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개별성의 존중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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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4   |  발행일 2019-10-14 제30면   |  수정 2019-10-14
[하프타임] 개별성의 존중
박주희 문화부기자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된 신의진 연세대 소아청소년 정신과 교수의 ‘현명한 부모는 자녀를 느리게 키운다’라는 강연은 두돌이 지난 아이를 둔 엄마로서 육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는 계기가 됐다. 신 교수는 아동발달심리 교수인 로버트 N. 엠디 박사가 ‘어떤 아이로 길러야 할까’에 대해 제시한 네가지를 소개했다. 시민의식이 있는 아이, 사회성이 좋은 아이,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 아이, 배움의 즐거움이 있는 아이가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사회성이 좋은 아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조건 같지만 실은 가장 낯설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성이 좋은 아이는 친구의 수가 아니라 ‘개별성의 존중(Respect for individual)’을 뜻한다.

신 교수는 “우리나라는 개인보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다. ‘개별성 존중’은 타인의 개인성을 존중하는 것으로 평생의 가치다. 개별성을 존중하면 왕따를 할 일도, 당할 일도 없다”고 말한다. 이어 “부모가 아이에게 ‘인사해라’ ‘예의바르게 해라’ 등 ‘~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그 가치를 집어넣는 것이지, 개별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이거 하고 싶니’라며 늘 아이의 입장을 되물어줘야 배려심 있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고 부연한다.

개별성의 존중은 우리 사회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치다. 우리나라는 개별성이 중시되기보다 끼리끼리 뭉치는 패거리 문화가 강하다. 타인을 만나면 학연·지연·진영 등으로 동질성 찾기 퍼즐을 시작한다. 그렇게 동질성으로 엮이게 되면 ‘우리가 남이가’ 논리가 적용된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나’만 있고 ‘남’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끼리끼리는 뭉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끼리끼리 봐주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투명한 경쟁, 소통, 공존과 상생의 논리가 부인되면서 사회 갈등이 심화된다.

미국의 아이나, 유럽의 아이나, 아프리카의 아이나, 한국의 아이나 모두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난다. 다른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부모와 사회가 아이들을 개인에 대한 존중이 약하고, 남에 대한 인정에도 취약하며, 타협·배려·협의가 부족한 아이로 만들어 가는 셈이다. 아파트 평수, 부모 직업 등을 따져 아이 친구를 골라 사귀게 하는 부모도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낯이 아니던가. ‘끼리끼리 상위 클래스’에 속하게 하기 위한 부모의 자식사랑이 도를 넘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승자독식, 분열, 양극화, 기득권의 위선으로 대변되는 갈등공화국이라 말한다. 그 해결의 시작은 교육을 통한 국민의 의식 변화다. 우리사회 미래인 아이들에게 일등 지상주의만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개별성을 존중하고 공존과 상생, 합의에 이르는 문화를 몸소 익힐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자녀를 교육하고 싶어하는 학부모들이 왜 늘어나는지 정부와 교육계는 제대로 들여다보고 대책을 강구할 필요도 있다.

또한 내 아이가 이 같은 갈등 사회에서 자라지 않기를 바란다면 부모들도 달라져야 한다. 남 탓, 사회 탓만 해서는 내 아이가 자라는 환경이 달라지지 않는 까닭이다. 부모 교육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도 어깨 무거운 말이지만 부모가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박주희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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