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개진 머리의 극사실 ‘몸’…불안한 존재에 던지는 질문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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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3   |  발행일 2019-11-13 제26면   |  수정 2019-11-13
■ 최수앙전 리뷰
인체의 형상에 네온핑크로 색칠
극사실·초현실을 넘나드는 작업
뭉개진 머리의 극사실 ‘몸’…불안한 존재에 던지는 질문
최수앙 ‘Untitled’

최수앙의 조각은 사실적이다. 피부와 실핏줄, 땀구멍 하나하나 극사실의 절정이다. 관찰과 상상력의 피조물임에도 그 몸은 칼로 그으면 벌건 피가 흐르고 새하얀 뼈를 드러낼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놀랍도록 사실적인 몸은 그러나 극단적이고 인공적인 색을 상징하는 네온 핑크로 칠해져 있다. 가장 사실적인 형태와 가장 비현실적인 컬러의 조합은 작품을 극사실과 초현실 사이를 혼란스럽게 오간다. 그렇게 극도의 리얼리즘은 형이상이 된다.

평생을 인체의 겉과 속, 몸의 온갖 현상들에 천착한 최수앙은 인간이 가진 것 중 가장 솔직한 것이 몸임을 알고 있는 작가다. 몸의 함축성과 직접성이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에게 얼마나 강력하고 통렬한 매개가 될 수 있는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수많은 몸을 보고 수많은 몸들을 만들어 낸다. 깎고 또 깎아 점점 얇게 갈아내었으니 실은 만들었다기보다는 지워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다.

12월29일까지 봉산문화회관에서 선보이는 기억공작소 최수앙 전 ‘몸을 벗은 사물들’에는 여전히 사실의 극치까지 끌어올린 인체 조각상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조각상의 얼굴은 뜯겨져 나가고 머리는 뭉개져 있다. 사물이 된 몸의 조각에 흔적을 남기는 구체적인 행위다.

형상이 사라지는 그 지점에서 작가는 개념을 버리고 행위라는 ‘사실’을 획득한다. 그것은 ‘사실적 묘사’를 뛰어넘는 ‘구체적인 사실’이다. 그것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과 두려움, 불확실성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렇게 개인의 존재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들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나는 몸의 동작과 겉모습의 디테일에 극도로 천착하는 표현방식은 관객에게 다가가는 매우 강력한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관객들이 조각을 본다는 느낌보다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길 바란다. 그 낯선 이들의 모습에 연민과 공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 모습들 속에서 자신의 감춰진 측면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면서.”

인체 묘사의 사실성과 생생함은 여전히 놀랍다. 달라진 점은 이전의 작업들이 삶의 다양한 측면들을 반영하고 함축해내는 하나의 실체로서의 몸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그러한 실체를 부수고 지우며 흔적을 남기는 과정이다. 어떤 은유도 어떤 서사도 없이 오직 ‘손의 흔적’만 남겨놓은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사실의 재현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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