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17] 사찰 주련...전각 벽·기둥에 내걸린 고색창연 글귀…산사가 품은 또 하나의 보물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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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4 08:10  |  수정 2021-07-06 10:26  |  발행일 2019-11-14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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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엄사 각황전에 걸린 주련. 예서체로 쓴 이 주련들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 조사의 공덕을 찬탄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산사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주련(柱聯)은 편액과 더불어 사찰이 품고 있는 귀중한 보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삶에 도움을 주는 소중한 가르침들을 담고 있는데다, 예술 작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련은 좋은 글귀를 종이에 쓰거나 판자에 새긴 것을 건물의 기둥이나 벽에 연이어 걸어 놓은 것을 말한다. 사찰의 주련은 불교 경전의 내용이나 선사들의 게송 등을 담고 있는데, 대부분 일반인이 쉽게 해득할 수 없는 한문으로 되어 있다. 안타까운 점이다. 이런 주련의 내용을 알고 보면 사찰 탐방이나 참배의 의미가 훨씬 더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소중한 가르침 담긴 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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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청풍당에 걸린 한글 주련.

지리산 화엄사는 대찰로 전각이 많으니 주련도 많다. 최근에 지은 전각도 적지 않아 새로 제작해 단 주련도 많지만, 가장 큰 전각인 각황전이나 그 옆의 원통전, 대웅전 등은 수백 년이 지난 옛 건물에 걸맞게 고색창연한 멋진 주련이 걸려 있어 특히 눈길을 끈다. 이 주련을 중심으로 화엄사의 주련 일부를 소개한다.

보기 드물게 웅장하고 멋진 각황전의 주련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위대한 경전과 논서 모두 통달하시고(偉論雄經罔不通)/ 일생 동안 널리 펴고 지킨 공덕 깊도다(一生弘護有深功)/ 걸출한 삼천 제자 법등(法燈)을 나누어 이어가니(三千義學分燈後)/ 화엄의 종풍 전국을 휩쓸었네(圓敎宗風滿海東)// 인도에서 온 하나의 등불 온 세상 밝히니(西來一燭傳三世)/ 우리나라에 천년을 전하여 다섯 갈래로 피어났도다(南國千年闡五宗)/ 이 많은 청정한 빚 노닐며 갚으려 하니(遊償此增淸淨債)/ 흰구름 머리에 감도는데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白雲回首與誰同)’

1~4연은 대각국사 문집에 있는 ‘화엄사례연기조사영(華嚴寺禮緣起祖師影: 화엄사에서 연기 조사의 진영에 예를 표하다)’에 나오는 글이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 조사의 공덕을 찬양하고 있다. 5~8연은 설암(雪巖) 추봉(秋鵬) 선사(1651~1706)의 문집인 ‘설암난고(雪巖亂藁)’에 나오는 ‘제화엄사장육전(題華嚴寺丈六殿)’이라는 글의 일부이다.


수백년 고찰에 걸맞은 멋진 주련
삶에 도움주는 가르침 담고있어
대부분 한문…해석문 붙임 늘어
화엄사 새 전각에는 한글 주련도

대구가 낳은 서화가 서병오 작품
영남지역 사찰에 많이 걸려있어



각황전 앞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보이는 원통전에도 유려한 행서로 된, 각황전 주련처럼 색 바랜 주련이 4개 걸려 있다.

‘바닷속 붉은 연꽃 한 송이 피어나(一葉紅蓮在海中)/ 푸른 파도 깊은 데서 신통을 보이시네(碧波深處現神通)/ 어젯밤엔 관자재께서 보타에 계시더니(昨夜普陀觀自在)/ 오늘은 도량 가운데 강림하셨네(今日降赴道場中)’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원통전이나 관음전에 거는 대표적 주련이다.

다음은 대웅전 주련이다. 6개의 이 대웅전 주련은 다른 사찰의 대웅전 주련 글귀와 다른 점이 눈길을 끈다. ‘선문염송집’ ‘의상조사 법성게’ 등에서 가져와 엮은 것이다.

‘수양버들 수 없이 늘어진 마을(四五百株垂柳巷)/ 누각들 겹겹이라 화장세계로구나(樓閣重重華藏界)~’

화엄사는 한문을 모르는 이들을 배려해 사람들이 많이 출입하는 전각에 걸린 대부분의 주련 아래에 한글 해석문을 붙여놓고 있다. 최근 들어 이처럼 한글 해석문을 붙여놓는 사찰들이 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화엄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새로 지은 전각에 한글 주련을 달아 사찰을 찾는 이들을 배려하고 있다. 보제루 아래 만월당(滿月堂) 맞은편의 청풍당(淸風堂) 주련은 ‘문수동자게’를 한글로 풀이한 글귀 ‘성 안 내는 그 얼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를 걸고 있다.

◆전각의 성격에 맞게 글귀 구성

사찰 건물에는 이처럼 많은 주련이 걸려 있지만, 대웅전을 비롯해 극락전(극락보전), 관음전(원통전), 지장전, 나한전(응진전), 종각 등 전각의 기능이나 용도에 따라 같은 글귀나 유사한 내용의 글귀가 걸린다.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에 걸리는 대표적 주련 글은 부처님을 찬탄하는 ‘찬불게’인 ‘하늘 위와 아래에 부처님 같은 분 없고(天上天下無如佛)/ 온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네(十方世界亦無比)/ 세상 천지 다 찾아보아도(世間所有我盡見)/ 부처님 같은 분 어디에도 없네(一切無有如佛者)’이다.

‘부처님 법신은 어느 곳에나 두루 다 있고(佛身普遍十方中)/ 삼세 부처님들도 모두 이와 한가지라네(三世如來一體同)/ 넓고 큰 원력은 언제나 다함이 없으니(廣大願雲恒不盡)/ 넓고 넓은 깨달음의 세계 아득하여 다함이 없네(汪洋覺海渺難窮)’라는 글귀도 대웅전 주련으로 많이 걸려 있다. 전각이 커서 주련이 더 필요하면 여기에다 화엄경에 나오는 구절을 더해 걸기도 한다.

관음전의 대표적 주련으로는 앞에서 소개한 화엄사 원통전 주련 글귀와 함께 다음 구절이 많이 걸려 있다.

‘백의관음 말 없이 말씀하시고(白衣觀音無說說)/ 남순동자 들음 없이 들으시네(南巡童子不聞聞)/ 화병 위의 푸른 버들 늘 여름이요(甁上綠楊三際夏)/ 바위 앞 푸른 대나무는 온통 봄빛이네(巖前翠竹十方春)’

보통 따로 걸지만, 기둥이 많으면 8개 주련이 함께 걸리기도 한다.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의 대표적 주련 글은 ‘극락당의 보름달 같은 얼굴(極樂堂前滿月容)/ 옥호의 금색광명 허공 가득 비추니(玉毫金色照虛空)/ 누구나 아미타불 일념으로 염불하면(若人一念稱名號)/ 잠깐 사이에 무량 공덕 원만하게 이루리(頃刻圓成無量功)’이다.

종각 주련에는 보통 새벽 종송(鐘頌)과 저녁 종송이 주련으로 걸린다.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퍼져(願此鐘聲遍法界)/ 철위산의 깊은 어둠 다 밝히고(鐵圍幽暗悉皆明)/ 지옥·아귀·축생의 고통 여의고 칼산 지옥도 부수어(三途離苦破刀山)/ 모든 중생이 바른 깨달음 얻게 하소서(一切衆生成正覺)’

저녁 종송은 ‘이 종소리 듣고 번뇌는 끊고(聞鐘聲煩惱斷)/ 지혜를 길러 보리의 마음 내어(智慧長菩提生)/ 지옥을 여의고 삼계의 고통 벗어나(離地獄出三界)/ 깨달음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소서(願成佛度衆生)’이다.

그리고 주련에 관심을 갖다 보면 같은 글씨의 주련이 여러 사찰에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편액도 그렇지만, 주련도 글씨가 좋을 경우 같은 글씨 주련이 여러 사찰에 걸리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구의 걸출한 서화가 석재(石齋) 서병오(1862~1936)의 작품이 영남지역 사찰에 많이 걸려 있는데, 동화사 대웅전에 걸린 4개의 주련 ‘천상천하무여불~’도 석재의 글씨 작품이다. 같은 글씨의 주련이 청도 적천사 대웅전, 청송 대전사 대웅전, 창녕 관룡사 대웅전 등 여러 전각에도 걸려 있다. 또한 양산 통도사 관음전과 김천 직지사 관음전에도 서병오의 같은 글씨 주련 ‘일엽홍련재해동~’이 걸려있다.

건물을 잘 지어놓고 주련이나 편액 글씨의 수준이 낮아 전각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경우를 종종 접하기도 한다. 주련을 제작할 때 글씨 쓰는 사람이나 각을 하는 작가를 잘 선택하는 스님들의 안목도 중요하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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