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영화감독 - ⑥ 변영주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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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8   |  발행일 2019-10-18 제43면   |  수정 2020-09-08
위안부 할머니 처참한 역사 복원한 다큐멘터리스트…상업영화 장르도 안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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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은 학창시절부터 이미 영화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극장이라는 장소에 대한 매력이 컸다. 어두운 방안에서 무언가 다른 삶을 경청한다는 것이 그에겐 또 다른 마력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한다. 학교가 끝나면 극장으로 달려가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반대로 이화여대 법학과를 들어가게 되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시험을 보다가 지금의 명필름 대표인 이은 감독을 알게 되어 영화제작집단 ‘장산곶매’에 들어가 그 유명한 ‘파업전야’를 만들기 직전까지 활동하다 동두천 기지촌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던 이들과 중앙대 영화과를 다니던 학생들, ‘영화마당 우리’ 출신들, 영화잡지 기자 등 영화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바리터’의 창립멤버로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1990), ‘우리네 아이들’(1990) 같은 작품들에서 촬영을 맡았다. 바리터는 1989년 한국 최초로 여성주의 영화 제작을 표방한 독립영화 제작집단이었다. 변영주 감독을 비롯해 김소영 감독(한예종 영상원 교수), 서선영 시나리오 작가, 김영 미루픽처스 대표, 도성희 북경연예전수학원 교수, 권은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김소연 프로듀서 등이 함께 활동했다.

바리터에서 몇 편의 다큐멘터리 촬영과 편집을 하며 다큐멘터리 제작에 재미를 붙여가던 변영주는 어느 날 거대한 벽 같은 것을 느끼고 1991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다큐멘터리계를 대표하는 거장 오가와 신스케 감독을 만나 다큐멘터리 제작과 배급에 대한 열정을 배운다. 이후 ‘푸른영상’에서 자신의 첫 연출작으로 제주도의 기생관광으로 알려진 매춘여성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3)을 내놓는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그는 어머니가 위안부였던 매춘여성을 만나게 되는데(처음 매춘을 하게 된 이유가 어머니의 자궁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이를 계기로 긴 시간 민족과 성의 모순이 한데 뒤얽힌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데 몰두한다. 제작에 필요한 카메라와 동시녹음 장비는 1992년 위암으로 타계한 오가와 신스케 감독이 쓰던 것들을 오가와프로덕션에서 무료로 장기 대여한다. 1993년 6월 기록영화제작소 ‘보임’을 프로듀서 신혜은과 함께 설립해 필름 100피트씩을 후원해주는 회원 모집과 후원배지 판매로 제작비를 모아 만든 작품이 ‘낮은 목소리’(1995)였다.


日 다큐 거장에게 배운 제작과 배급에 대한 열정
민족·性의 모순 뒤엉킨 일본군 위안부 다큐 몰두
韓 다큐 첫 극장 개봉 ‘낮은 목소리’ 국내외 반향
‘낮은 목소리2’‘숨결’세편으로 7년간의 기록 완성

‘밀애’ ‘발레교습소’ 상업 영화 감독으로도 두각
배우 김민희 재발견 ‘화차’ 백상예술대상 감독상


나눔의 집에 모여 사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현재와 이들의 증언을 통해 처참한 과거의 역사를 복원시킨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상 최초로 극장에 개봉되는 기록을 세우며 제4회 야마카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오가와 신스케 상을 수상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해 말 폐암 진단을 받은 고(故) 강덕경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찍는 것을 시작으로 슬픔을 껴안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기록한 ‘낮은 목소리 2’(1997)를 내놓는다. 이 작품은 제1회 대만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메리트상을 수상하였고, 일본에도 개봉되어 좋은 평을 얻었다.

‘낮은 목소리2’ 완성 이후 변영주는 무려 3개월 동안 이제 자신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어 달라며 전화를 했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모습에서 인터뷰어로서의 자질을 보고 할머니가 할머니를 인터뷰한다는 단 하나의 아이디어로 새 영화 작업에 들어간다. 이용수 할머니가 인터뷰어로 어린시절부터 위안소 시절까지를 다른 할머니들에게 이야기 듣고 이야기하는 전반부와 현재 할머니들의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감독과 자신의 삶을 일기로 써서 제8회 전태일문학상 수기부문에 당선된 김윤심 할머니로 후반부를 구성해 ‘숨결’(2000)을 완성한다. 할머니들의 빛나는 호흡을 모아낸다는 의미에서 제목을 지었다는 이 작품으로 그는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민족예술상과 운파상을 수상한다. ‘낮은 목소리’로 시작해 ‘숨결’로 마무리된 7년의 기록들은 3부작으로 묶여 DVD로는 드물게 2007년 한국독립영화협회를 통해 박스 세트로 출시되었다가 2017년 ‘한국의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으로 불리는 플레인 아카이브에서 재출시되기도 했다.

이후 변영주는 소설가 전경린의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을 원작으로 가정의 틀 안에서 안주하던 한 여성이 내면에 지닌 혼란스러운 욕구를 발견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나타나는 일탈과 매혹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밀애’(2002)로 충무로 시스템으로 들어온다. 배우 김윤진, 이종원과 극영화 데뷔작을 만든 그는 2년 후 영화동지 신혜은 프로듀서가 시나리오까지 쓴 ‘발레교습소’(2004)를 가수에서 배우로 전업한 윤계상과 배우 김민정과 함께 내놓는다. 하기 싫은 것은 있으나 하고 싶은 것은 없어서 어른이 되는 일이 부담스러운 아이들의 성장영화였지만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전작들의 실패로 긴 휴지기에 들어간 변영주는 동시대성을 치밀하게 담아낸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어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원작으로 ‘화차’(2012)를 내놓는다. 투자난항을 겪으며 여러 차례 연기되었던 영화는 지난한 시간을 겪으며 10고의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했다. 배우 김민희의 재발견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 작품은 그에게 제4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을 안겨주었다.

‘낮은 목소리’ 3부작으로 한국영화계에 큰 울림을 주었던 다큐멘터리스트 변영주는 멜로(‘밀애’)부터 성장물(‘발레 교습소’), 스릴러(‘화차’)까지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하며 상업영화감독으로 안착했다.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같은 책을 통해 스크린 바깥에서 세상과 사회에 대한 발언도 아끼지 않는다. 2009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김학순상 수상이나 2012년 여성영화인이 뽑은 ‘올해의 여성영화인’에 선정된 것은 그런 그의 행보에 대한 지지와 응원일 것이다.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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