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갑질 식물 칡넝쿨에서 답을 찾다

  • 이은경
  • |
  • 입력 2019-10-04   |  발행일 2019-10-04 제21면   |  수정 2020-09-08
[기고] 갑질 식물 칡넝쿨에서 답을 찾다

올해도 더위에 지쳐가던 7월 말 즈음 아내가 내민 얼음 몇 알 띄운 칡즙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더위와 갈증을 한 번에 삭여준 고마운 칡즙을 다 마셔갈 때쯤 문득 칡에 대한 일반적인 우리의 인식은 어떨지 생각해 봤다.

칡은 조선 중기부터 뿌리의 녹말인 갈분을 이용해 구황작물로 이용됐고, 줄기의 껍질은 견, 면 등 이전의 직물인 갈포의 원료로 사용했다. 이젠 농업생산성 향상으로 구황작물에서 벗어나 건강식품으로 애용된다. 간에 좋으며 피로를 푸는데 효율적이고 갱년기 증상을 개선하는 에스트로겐 성분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안정시키는 이소플라본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니 최고의 건강식품이다.

그런데 갑질 식물이라니?

구황작물로 허기를 달래고, 옷의 재료가 되는 천을 만들어줬던, 우리 몸을 지켜주고 병을 치유해 주던 고마운 칡은 생각보다 다른 식물에 대한 횡포가 심한 식물이다.

칡이라는 놈은 덩굴성 목본식물로 추위에도 강하고 염분이 많은 바닷가에서도 잘 자라는 기초 체력을 바탕으로 줄기를 20m까지 길게 뻗어가면서 주위의 다른 나무나 물체를 감아 올라간다. 생명력이 워낙 강해 주변의 다른 식물들을 덮어서 햇빛을 가리는 탓에 칡넝쿨이 우거진 곳은 금방 황폐화되기 십상이다.

쓰임새가 많은 식물임에도 토지 장악력이 어마어마해서 제때 손쓰지 않으면 땅 자체를 포기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억센 녀석이다. 환경부에서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고시 중인 가시박이나 환삼덩굴 같은 식물에 비하면 우리에게 고마운 식물이긴 하지만, 자생식물 중에서도 이런 갑질 식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갑질 횡포가 심한 것이 칡이다.

무분별한 칡 확산 우려는 국내뿐만 아니다. 미국도 산의 사면 안정을 위해 칡을 도입했으나 초기에만 그 효과를 미미하게 보았고, 칡의 무궁한 생명력에 참패해 사람과 돈을 써가면서 전문적으로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이쯤되면 칡은 ‘글로벌 갑질 식물’로 분류해도 무방하겠다.

현 정부는 갑질을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우월적 지위에서 비롯된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해 상대방에게 행하는 부당한 요구나 처우를 의미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내 이익과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 특히 약자라고 판단되는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언행 모두 갑질로 볼 수 있다.

칡과 갑질을 연관시켜보면 갑질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정부 주도로 갑질에 대한 종합대책이 수립되고 공공분야로부터 시작한 갑질 근절 의지가 점차 민간으로 확산 중인 이 시점은 곧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칡넝쿨 제거 5개년 계획’과 같이 무분별한 칡넝쿨 확산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해 실시하는 좋은 예라 할 것이고, 또 다른 지자체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칡 수매를 통한 ‘칡넝쿨 비료화 사업’은 갑질 예방과 사후대책을 통한 올바른 조직문화 정착과 그 맥을 같이 하는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계획을 수립하고 환류체계를 구축하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이 된 셈이니 이제 남은 것은 칡을 뿌리째 거두어 매각할 일과 비료로 만드는 수고만 남았다. 이런 수고에는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바른 인식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나 자신부터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라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갈 때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갑질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되는 아름다운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뿌리와 줄기를 퍼트려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이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갑질, 이제는 과감하게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김용하 (한국수목원관리원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