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가을 문학여행

  • 최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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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8 08:08  |  수정 2019-10-28 08:09  |  발행일 2019-10-28 제18면
“가족과 함께 문학기행…역사공부하며 추억 만들어요”
20191028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가을 햇살을 맞으며 함께 문학 기행을 떠나니 아주 상쾌하구나.” “저도 엄마랑 함께 문학공부도 하고, 여행도 하니까 좋아요.”

토요일 오전 7시30분, 아들과 엄마, 딸과 엄마, 아빠랑 엄마와 딸. 가족이 함께 손잡고 학교에 모이는 발길에서 경쾌함이 느껴집니다.

“역사와 함께하는 문학기행의 일정은 병산서원, 임청각, 이육사 문학관, 도산서원을 다녀오는 코스입니다. 장소마다 가족이 함께 인증샷을 찍고, 이육사 시인의 시도 한 편 적어보고, 시인에게 편지도 쓰며, 서원에 관련된 퀴즈도 풀면서 감상문 쓰기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담당 교사는 문학기행을 얼마나 오래전부터 알뜰하게 준비했는지,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문학기행은 가을 사과처럼 탐스럽습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으로 깊이 있는 문학수업을 기획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문학기행으로 밤처럼 오도독 씹히는 가을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냥 사진만 찍고 후딱 돌아오는 여행과 달리,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어야만 퀴즈도 풀 수 있고, 부모님과 함께 경청하며, 부모님과 함께 미션을 수행하는 게 즐거워 보입니다.


병산서원·임청각·이육사문학관…
문화해설사 설명 들으며 곳곳 방문
퀴즈도 풀며 문화유산 소중함 배워



“징비록의 저자는 누구입니까?” “류성룡입니다.” “예, 병산서원은 류성룡의 업적과 학덕을 추모하여 세운 서원이고,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이후 관광객이 많습니다.”

서원이 요즘의 사립학교라는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이 많았고, 설명을 들으면서 ‘8월말에서 9월초에 백일홍이 예쁘게 핌’ ‘오륜을 바로 세우는 교육’ ‘봉례문은 나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는 뜻임’ 등 중요한 내용을 또박또박 받아 적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서원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 한 분은 딸에게 ‘내가 대학 입학하고, 우리 아버지와 함께 서원 기행을 하던 것이 생각난다’며 추억을 이야기해 주는데, 딸에게도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셀카를 찍으며 추억을 담는 모습이 가을 햇살에 토실토실 여물어 갑니다. 설명 듣는 태도는 자녀보다 부모님의 관심도가 높았고, 이해한 내용을 또다시 자녀들에게 전달하면서 서로서로 내용에 깊이를 더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입니다. 병산서원을 돌아올 때, 길이 좁아 대형버스의 교행이 어려워 모두 마음을 졸였는데, 문화유산을 보호하려는 취지도 중요하지만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도로를 조금 넓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임청각은 중국집 이름입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임청각이라는 이름은 좀 낯설지요? 사실, 임청각 때문에 ‘역사와 함께하는 문학기행’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난데없는 아이의 질문에 선생님이 문학기행의 취지를 재치 있게 설명합니다. “임청각은 임시정부 초대국무령 이상룡의 생가로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하는 등,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한 산실입니다. 일제 강점기엔 불령선인(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을 일컫는 말)이 다수 출생한 집이라고 하여 중앙선 철도 부설 때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 건물이 철거당하는 아픔을 지니고 있습니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라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독립운동가의 정기를 느껴봅시다.”

처음 온다는 아이들은 본채에 앉아 끝 간 데 없이 푸른 하늘을 마주하고, 나뭇결 그대로 살아있는 마루에 앉아 집안에 남아있는 독립운동가의 정기를 느껴보려고 애씁니다. 우물 뚜껑을 열어보기도 하고, 역사를 담은 사진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며, 독립운동가의 꿋꿋한 의지를 되새기며, 방문록에 이름 석 자를 적는 모습에도 진지함이 담겨 있습니다. 점심을 먹을 때, 아들이 배고플까 밥 한 술 듬뿍 떼서 슬며시 건네는 손길에서 따뜻한 모성이 전해집니다. 가족이 함께 교육활동에 참여하니 개구쟁이 모습은 오간데 없고,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육사문학관에는 문학행사가 있어서 많은 문인들이 북적거렸습니다. 복잡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아이들은 미션을 수행하느라 문학관을 샅샅이 다니며, 육사 시를 적고, 편지를 쓰느라 바쁩니다. 부모님들은 문학행사에 참여하여 잠시 접어두었던 문학의 감성을 되살리는 모습에서 소년과 소녀의 감성이 엿보입니다. 아이들이 주로 옮긴 시는 ‘절정’ ‘광야’ ‘청포도’ ‘꽃’ 등이었고, 무뚝뚝한 남학생의 소감문에도 이육사의 꼿꼿한 정신적 결기는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엄마도 아이와 함께 시를 적는 모습은 한 장의 가을 사진이었습니다. 도산서원에서 퇴계 선생의 검소하고 조촐함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저물어가는 가을햇살이 짧아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고, 서둘러 피곤한 몸을 버스에 실었습니다.

아이들이 적어낸 소감에서 공통적인 것은 ‘점심이 맛있다’는 것과 ‘가족이 함께해서 좋았다’는 말이었습니다. ‘앞으로 독립운동가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민이 되겠습니다’ ‘국어시간에 배운 시를 더 잘 알게 되어서 좋았어요’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독립운동과 시를 쓰며 일제에 저항했다는 말이 더 기억에 남고, 이육사님의 따님을 만난 것도 좋았어요’라는 각각의 소감에서 문학기행의 취지를 잘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자빛 가을 하늘 아래, 아이들과 함께 가을 추억 한 장 만들어 보심이 어떨는지요?

원미옥 (대구 동변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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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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