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진영논리와 오럴 해저드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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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9   |  발행일 2019-10-09 제26면   |  수정 2020-09-08
진영논리에 빠질수록 막말
원인은 정치인 콘텐츠 부족
뫼비우스의 띠처럼 악순환
광장정치는 결과 도출 한계
상식과 이성의 정치 회복을
[기고] 진영논리와 오럴 해저드

진영논리란 자신이 속한 정치적 결사체의 이념과 주장은 옳고, 다른 정치적 결사체의 이념과 주장은 무조건 배척하는 것을 말한다. 당쟁이 조선의 정치를 말해 주듯 진영논리는 21세기 한국 정치를 규정하는 키워드다. 조선의 당쟁이 동·서와 남·북, 노론과 소론으로 끊임없이 자기 분열하며 결국에는 서로를 죽이는 살풍경을 연출했지만 처음부터 극단으로 치달은 것은 아니었다.

초기의 당쟁은 학문적 관점의 차이를 바탕으로 대의(大義)와 수신(修身)에 대한 격조 높은 논쟁이었으나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면서 상대를 향한 증오와 분노로 끓어 올랐다. 임진왜란 직전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전쟁발발 가능성에 대한 대립은 진영논리가 얼마나 나라를 황폐하게 하는가를 보여주는 실례다.

오럴 해저드(Oral Hazard)란 막말 또는 말실수를 말한다.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를 빗대 출현한 신조어다. 원래는 금융시장의 불안을 초래하는 정부 당국자의 말실수를 칭하는 금융시장 용어였다.

정치에서 오럴 해저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의 콘텐츠 부족 때문이다. 콘텐츠가 부족한 정치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막말이나 과격한 주장에 의존하게 된다. 좋은 학벌과 경력으로 무장한 한국의 정치인들이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엄연한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콘텐츠가 부족한 정치인은 진영논리에 기댈 수밖에 없고 진영논리에 빠질수록 막말과 억지 주장은 심해진다. 진영 내부의 강경파들이 보내는 열광적 지지의 달콤함을 거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막말은 막말을 낳아서 모두를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이끌게 된다. 결국 진영논리와 오럴 해저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의 궤도를 돌며 악순환에 빠진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진영은 지역주의와 보수·진보의 이념, 세대 간의 가치관이 충돌한 결과로 형성됐다. 한때는 지역감정이 망국병으로 불리며 정치의 헤게모니를 가진 적이 있었지만 이제 진영논리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진영논리가 위험한 것은 진영에 따라 도덕과 상식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에 있다. 또 같은 진영일지라도 특정 사안에 대해 진영과 다른 의견을 내면 적이 되는 게 현실이다. 최근 조국 법무장관 사태는 이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용과 중도의 미덕은 존재할 공간이 없다. 어떤 정치인은 중도란 판타지 소설에 불과하다고 폄훼하지만 역사의 발전은 중도가 이끌어왔지 극단의 진영논리가 이끌지 않았다. 진영논리에서 실체적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진실의 여부보다 내가 지지하는 진영의 주장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진실이 주장의 하위에 놓이는 셈이며 양심이 이익의 아래에 놓이는 셈이다.

진영논리와 오럴 해저드의 결과는 광장의 정치다. 대의민주주의는 실종되고 정제되지 않은 언어가 살벌하게 날아다니는 광장의 정치가 시작됐다. 광장의 직접민주주의는 정치에 에너지는 공급할지라도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대한민국에는 갑과 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병과 정도 존재한다. 묵묵히 삶을 일구는 이 땅의 보통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진영이 아니라 진실이다.

우리는 다수의 세력이 아닌 소수의 편에 있었던 진실과 정의가 역사를 이끌어왔다는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이제 하루속히 진영논리의 폐해를 자각하고 상식과 이성의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의 명문장이 휴지 조각 취급받게 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백재호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기획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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