. 다소 엉뚱한 학교숙제이지요? 황미경 작가의 ‘가정통신문 소동’이라는 책에 나오는 재미있는 학교숙제입니다.

비둘기 초등학교에 교장선생님이 새로 부임한 후 아이들과 놀아주라는 이상한 가정통신문을 받게 됩니다. 부모님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숙제를 합니다. 평소 일부러 게임을 져주며 빨리 끝내려던 부모님들이 소감문을 쓰기 싫어 열심히 게임을 합니다. 평소 못 먹게 하던 탄산음료를 같이 마시면서 만화영화를 봅니다. 무서워서 타기 싫던 놀이기구를 타고 사진을 찍습니다.

대화시간 줄어들며 ‘단절 현상’ 심화
휴대폰 없이 식사하기·목욕탕 가기 등
가족에게 먼저 다가가 마음열려 노력
통신문 만들어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


이처럼 부모님들은 가정통신문에 적힌 숙제를 아이들과 함께 하나하나 해 나가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아이들과 불통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고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상한 가정통신문은 교장선생님이 아니라 아이들이 만들어낸 가정통신문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가족과의 진정한 소통과 공감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OECD 통계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하루 중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비율이 4%로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가족과의 대화 시간은 평균 28분에 불과하였습니다. 가족과의 대화 시간이 줄어들면서 가족 단절 현상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소통의 시작은 가족입니다. 가족 곁으로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열려는 노력을 한다면 가족 관계는 언제든지 좋아질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지 벌써 30년이 지났고, 평소 전화로 안부 정도만 묻던 저에게 어머니와의 여행은 표현하지 못했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7월 초, 바쁜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평소 가고 싶었던 중국 장가계 여행을 급하게 준비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계획으로 가족들과 함께 가기 어려워 나 홀로 여행을 준비하던 차에 아내가 뜻밖의 말을 하였습니다.

“혼자 가면 말동무도 없고 심심할 텐데, 어머니와 같이 가는 건 어때요?”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와의 여행이 어색할 것 같아 머뭇거렸습니다. 아내의 재촉에 어머니께 전화 드렸습니다.“엄마, 중국 장가제 갔다 오셨어요?”“응, 두 번 갔다 왔어. 근데 왜?”“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세 번은 안 가실 것 같아 아무 내색 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엄마는 장가제 세 번도 갈 수 있어^^.” 며칠이 지나 어머니께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아내와 통화하면서 상황을 알게 되셨다고 합니다. 아들과 함께 여행가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가고 싶던 장가제는 다음으로 기약하고, 어머니께서 가보지 못한 곳을 여기저기 알아보다 대만으로 여행지를 결정하였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둘만의 해외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짧은 4박 5일 여행이었지만, 어머니와 연인처럼 손잡고 다니면서 사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그동안 살피지 못했던 어머니의 속마음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어찌 보면 어머니와 마음을 나누기에 지난 5일의 시간이 30년보다 긴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팔짱 끼고 환하게 웃는 어머니의 사진을 볼 때마다 저도 행복해 집니다.

내년에는 아버지와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어머니보다 더 어색한 분위기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그래도 다녀오면 아버지와의 관계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가족들이 서로 맺어져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행복이라는 퀴리 부인의 말처럼, 사랑하는 가족에 소통통신문으로 마음을 표현해 보세요. 만화영화 같이 보기, 게임하기 등 아이들이 만든 가정통신문처럼, 휴대폰 없이 식사하기, 주말에 부모님과 목욕탕 가기, 가족 채팅방에 댓글 달기 등 자녀와 함께 하고 싶은 부모통신문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신민식<대구시교육청 장학사·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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