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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나니 알곡 가득찬 벼 대신 밑동만 덩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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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재윤기자
  •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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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 양식으로 남겨둔 벼 ‘실종’

확인 결과 두 블록 거리 농부의 짓

“수매량 맞추려 훔쳐” “착각” 맞서

하룻밤 새 애써 재배해 온 벼를 모두 도둑 맞은 권모씨가 도난 현장을 볏짚으로 표시해 둔 논.
지난 5일 낮 12시 안동 풍천면 한 논두렁에서 권모씨(67)가 자신의 논을 바라보다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으로 수확을 앞두고 있었지만 하룻밤 새 벼가 통째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억장이 무너졌다. 사라진 벼는 벼 건조장에 내다 판 벼와 달리 자녀에게 보낼 마음으로 1년 내내 애지중지하며 경작한 최상급 품종이었다. 1천650㎡(500평) 면적으로, 제대로 수확할 경우 40㎏짜리 포대 60여 개에 이르는 양이다.

하룻밤 새 황당한 봉변을 당한 권씨는 도난 현장을 볏짚으로 표시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갑갑하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도 마찬가지였다. 논두렁을 따라 길게 이어진 농로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이틀째인 지난 7일 경찰은 농로와 이어진 한 도로에 설치된 CCTV에서 농로 쪽으로 이동한 차량들을 찾아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해당 차량을 수배해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했다. 다행히 영상엔 벼 수확 농기계인 콤바인을 싣고 이동하는 화물차 한 대가 찍혀 있었다.

경찰은 농기계기사 A씨를 탐문 끝에 찾아냈지만 황당한 말을 들었다. 논 주인이 보는 앞에서 벼를 수확했다는 것. 경찰이 확인한 결과 A씨가 지목한 논 주인은 권씨가 아닌 두 블록 떨어진 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B씨(66)였다. A씨는 경찰에 “(어쩐지) B씨의 논이 4천290㎡(1천300평)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수확량이 적어 이상하다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남의 논에서, 그것도 대담하게 대낮에 농기계까지 동원했다는 사실에 경찰도 황당했다. B씨에게 찾아가 경위를 따져 묻자 처음에는 범행 자체를 부인했다. 이에 경찰이 벼 건조장에서 확보한 수매 정산서를 내밀었고, 그제서야 B씨는 “자신의 논으로 착각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조사결과 B씨는 권씨의 논에서 수확한 벼를 수매하려다 양이 적자 다시 A씨를 시켜 자신의 논에서 추가 작업까지 해 수매량을 맞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B씨를 농산물 절도 혐의로 입건해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권씨의 논과 B씨의 경작지는 거리가 상당하다. 황당한 사건이지만 ‘착각했다’는 B씨 해명은 설득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피재윤기자 ssanae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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