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가장 보통의 연애’ 공효진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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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1   |  발행일 2019-10-11 제43면   |  수정 2019-10-11
찌질한 남자와 냉소적 여자의 ‘썸’…김래원과 16년만에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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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라곤 1도 없는, 연애에 있어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인물이다. “사랑은 거기서 거기고, 사람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자신의 연애관을 최근 바람난 전 남친과의 뒤끝 있는 이별로 재차 확인했다. 그런 그녀의 가시권에 파혼한 충격을 잊기 위해 매일 밤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는 찌질한 남자 재훈(김래원)이 들어온다. ‘가장 보통의 연애’는 서로 다르기에 더욱 마음이 끌리지만, 또 한편으로는 과거의 사랑이 안겨준 상처로 거리를 두게 되는 연애의 복잡한 심리를 현실적으로 묘사한 영화다. 공효진이 차갑고 냉소적인 여자 선영을 연기했다. 과거 선보였던 많은 드라마는 물론, 현재 출연중인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로맨스 주인공으로 매력을 뽐내고 있을 만큼 공효진에겐 익숙한 장르다. “오히려 주 종목(로맨틱 코미디)을 할 때가 걱정된다”며 짐짓 엄살을 피우지만 “박수 치며 공감하게 만드는 사실적인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다”는 공효진은 “평범한 듯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복합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개성있는 외모와 자연스러운 연기력의 결합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캐릭터를 완성해나간 ‘로맨스 퀸’의 존재감과 매력은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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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로맨스 장르로 돌아온 영화와 드라마의 반응이 좋다.

“친구들이 나한테 ‘수확의 계절이구나’ 그러더라. ‘더울 때 추울 때 많이 찍어 놓고 고생했더니 가을에 수확을 하네’라면서. 좋은 결과든 안 좋은 결과든 마음을 내려놓고 받아들이자는 생각이었는데 두 작품 모두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좋다. 타이밍과 운인 것 같다. 내가 기막히게 잘 하고 그런 건 아닌데 극중 캐릭터들이 응원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인물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 같다.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은 너무 착해서 무조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인 것 같고, 영화는 요즘 영화시장이 침체기다보니 오랜만에 나온 멜로 영화에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여러가지 상황들이 맞아 떨어졌다. 언제 이런 시간들이 또 올까 싶어서 가능한 많이 즐기려고 한다.”


평범하면서 평범 하지않은 복합 캐릭터
연애 상처로 감정 숨기지만 솔직·화끈
보통의 연애란 원래 내모습 보여주는 것

드라마·영화 반응 좋아 ‘쌍끌이 인기’
뒤끝 많은 선영과 달리 뒤끝없는 성격
감정 무뎌진 연인·연애 초보자에 추천

단점 보완, 서로 빛이 돼줄수 있는 관계
실제 연인에 환상 버리는 것 쉽지 않아



▶시나리오의 어떤 점에 끌렸나.

“썸타는 남녀가 술먹는 얘기는 그냥 설정만으로도 재밌을 것 같지 않나. 겨울에는 왠지 술을 먹더라도 포장마차나 오뎅바같은 곳에서 작은 술잔을 기울이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딱 그런 느낌이 나는 영화였다. 시작부터 엔딩까지의 깔끔한 배치가 좋았고, 열린 결말을 지향한 점도 좋았다. 사실 대본을 받았을 때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태였다. 앞서 영화 ‘도어락’을 1~2월에 찍으면서 겨울에는 밖에서 일을 하는 게 어렵겠다 라고 생각했다. 요즘 한국 겨울이 춥잖나. 그런데 대본이 너무 재밌었다. ‘본인의 경험담이 아니라면 이렇게 리얼하고 적나라할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래원씨까지 출연한다니 그런 이유로 놓치기 싫었다.”

▶김래원과는 드라마 ‘눈사람’(2003) 이후 16년 만의 만남이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둘 다 초창기에 만났기 때문에 많이 어렸고,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자신감이 뿜뿜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는 정말 바쁘고 정신 없고 생각할 것도 너무 많았다. 래원씨와는 꼭 한번 다시 함께 연기하고 싶었는데 그 만남이 16년이나 걸릴 줄 몰랐다. 너무 반가웠고 ‘눈사람’ 때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멋있었다. 둘 다 그때보단 모든 면에서 나아진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게다가 일대일로 맞붙는 날 선 구도라 좀더 정신을 차리고 진지하게 연기에 임해야 했다. 그런 긴장감이 불편하면서 좋았다. 래원씨가 워낙 (연기를)잘하는 배우이고, 나도 뭔가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늘 텐션을 유지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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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보통의 연애’를 정리한다면.

“요즘에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고 괜찮아 보이고 싶은 생각이 중독적으로 강한 것 같다. 영화에서처럼 시간 문제일 뿐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드러나게 돼있는데 말이다. 영화에선 예쁘고 미화된 이야기가 아닌 흑역사들이 주로 나열된다.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수긍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보통의 연애란 정말 솔직하게 본인을 투명하게 다 보여주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까지 모두 수용하는, 그런 연애가 보통의 연애라고 생각한다.”

▶그간 해왔던 로맨스 장르와 그 점에서 결이 다르다.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건 뭔가.

“그동안 온기가 넘치는 역할들을 주로 해왔다. 화가 많았던 영화 ‘미스 홍당무’(2008)의 양미숙조차도 헤플 정도로 정이 넘쳤다. 반면 선영은 끝까지 냉기만 남아 있는 인물이다. 직장내 동료들하고 있을 때도 ‘나는 다 알겠는데 너희들은 그걸 모르니?’하는 식으로 자기만 잘 난 줄 아는 친구다. 회사에 그런 애 한두 명쯤은 꼭 있지 않나. 좋게 말하면 선영은 되게 솔직하고. 화끈하다. 그런 그녀가 연애의 상처로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냉소적인 여자라는 점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 찍으면서도 너무 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술에 취해 상대방 입모양을 보고 단어를 맞추는 게임 장면은 다소 수위(?)가 높았다.

“다소 수위가 세긴하지만 유치해서 초등학교 이후에는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다. 정작 그 단어들을 내뱉은 건 난데 오히려 듣는 래원씨가 더 힘들어했다.(웃음) 선영이 그런 말들을 내뱉은 건 파혼한 여친을 잊지 못해 늘 괴로워하는 그를 정신차리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궁금해서 감독님에게 ‘술을 드시면 이런 게임도 하세요’라고 물었다. 쑥스러워하면서 전에 들었던 친구들의 에피소드들을 녹여냈다고 하더라. 다들 재밌게들 사는구나 생각했다.”

▶선영 캐릭터와의 실제 싱크로율은 어떤가. 감독은 당신을 염두에 두고 선영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고 했다.

“닮은 점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선영처럼 뒤끝은 없다. 선영은 정말 뒤끝이 굉장하다. 반면 나는 싸우고도 왜 싸웠는지, 무엇때문에 화가 났는지, 다음 날 기억도 나지 않고 굳이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감독이나 작가들이 대본을 쓰다가 막히면 어떤 배우를 염두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면 더 쉽고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고 하는데 감독님이 그때 나를 떠올렸다고 하더라. ‘내가 이런 성격으로도 읽히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흥미롭게 작업했다.”

▶김래원은 철저히 당신을 보조하는 역할이었다고 말했는데.

“이 영화의 베이스는 재훈의 이야기다. 그가 겪은 일이 보편적인 건 아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다만, 재훈은 본인에게 계속 생채기만 낼 뿐, 그 안에서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다. 래원씨가 그렇게 말한 건 선영이 뒤끝은 있지만 과거를 툴툴 털고 당차게 주변을 정리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뭔가 이야기를 리드하는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서로 비슷한 사랑의 상처를 받았지만 선영은 계속 씩씩하게 나아가고, 재훈은 계속 그 자리에서만 맴돌고 있다. 그 점에서 선영은 그를 치유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여자, 그가 힘들 때 나타난 단비같은 여자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가.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이 이야기가 가장 보통의 연애일거라고 생각하면서 찍었는데 영화를 거의 9개월 만에 다시 보니 한편으론 굉장히 특별한 사랑이고 특별한 이야기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새로웠다. 사랑이란 감정에 많이 무던해진 사람들이 보면 ‘아 맞아. 연애할 때 저렇게 뜨겁고, 바보 같았고, 전화기만 붙들고 살고 그랬는데’하는 생각이 날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저런 사랑하고 싶다. 지지고 볶더라도’라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 영화이고, 이제 막 시작한 연애 초보자들에겐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연애지침서가 될 영화다.”

▶극중 술을 마시고 실수를 많이 하는데, 실제로 이런 경험담이 있는 편인가.

“아직까지 한 번도 블랙아웃 된 적은 없다. 그래서 술취해서 대답도 없는 허공에다 계속 얘기하는 그 기분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 취기가 올라오면 상대방이 되게 괜찮아 보이고 자꾸 장난치고 싶고 센 척도 하고 싶어하는 감정은 있다. 그건 누구나 사랑을 하게 되면 느껴지는 감정이 아닐까. ”

▶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나.

“진짜 짝을 만나 재혼하고, 독신주의를 고수하던 나이 많은 언니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제 짝이 있긴 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이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고 이 일을 하다보니 그렇게 변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에게 잘 맞춰 사는 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이 사람을 만나려고 내가 이 시간까지 그냥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내 단점을 보완해주고, 나는 그 사람에게 빛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원한다. 그런 일방적이지 않은 관계가 환상의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환상을 버릴 나이가 됐는데도 직업적으로 늘 이런 작품들을 찍다보니 여전히 환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웃음)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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