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밥상에 움트는 생명 ‘토종씨앗’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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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1   |  발행일 2019-11-01 제41면   |  수정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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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종씨앗박물관에 전시중인 유리 용기에 보관된 각종 씨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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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민간 씨앗박물관인 충남 예산 한국토종 씨앗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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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한국토종씨앗박물관에서 수집해 놓은 각종 토종 씨앗중의 하나인 ‘육각맥’. 12월 1일까지 대구교육박물관에서 특별전시된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생물종은 약 10만종. 그 중 약 3만5천종만이 보고된 것을 미루어 볼 때 아직 우리가 수집하지 못한 생물종 및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한국 유전자원의 역사는 한 마디로 수난사였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외국으로 유출된 유전자원이 다양한 품종 개발에 역이용되었다. 북한산 정향나무를 소재로 미국에서 육성한 ‘미스킴 라일락’도 그 한 예다. 미국은 우리의 토종식물인 ‘수수꽃다리’를 1947년 가져가 ‘미스킴 라일락’으로 이름붙여 상품화했고, 현재 미스킴 라일락은 미국 라일락시장의 30%, 세계 라일락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린 그 꽃을 비싼 로열티를 주면서 역수입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해 우리가 외국에 지불한 로열티는 124억원. 올해는 뉴질랜드에 키위 로열티 40억원, 내년부터는 일본에 딸기 로열티 64억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식물 로열티는 원산지와 관계없이 변형시킨 것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외국계 자본이 한국의 종묘회사부터 인수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토종자원을 방치해 빼앗긴 아픈 역사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연히 약탈된 우리의 문화재처럼 토종 유전자원도 반환받아야 함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농촌진흥청이 팔을 걷어붙였다. 그동안 유출됐던 한반도 원산자원의 반환 노력을 통해 미국·일본·독일·러시아에서 4천400여점을 반환받을 수 있었다. 특히 대표적 토종배추로 보쌈김치의 재료로 쓰던 ‘개성배추’ 종자를 60년 만에 되돌려 받기도 했다. 중국을 거쳐 독일 식물유전자연구소로 보내졌는데 잘 협의해 받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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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 종자수호에 앞장
서구열강이 눈독들인 한반도 야생콩
녹색혁명의 소노라, 앉은뱅이밀 변형
국내 유전자원 보존 ‘종자은행’설치
美·日 수집한 재래종 반환 작업 결실

민족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이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종자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은 반도국가와 뚜렷한 4계절, 화강암 토질 덕에 경쟁력있는 다양한 식물을 보유한 국가로 유명하다. 토종종자가 유출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부터. 서구 열강 식물학자들은 무방비 상태의 한반도 전역을 누비면서 우리의 토종 식물 종자를 수집해갔다.

특히 그들이 눈독을 들인 것은 한국이 원산지인 콩(대두)이다. 두만강의 두의 한자도 콩 ‘두(豆)’자일 정도로 한국은 콩의 나라였다.

1960년대 국제옥수수밀연구소가 일으킨 녹색혁명의 주역인 ‘소노라 64호 밀’이 우리 토종 키 작은 ‘앉은뱅이 밀’의 변형물이다. 우리 콩이 서양에 보급된 것은 1739년 프랑스 파리식물원이 처음이다. 미국 보급은 훨씬 뒤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에 의하면 1770년 영국에서 그의 고향인 필라델피아에 콩씨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미국은 현재 1만7천여종의 콩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한반도에서 5천496종, 나머지는 옛 고구려 땅 만주에서 수집해간 것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콩의 원산지 한국의 콩 자급률이 5% 남짓. 반면 미국은 세계 콩 생산량의 40%, 세계 콩수출의 70%를 차지한다. 그런 미국이 최근 콩 녹색병으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국은 이를 치유하기 위해 나머지 한국의 야생콩(750여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일본 홋카이도에서도 재배 가능한 벼는 우리나라 ‘내한성 벼’다. 현재 세계시장의 고가분재의 원산지가 대다수 한국이며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용 나무로 유명한 구상나무도 한국산이라는 걸 아는 우리나라 국민은 거의 없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유전자원 보존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아 1975년 저온저장시설을 갖추고 1987년에 종자은행을 설치해 국내 유전자원을 보존하며 외국의 유전자원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2006년에는 농업유전자원센터를 설립하여 종자를 30년 보존할 수 있는 중기저장고와 100년을 보존할 수 있는 장기저장고, 종자로 보존할 수 없는 마늘·고구마·나리 등과 같은 영양체자원의 반영구 보존이 가능한 초저온보존실 등을 갖추어 운영하고 있다. 현재 20만1천여점의 식물 유전자원을 확보하여 세계 6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토종자원은 3만7천여점이다.

최근 농촌진흥청 덕분에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소중한 우리의 종자가 반환되고 있다.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청은 산하 유전자원센터가 보유하고 있는 한반도 원산의 농산물 유전자원 6천여점 중에서 국내 농진청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가 확보하지 못한 34종 1천679점을 반환했다. 이들 종자는 오랜 농업국가였던 우리나라에서 자생·재래 종으로 존재하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며 일본과 미국이 수집해 간 것들로 코끼리마늘, 양파, 유채, 고추, 녹두 등이다. 농진청과 미국 농업연구청은 2002년 농업기술 MOU(업무협약) 체결을 시작으로 협력관계를 맺었으며 지난해 해외협력연구실을 열고 유전자원 반환에 합의했다.

한국·일본 간에는 아주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농촌진흥청이 일본 농업생물자원연구소로부터 유출됐던 콩, 팥, 조, 참깨, 아마(亞麻) 등 토종종자 32종 1천546점을 100년 만에 반환받은 것이다. 이들은 근대화 과정 속에서 이미 우리에게는 없어진 것들이다.

어떻게 보존해야 하나
종자은행·현지 농장 통한 보존 방법
씨앗 대출 후 반납하는 ‘씨앗도서관’
국내유일 민간 박물관도 1500종 소장
씨앗 산증인 안완식 박사 기증자료展


토종 씨앗을 보존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종자은행 같은 곳을 이용하는 현지외보존법과 토종 씨앗이 재배되고 살아가고 있는 현장인 농장 등에서 보존하는 현지내 보존법이다. 현지외 보존의 장점은 혹시 모를 토종 씨앗의 소멸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토종 씨앗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씨앗도서관’의 설립이 바로 좋은 예다. 2015년 충남 홍성의 씨앗도서관을 처음으로 경기도 안양·광명·수원, 경북 포항 등지에서도 씨앗도서관이 만들어졌다. 씨앗도서관은 씨앗을 대출한 뒤 수확한 씨앗을 다시 반납 받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국적으로 토종농산물에 대한 조례안도 만들어지고 있다.

2017년 문을 연 충남 예산군 대술면 한국토종씨앗박물관(관장 강희진)도 종자 파수꾼이다. 1천500여종의 씨앗을 소장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민간 씨앗박물관이다.

‘씨앗은 미래의 시작’이라는 슬로건으로 내건 이 박물관은 한민족 생명의 최전선이랄 수 있다. 박물관 한편에는 우리나라 씨앗의 산증인 중 한 사람인 안완식 박사가 기증한 씨앗들과 연구자료, 사진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인도말 ‘브리히(가을에 익는 벼)’가 여진말 ‘베레(흰 쌀)’가 되고 그게 나중에 ‘벼’가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인도말 ‘사리(겨울에 익는 벼)’가 훗날 ‘쌀’로 전이된 사실 등 주요 씨앗의 어원도 알려준다. 또한 토종 씨앗 나눔행사를 통해 길 위의 인문학도 펼쳐나간다. 충남 예산군 대술면 시산서길 64-9 (041)333-5613

대구교육박물관 토종씨앗 기획전
삶과 직결한 밥상 어떻게 차릴 것인가
건강·지역·환경과 연결한 ‘슬로 푸드’
씨앗 사진으로 통해 본 생명존중 사상
물질만능주의속 새로운 인식전환 기회


대구교육박물관(관장 김정학)이 의미심장한 기획전을 마련했다. 토종씨앗의 중요성과 새로운 식문화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해 한국토종씨앗박물관과 손을 잡고 기획전을 연다. 1일부터 12월1일까지 박물관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인문학으로 풀어보는 생명이야기’랄 수 있다. ‘우리 밥상’에 관한 물음에서 이 전시가 준비됐다. 그리고 먹거리란 결국 우리의 삶과 직결한 문제이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밥상이 어떻게 차려진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김정학 관장은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작물의 대부분은 모두 먼 길을 거쳐 온 것”이라며 “어떤 작물이 토종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이라 역설했다.

‘토종은 미래의 가치’라는 모토로 기획된 이 전시에는 식량·채소작물을 비롯해 화곡류, 잡곡류, 두류, 서류, 엽경채류, 근채류, 인경채류, 특용작물까지 120여 종의 다양한 토종씨앗을 선보인다. 단순한 씨앗 전시회가 아니다. 역사와 씨앗을 인문학적으로 연결할 예정이다. 두 가지 특별 이벤트도 있다. 오는 26일 우리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을 위해 ‘슬로푸드 미래를 부탁해’라는 특강이 마련된다. 강의를 맡은 김영숙씨는 한국토종씨앗박물관 부관장이자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이사로 슬로푸드가 지켜주는 3가지 이야기(건강·지역·환경)를 들려준다.

두 번째는 20년간 ‘씨앗은행’이라는 주제로 사진작업을 해온 독일 하노버의 사진 예술가 유관호씨의 작품전이다. 그는 씨앗을 통해 디지털 세상이 놓치고 있는 생명존중사상을 전해주고 있다. 그는 관객과의 교감을 위해 매번 반짝 이벤트 선물을 안겨준다. 씨앗을 손바닥 위에 올린 뒤 사진을 찍고 촬영이 끝나면 비닐봉지에 동전과 함께 담아 되돌려 준다. 그는 그런 행위를 통해 지구촌 사람들과 생명이란 감동에너지를 공유하려고 한다.

이 기획전은 디지털 증후군이랄 정도로 자폐적 일상에 매몰된 초·중·고생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씨앗만 봐도 은연 중 몸에 축적된 전자파가 많이 달아날 것 같다. 걸맞게 흥미진진한 체험거리도 준비했다. 씨앗을 확대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림 삼매경에 빠질 수도 있다. 사전 신청한 참가자를 대상으로 토종씨앗 나눔 행사도 병행한다.

김 관장은 “씨앗을 인문학적으로 보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품을 수 있다. 그럼 황금만능주의에 만연된 현대 문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전환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일 오후 4시 개관 기념식. 대구 북구 대동로1길 40. (053)231-1790

글·사진= 이춘호 음식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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