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역사 청송 문화재 여행 .14]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502호 ‘김한계 조사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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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5   |  발행일 2019-10-15 제13면   |  수정 2019-10-15
신원조사후 발급한 공문서…조선초 人事 속살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
20191015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502호 ‘김한계 조사문서’. 세종 30년, 31년 발급된 김한계 조사문서는 일종의 임명장으로 고려와 조선의 공문서 양식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청송군청 제공>

고문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거를 알려주는 퍼즐조각이다. 그 조각이 하나씩 발견될 때마다 역사는 조금씩 선명해진다. 2015년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조선 초기의 문서 2점을 공개했다. 공식 명칭은 ‘김한계 조사문서(金漢啓 朝謝文書)’로 문서는 각각 세종 30년인 1448년, 세종 31년인 1449년에 발급된 일종의 임명장이었다. 그것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만 존재하였던 문서로 기존에는 명확히 확인할 수 없었던 조선 초기 인사제도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김한계 조사문서는 2017년 4월24일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502호로 지정되었다.

#1. 조사문서

중국 명나라 태조는 천하를 평정하고 난 뒤 각지의 유학자들을 모집해 예(禮)에 관련된 책을 편찬하게 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홍무예제(洪武禮制)’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 태종 때까지 홍무예제를 국가적 예법의 준칙으로 활용했다. 조선시대에 관리로 임명이 되면 고신(告身)이라는 임명장을 받았다. 그 외에 인사문서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조사문서’라는 것이 있었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 따르면 ‘조사란 사조(四祖)를 상고하여 서경(署經)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는 새로 관직을 받는 관리에 대한 신분 및 가문, 행실 등을 세밀히 심사해 적격성 여부를 판단한 후 임명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즉 조사문서는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새로 임명된 관원의 신원 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이조(吏曹)나 병조(兵曹)에서 관직자에게 조사문서를 발급해 주는 일종의 임명장으로 홍무예제의 공문서식에 의거해 작성된 인사문서였다. 조사문서는 품계에 따라 문서양식이 달랐는데 당상관에게는 관(關), 참상관에게는 고첩(故牒), 참하관에게는 첩(帖)으로 발급되었다.


사헌부·사간원 신원조사 과정 거쳐
이조·병조서 발행한 일종의 임명장
관리신분·가문·행실 등 세밀히 심사

김한계는 학봉 김성일 고조 할아버지
성삼문·하위지와 식년문과 합격동기
1448년·1449년 인사때 문서 발급받아
현존 조사문서중 연대 빨라 희소가치



세종 대에 이르러 국가의 기본 예식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에 세종은 허조(許稠) 등에게 명해 오례(五禮)에 관한 책을편찬하게 했다. 관행되어 온 홍무예제와 고금의 각종 예서들을 참작해 만들어 나가는 방대한 스케일의 작업이었다. 결국 세종대에 완성을 보지 못했고, 세조 때에는 강희맹(姜希孟) 등이 편찬 작업을 이어나갔으며, 성종 5년인 1474년 신숙주(申叔舟), 정척(鄭陟) 등에 의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가 완성되었다.

국조오례의는 조선의 기본적인 예법과 절차 등을 규정해놓은 책으로 오례, 즉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殯禮), 군례(軍禮), 흉례(凶禮)로 나누어 예별로 세부 조목을 마련하였으며 전체 8권 5책으로 간행되었다.

국조오례의가 발행되자 홍무예제는 점차 소멸되어 갔으며 조사문서는 행정 간소화의 이유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즉 조사문서는 고려 말과 조선 초에만 시행되다가 폐기된 한시적인 공문서였다. 때문에 조사문서는 조선 초기 인사제도의 일면을 엿보게 하고, 고려와 조선의 공문서 양식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현존하는 조사문서는 50건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도 시기별 문서에 사용되는 용어와 틀에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과도기적인 시대 분위기가 행정 문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김한계 조사문서

김한계(金漢啓)는 1414년에 태어났다. 자는 형운(亨運), 호는 휴계(休溪)이며,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공조전서를 지낸 김거두(金居斗), 할아버지는 양촌(陽村) 권근(權近)과 교유하였던 진례도만호 김천(金)이며, 아버지는 신령현감을 지낸 김영명(金永命)이다.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로 당대 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손녀이자 성주목사를 지낸 이지유(李之柔)의 딸이다. 김한계는 청계 김진의 증조할아버지이자,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고조할아버지가 된다.

세종 즉위 후 나라가 안정을 찾아가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김한계는 늘 학문을 가까이 하였고, 세종 20년인 1438년에 생원으로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성삼문(成三問), 하위지(河緯之)와는 식년문과의 합격동기로 그들은 오랫동안 집현전에서 함께 공부한 글벗이었다. 세종 30년인 1448년에는 승문원부교리(承文院副校理), 1449년에 사간원우정언(司諫院右正言)이 되었다. 김한계 조사문서는 이때 받은 것으로 이조에서 발행한 원본이다.

고문서의 특징 중 하나는 문서 내에 문서 발급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을 다 기록한다는 점이다. 김한계 조사문서에서도 문서가 발급되기 위해 사헌부에서 이조에 보낸 문서(관문, 關文)의 내용까지 본문 내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먼저 문서의 첫 행과 둘째 행은 발급 주체와 발급 목적 및 근거와 임명 날짜를 적고 있다. 이어 임용 관직에 대한 내용과 행정문서의 처리 내용을 약술하고, 조사 문서명과 수급자 발급 날짜를 적었다. 문서의 마지막 행에는 이조에 소속된 관직명과 실제 조사문서를 발급하고 승인한 관원들이 관직 아래에 서명하였다.

김한계 조사문서는 일부 훼손되긴 했지만 내용과 양식을 확인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1448년 조사문서는 5월22일에 선교랑 김한계를 승문원 부교리로 임명하는 것에 대하여 조사를 마쳤음을 증명하는 내용이다.

본문을 보면 사헌부이방서리(司憲府吏房書吏)가 20일에 관문을 보내와서 조사를 마쳤음을 알렸으며, 이조에서는 김한계가 참상관인 승문원 부교리에 임명되는 것이 적합하기에 그에게 고첩을 발급하였다. 1449년 12월27일의 조사문서에서도 사헌부의 조사를 거쳐서 사헌부이방서리가 관문을 보내온 것에 의거하여 승훈랑 김한계를 사간원우정언에 고첩한다는 내용이다. 조사문서가 없으면 임명장인 고신이 있어도 녹봉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조사문서의 발급은 매우 중요한 인사 절차였다고 한다.

김한계는 세종 사후 기주관(記注官)으로 ‘세종실록(世宗實錄)’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문종 1년인 1451년에는 좌정언(左正言)이 되었으며, 경연(經筵)에 출입해 문학으로 이름이 높았다. 직제학을 거쳐 단종 2년인 1454년에 성균관 직강이 되고 이어 승문원 교리를 겸하였으며, 또 승정원 부승지를 지내고 다시 정언이 되었다.

계유정난이 일어나고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김한계는 부지승문원사(副知承文院事)에 임명되었고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봉해졌다. 그러나 세조의 찬탈을 부당하게 여겼던 김한계는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낙향했다. 이후 다시는 출사하지 않고 은거하며 지내던 그는 5년 후인 1461년 48세의 조금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흘러 단종이 복권되고 사육신을 비롯한 절의를 지켰던 선비들도 신원되면서 그 역시 단종의 죽음을 막기 위해 노력한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16세기 중반부터 청송과 예안(안동) 일대 사족들과 교유를 이어왔으며, 17세기 이래로 예안현에 후손들이 일부 이주해 왔다. 이 조사문서도 당시 함께 전승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김한계의 조사문서 2점은 청송 진보면에 있는 의성김씨 목사공파(牧使公派) 종중이 소유한 것이었다. 현재는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 보관 중에 있다. 고려와 조선의 공문서 양식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서로서 현존하는 조사문서 중 비교적 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희소가치가 크고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참고= 의성김씨대동보. 한국국학진흥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일생의례사전.
공동기획지원 :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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