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다르지만 닮은 두 광장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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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7   |  발행일 2019-10-17 제31면   |  수정 2019-10-17
[영남타워] 다르지만 닮은 두 광장
유선태 사회부장

67일간 온나라를 들썩였던 조국타령의 1라운드가 지난 14일 끝났다. 일국의 장관 한 명이 이토록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한 적이 유사 이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울림은 컸고 깊었다.

지난 두달여 동안 보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덕분에 뭉쳤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지만 최근 몇년간 우리나라에서는 보수가 분열로 망했는데 오랜만에 마음을 합치는 모양새다. 특히 이들은 두번에 걸쳐 광장으로 나왔다. 아이의 손을 잡거나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엄마아빠들이 적지않았다. 그들은 ‘조국 퇴진’과 ‘문재인 하야’를 외쳤다

진보 진영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수백명 규모로 시작한 ‘검찰개혁 촛불집회’참가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했다. 잠정적 마지막 집회였던 12일에도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서울중앙지검이 있는 서초동 네거리를 가득 메웠다. 40·50대가 주축을 이룬 집회 참가자들은 촛불 혹은 손팻말을 들고 ‘조국 사수’와 ‘검찰 개혁’을 주장했다.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촛불집회’를 놓고 보수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론이 분열됐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왔다. 과연 그럴까. 국론의 사전적 의미는 “국민 또는 사회 일반의 공통된 의견”이다. 모호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국론은 무엇인가. 기자는 알지 못한다. 한마디로 실체가 없다. 많은 이들도 기자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적지않은 정치인들은 국론이 분열되면 안된다고 말한다. 기자는 실체도 없는 국론이 분열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혹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번을 계기로 국론을 통일하자고 외친다. 시대역행적 발상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국가권력에 억압받지 않으면서 각자의 다양한 생각을 표출하는 것인데 그러지 말자고 한다. 위험하다. 역사를 수십년 전 독재시대로 되돌리자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때를 상기해 본다. 시민의 생각은 독재권력이 만든 거짓 국론에 강제되고 통일 혹은 총화라는 형태로 박제돼야 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에 저항하면 사회에서 격리되고 전과자로 낙인찍힐 것을 강요받았다. 이 때문에 공권력과 시민의 물리적 충돌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로 인한 인적 피해와 사회경제적 손실은 계량화된 수치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였다. 대외적으로 국가신인도는 곤두박질쳤다.

기자가 본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촛불집회는 국론을 분열시키지도 통일시키지도 않는다. 이들 집회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건강한 우리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시민이 사람 대접 받으며 잘사는 사회’를 만드려는 사람들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생각을 표출한 것이다. 목표를 이루려는 수단이 다르다 보니 진영 간의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소음은 커지고 불편이 필연적으로 따라왔다. 그러나 물리적 충돌은 제로에 가깝다. 수십·수백만명이 모인 집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없다는 걸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그 걸 해냈다. 세계 어느 나라 시민이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기자가 본 두 집회는 저질의 대의민주주의에 절망한 시민들이 참다못해 거리로 나온, 직접 민주주의의 한 형태다. 시민들에게 광장으로 나오게 한 동기를 제공한 20대 국회를 반추해 본다. 진영을 막론하고 그 곳엔 시민을 위한 정치는 없었다. 여당은 내로남불, 제1야당은 오른쪽으로만 갔다. 양보와 타협은 없었다. 사사건건 트집잡고 훼방만 놓는 형국이었다. 동물과 식물국회를 반복했다. 정치로 풀 일을 고소 고발로 검찰에 떠맡기고 있다. 검찰을 그토록 존중하는 제1야당 의원들이 검찰의 패스트트랙 수사와 관련된 소환에 응하지 않겠다고 한다. 20대 국회의원들의 질이 떨어져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임기가 6개월 정도 남았지만 벌써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며칠전 자신들(국회의원들)의 무책임과 무능력 때문에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왔는데 시민들 속에 그들(국회의원들)이 끼어있음을 텔레비전으로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후안무치(厚顔無恥)’도 20대 국회의원들의 트레이드 마크 가운데 하나라는 걸 잠시 잊었음을 자책했다. 유선태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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