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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리의 공예 담화(談話)]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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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부기자
  •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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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실의 따뜻함을 공유하는 즐거움

누구나 뜨개질에 참여할 수 있는 핀란드의 한 도서관.
핀란드의 나무 옷 입히기 ‘니트 앤 태그(Knit’ n’ Tag)’ 프로젝트.
책을 빌리고 읽는 장소인 도서관. 그런데 핀란드 투르쿠(Turku)의 한 도서관에는 책을 빌리고 읽는 것과 상관없는 듯한 낯선 풍경이 발견된다. 방금 전까지 한 여성이 소파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사라졌다. 사라진 것도 이상한데, 그러고 보니 잠시 두고 갔다고 보기에는 길이가 꽤 긴 뜨개질 작업이 놓여 있는 점도 이상했다. 뜨개질 바늘도 꽂혀 있고 실타래도 함께 있었다. 도서관 한편의 독서 공간에는 그렇게 누가 보아도 ‘현재 진행형’인 뜨개질 작업이 놓여 있었다. 한참을 그 뜨개질 작업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도서관 사서에게 뜨개질의 주인과 정체를 물었다. ‘누구나’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뜨개질이라며 나에게 뜨개질을 하고 싶으면 하라는 대답과 함께 이 공간은 책을 읽다가 뜨개질을 하면서 사색을 하는 시간을 갖는 공간이며, 완성된 결과물은 여러 명이 한꺼번에 기대도 될 정도의 긴 쿠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가을 계명대 대명캠퍼스에서 이 대학 공예디자인과 학생들이 진행한 ‘얀 버밍 프로젝트’.
소외 이웃들에 전하는 양말·장갑·모자
핀란드 뜨개질 재능기부 ‘온정 프로젝트’
시민·예술가들 힘 모아 ‘나무 옷 입히기’
지역환경 돌보고 문화도시 만들기 동참
아프리카 신생아에 줄 모자 뜨기 캠페인
만드는 즐거움과 나눔 통해 행복한 경험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여하였던 핀란드 선수단과 코치들이 올림픽 기간 중 경기 중간이나 훈련 휴식 시간에 뜨개질을 하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언론에 포착된 뜨개질을 하는 모습의 선수들 중에는 물론 남성도 있고, 스노보드 감독 안티 코스키넨은 기자회견 중에도 뜨개질을 했다.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심리적 중압감을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소치동계올림픽 이후 올림픽 때마다 뜨개질하는 핀란드 선수단과 코치들이 독특해 보일 수 있겠지만, 뜨개질과 관련된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많은 나라인 핀란드 선수들이란 점을 생각하면 ‘그들답다’라는 생각이 든다.

핀란드에는 오랫동안 배를 타는 선원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양말을 짜서 보내는 전통이 있다. 외항선 선원들이 조금이나마 크리스마스 정취와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게 작은 선물을 보내자는 아이디어에서 18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얼굴을 모르는 선원들에게 양말을 짜서 보내던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져 지금은 양말뿐만 아니라 장갑, 모자, 레그 워머 등을 짜서 지역의 양로원, 장기 요양원, 병원 등으로 따뜻한 손길을 전하고 있다. 이 뜨개질 재능 기부는 크기나 색상에 관계없이 세탁기로 세탁해도 괜찮은 울 재질의 양말을 짜면 누구나 동참할 수 있으며, 작은 라벨을 달아 양말 안에 메시지를 써 넣을 수도 있다.

2008년 핀란드 섬유예술가 비르피는 뜨개질이 가진 따뜻함과 즐거움을 승객들에게 전하며 대중교통 이용을 권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헬싱키 외곽, 반타(Vantaa) 지역의 한 버스 안의 좌석 덮개를 만들었고, 알록달록 색의 코바느질 작품들은 6개월 동안 매일 승객을 맞이했다. 이후 도시 뜨개질 또는 낙서 뜨개질, 게릴라 뜨개질로 불리는 ‘얀 버밍(Yarn Bombing)’의 다양한 프로젝트들의 등장이 시작됐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제작된 15만2천개의 뜨개질 조각 보로 헬싱키의 랜드마크인 헬싱키 대성당 앞 계단을 덮은 프로젝트는 인상적이다. 기네스북 등재 후 코바느질로 짠 15만2천개의 뜨개질 조각 보는 이후 신생아를 위한 3천800장의 이불이 되어 구호단체에 기증되었다.

국내에는 ‘나무 옷 입히기’로 알려진 프로젝트 역시 핀란드에서는 약 10년 전 시작됐다. 그중 ‘니트 앤 태그(Knit’ n’ Tag)’는 일반 시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로, 참가자들이 뜨개질한 것을 연결하거나 레이스나 천을 엮어 공원의 나무들을 감싸는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사람들이 자신이 소속된 지역 환경을 발전시키는데 직접 참여하는 것을 장려하며, 동시에 수공예를 통한 참여적 즐거운 도시문화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과거 수공예는 자급자족을 위하여 존재하였다. 그러나 2019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과거와 다른 이유로 손으로 만드는 즐거움을 찾고 있다.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기계보다 느리더라도 인간의 감성을 담은 수작업이 갖고 있는 ‘만드는 즐거움’ 때문이다. 뜨개질 역시 실과의 육체적 교감을 통해 행복감과 자기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며, 핀란드 선수단의 사례처럼 무에서 유를 만들며 얻어지는 성취감은 긍정적 심리와 자기 치유에 도움이 된다.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에 대한 가치를 저술한 리처드 세넷이 주장하는 수작업이 내재하고 있는 ‘만드는 즐거움’은 만든 물건을 직접 사용하면서 얻게 되는 ‘사용의 즐거움’으로 연결된다. 자신이 직접 짠 모자, 목도리, 양말 등을 사용하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가치와 의미에 기반하며 우리는 그것을 특별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즐거움의 요소들은 자신이 만든 물건을 선물하거나 만든 방법을 타인에게 알려주면서 얻게 되는 ‘공유의 즐거움’으로 점진된다. 아프리카 신생아들의 저체온증 극복을 위한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의 모자 뜨기 캠페인은 만드는 즐거움과 나눔이 주는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의 사례이다.

한편 얀 버밍의 사례처럼 공유의 즐거움은 공예의 자리인 ‘집 안’만이 아닌 ‘공공의 공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공예를 통한 소통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 진정한 대학 생활의 의미 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나는 몇 해 전 학교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얀 버밍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콘셉트로 설치된 작업물은 푸른 잎과 꽃들이 진 뒤 쓸쓸하게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한 나무들의 옷이 되었고, 약 세 달간 캠퍼스 안의 다른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었다. 공예라는 언어로 소통하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얀 버밍은 디지털 시대 도시 공간에서 부드러운 털실이 주는 따뜻함과 함께 사람의 손에 의한 온기가 느껴지며, 이것은 그대로 시민들에게 전달되었다. 주변으로부터 ‘역시 공예디자인과는 금 손’이라는 칭찬도 듣게 되고 방송에도 보도되어서 학생들과 함께 기뻐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일반 시민들의 포토존이 되어 SNS에 그들의 기록으로 남아 가는 것을 보며 나 역시도 새로운 즐거움을 경험하였다.

계명대 공예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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