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프로당구 선수 이승진 “상대 이기는 게임 아닌 즐겁게 해주는 경기…함께 즐기는 매력 찾아야”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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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1   |  발행일 2019-11-01 제35면   |  수정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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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당구리그(PBA) 출범 이후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는 이승진 프로가 지난달 24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 크로스S 당구클럽에서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당구계의 이승엽’으로 불리는 대구출신 이승진 프로당구 선수(50). 이 프로는 올해 출범한 프로당구리그(PBA)가 당구의 저변확대뿐 아니라 높은 기량의 선수 배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고2 때 친구를 따라 우연히 찾은 당구장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는 이 프로는 “당구는 상대방을 이기는 게임이 아닌 상대방을 즐겁게 해 주는 경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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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진 프로(가운데)가 11월21일 열리는 PBA 5차 투어 예선통과를 축하하는 현수막 아래에서 후배 서성원 프로(왼쪽), 정연철 프로(오른쪽)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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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LG U+ 3쿠션 마스터스’에 출전한 이승진 프로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코줌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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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진 프로(오른쪽 둘째)가 ‘2017 LG U+ 3쿠션 마스터스’ 출전에 앞서 참가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코줌코리아 제공>


高 2때 친구 권유로 시작, 당구 매력에 푹 빠져
삼수까지 했지만 대학 진학못해 공부에 아쉬움
늦은 나이 결혼, 생활고 등 겪었지만 후회 안해
전국대회 우승, 동호인에 이름 알린것 가장 뿌듯

선망인 브롬달과 경기, 패했지만 꿈 이룬 느낌
예전과 달리 분위기 좋아져 가족들도 함께 찾아
후배들에 본보기 보여주지 못해 가장 미안한 점
붐일며 ‘프로화’…대구는 스폰서 부족 어려움

▶당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우연히 접한 당구가 너무 재미있었다. 당구에 미쳤었다고 하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야간 자율학습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고등학교 졸업당시 4구 당구 실력이 400점이었다. 고3 때는 우리 학교뿐 아니라 주변 학교에서 내가 당구를 제일 잘 친 것으로 기억한다.”

▶당구 때문에 학업에 지장이 많았을 뿐 아니라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을 텐데.

“학업은 제대로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못 갔다. 집에서 재수, 삼수를 시켜주었지만 학원 갈 시간에 당구장에서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에 못 간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어린 후배들에게는 대학은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해주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거의 내기당구로 생활을 했다. 부모님을 설득하기 힘들다보니 자연스럽게 반항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특히 속앓이를 많이 한 어머니에게 너무 죄송했다. 그래서 당구를 더 열심히 쳤다.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당구만 쳤다. 그렇게 10년 정도 지난 뒤 2000년 아리랑TV 주최 ‘아시아 3쿠션 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다. 너무 기뻤다. 어머니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다. 우승도 하고 TV에까지 나오니까 부모님도 더 이상 반대는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당구선수가 되기 위해 당구를 시작했나.

“선수가 되기 위해 당구를 한 것은 아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당구가 처음으로 정식종목이 된다는 것을 알고 출전하고 싶었다. 솔직히 내 실력을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한 번 평가받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사전 선수등록을 하지 못해 방콕대회는 국내 예선전조차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선수등록을 하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해 노력했다. 1차 16명을 뽑는 상비군에 선발되고 2차 8명에 포함됐지만, 최종 2명의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당구를 하게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당구가 잘 되지 않을 때 말고는 후회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생활고를 겪을 때는 너무 힘들었다. 프로당구리그 등 당구대회가 많이 생겨난 요즘은 조금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당구선수는 일단 생활이 힘들다고 봐야 한다. 경기에 나갈 여비가 없는데 서른 넘어 부모님에게 손 내밀 수가 없어 포기 한때도 많았다. 하는 수 없이 아르바이트로 새롭게 문을 여는 당구장의 매니저 일을 했다. 당구장 매니저의 역할은 테이블 상태를 체크하고 고객들과 당구도 함께 쳐 주는 일이 대부분이다.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이렇게 1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면 다음 해 경기에 출전하는 식으로 생활을 이어갔다. 선배들과 지인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당구에 미쳐 살면서 생활도 어렵다보니 결혼은 생각도 못했다. 마흔이 넘어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다. 결혼 후에도 아내의 내조가 없었다면 당구선수 생활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염치가 없었지만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아 아내에게 딱 1년만 당구만 치고 싶다고 하고 경기에만 나갔다. 그러다보니 생활비는 마이너스가 됐고, 하는 수 없이 당구장을 차리고 3년 반은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않았다. 생활은 다소 안정됐다. 말이 안정이지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여전히 힘든 생활이었다. 마이너스를 겨우 탈출할 정도. 하지만 당구장을 계속 운영할 수는 없었다. 개인훈련과 경기 출전 등으로 당구장을 접었다.”

▶당구를 하게 된 것을 잘 했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인가.

“전국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당구를 잘 했다는 생각도 있지만, 당구로 인해 제 이름 석자가 당구 동호인과 당구 마니아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는 것을 느낄 때다. 대구가 아닌 다른 지방에 가도 제 팬이라고 얘기해 줄 때 당구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대회에서는 2016년 국토중앙배에서 2관왕을 한 것이다. 후배 선수들이 워낙 잘 쳐서 앞으로는 전국대회 우승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승해서 너무 기뻤다. 무엇보다 그때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그 덕에 후원도 받게 됐고 월드컵도 나가게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2011년도 수원 월드컵 16강전 브롬달과의 경기다. 15점 5세트 경기였는데, 결과적으로는 3-1로 패했다. 하지만 당시 많은 당구 동호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브롬달과 경기를 하는 것 자체가 어떤 하나의 꿈을 이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기는 했지만 브롬달과 경기를 한다는 그 자체가 행복했다.”

▶최근 당구가 붐을 일으키면서 당구전문 TV채널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채널에서도 당구 경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당구를 치는 후배들도 많아졌는데,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수라면 누구나 우승이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질 때 지더라도 즐기는 당구를 했으면 한다. 그리고 당구에 집중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학업을 포기하는 후배들이 종종 있는데,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명력이 길다고 하는 당구도 나이가 들면 한계점이 온다. 그래서 대학 공부까지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나 자신도 당구를 치기 위해 대학을 포기했지만, 월드컵 참가 등을 위해 외국에 나가면 느끼는 것이 일찍부터 학업을 포기한 것이 아쉽다. 보다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 공부 정도는 해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구 후배들에게 미안함이 있다고 들었다.

“대구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대구에서 당구를 잘 치는 사람이 이승진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내가 잘 되지 못해서 후배들에게 당구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하고 희망을 주지 못한 것 같다. 능력과 실력이 뛰어난 후배들 중 나 때문에 그만둔 친구도 한둘이 아니다. 정말 미안하고 아쉽게 생각한다.”

▶당구를 즐기는 동호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구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따라서 당구는 상대를 즐겁게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즐거움으로 나도 즐거워진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너무 승부에 집착해 상대와 감정까지 상한다면 당구를 칠 이유가 없다. 프로 후배들에게도 얘기를 하지만 즐기는 당구를 해야 한다. 즐거움 속에서 당구의 매력을 찾을 때 진정한 당구인이 된다고 본다.”

▶당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

“35년째 당구를 하고 있지만 당구장 분위기가 정말 엄청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20년 전 칙칙한 당구장 분위기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한 번 와서 보면 그런 인식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가족들과 즐기기에도 당구장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본다.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5천원에 주문해서 마신다고 생각하면, 당구장에서는 4명이 5천원씩 2만원이면 2시간 당구를 칠 수 있고, 아메리카노는 무한 리필로 마실 수 있다. 이만큼 좋은 곳이 어디있나. 게임도 즐기고 커피도 마시고. 당구장은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PC방보다도 몇 배 낫다고 생각한다. 당구는 또 정적인 운동이지만 수학과도 연관이 있어 어린이 교육에 접목시켜도 좋고, 기다림을 통해 인생을 배울 수도 있다.”

▶올해 5월 출범한 프로당구리그(PBA)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준다면.

“당구의 프로화는 당구인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프로화가 시도됐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자금력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최근 당구 붐이 일면서 프로화가 본격화됐다. 무엇보다 당구선수들이 직업인으로서 또한 당당한 프로선수로 활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고 본다. PBA는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3쿠션 당구투어를 통해 1년에 8개의 1부 투어, 10개의 2부 투어, 8개의 LPBA(여자부) 투어가 개최된다. 1부 투어는 총상금 2억5천만원, 우승상금 1억원의 7개 정규투어와 상위 32강만 출전해 총상금 4억원, 우승상금 3억원을 놓고 펼치는 파이널대회로 구성된다. PBA는 1부 투어, 2부 투어 승강제도도 도입했다. 당구 동호인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PBA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PBA 발전이 곧 당구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11월21일 열리는 PBA 5차 대회(경기도 의정부)에도 대구에서 남자프로 6명과 여자프로 3명이 출전하지만, 대부분 스폰서(후원) 없이 경기에 나선다. 당구 수준이 어느 지역보다 높은 대구지만 대구선수들은 다른 지역 선수에 비해 후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TV중계가 되면서 홍보효과가 높아졌지만 유독 대구 선수들에 대한 대구 기업들의 후원이 없다. 대구 당구선수 후원에 대구 기업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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