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령소방서, 한글이란 날개를 달다

  • 이은경
  • |
  • 입력 2019-10-14   |  발행일 2019-10-14 제29면   |  수정 2020-09-08
[기고] 고령소방서, 한글이란 날개를 달다

지난해 한글날을 앞두고 북구의회와 함께 대구 최초로 국어문화진흥 조례를 제정했다. 이어서 수성구의회와 동구의회에서도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올해는 대구시 문화예술과와 함께 대구시 조례 제정을 위한 준비 중에 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올해는 공공기관에서 공공언어 개선을 위한 협업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까닭은 글자를 통해 백성의 이야기를 듣고 바르게 행하기 위함이었다. 민중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군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쉽고 바른 언어생활이 먼저 습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공공언어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원활한 대화와 소통이 어려운 상황이다. 영화 ‘말모이’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고령소방서와 함께 한 국어문화학교는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 지난 여름 고령소방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이승민 소방장이라고 밝힌 이 분은 교육 담당을 맡고 있다고 했다. 여러 번의 대화를 거치면서 고령소방서가 정말 공공언어개선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국립국어원 프로그램 이외에 자체 프로그램을 4회나 더 진행했다.

방송을 통해 소방공무원들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 들어본 이야기는 훨씬 심각한 것이었다. 대형 산불 진압에서부터 자잘한 민생 안전에 이르기까지 소방공무원은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다 보니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동료들이다. 그런데 그런 동료들이 화재 진압 등으로 목숨을 잃자 남은 분들의 상실감은 심각했고,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얼마 전에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고령소방서에서는 최근 이러한 문제를 해소해 보고자 내부 공간을 개선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그마한 카페를 조성했고, 전문상담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내부적으로 대화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면서 고령소방서는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외부와의 소통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고령소방서에서는 지역 사회 공헌 차원에서 다양한 기부활동과 봉사활동도 하고 있었으며, 지역민을 위한 안전체험 교육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러한 시간들이 지친 일상에 활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화재 진압으로 바쁜 와중에도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고 있는 고령소방서를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세종대왕님께서 한글을 만드신 뜻과 통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공공언어 개선을 위해 ‘공문서 바로 쓰기’ ‘보도자료 작성법’ ‘고령의 언어와 문화’ 등을 차례로 진행했다. 지난 1일에는 한글날 기념으로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의 인문학 특강도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글이 있기 전 우리나라의 문자 생활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연장을 가득 메운 고령소방서의 열기는 대단했다. 최근 들어 보기 드문 열정에 강사도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또 다시 한글날이 지나갔다. 올해부터는 단순히 기념의 의미를 넘어 민족을 지켜 왔고, 민중을 대변해 왔던 이 땅의 진정한 혼이 다시 깨어났으면 좋겠다. 고령소방서에서 시작된 이 온기가 여러 공공기관과 시민들 사이로 전해져, 다가오는 겨울은 모두가 따뜻한 시간으로 기억되길 바라며,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제갈덕주 (경북대 한국어문화원 객원연구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