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영화감독 ④ 홍상수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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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20   |  발행일 2019-09-20 제43면   |  수정 2020-09-08
韓 대표 ‘작가주의 감독’…저예산으로 쉬지않고 내놓은 눈부신 작품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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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꽤 오랜 준비기간이 있었다. 그의 부모는 고(故) 이만희 감독의 ‘휴일’ 같은 작품을 제작한 당대의 실력 있는 영화 제작자였다. 유년시절의 홍상수는 타고난 예민함으로 10대 후반까지 방황의 시간을 갖다가 모친의 지인이었던 연극연출가 오태석의 권유로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지만 강압적인 분위기와 무기력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곧 자퇴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캘리포니아예술대학과 시카고예술대학을 거치며 영화를 공부하고 안목을 넓힌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잠시 외주 제작사 프로듀서 생활을 한 뒤 문제적인 장편영화 데뷔작을 만든다. 데뷔작 이전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 감독이라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시사회에 참석한 영화평론가들의 극찬과 함께 홍상수는 단숨에 한국영화계의 주목받는 감독이 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은 소설가 구효서가 1994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낯선 여름’이 원작이지만 원작자 스스로 왜 비싼 원작료를 내게 지불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할 정도로 원작과 영화의 내용이 상이하다. 배우 김의성·조은숙·박진성·이응경이 주연을 맡았고 단역이긴 하나 배우 송강호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감독의 인장 같은 술자리 장면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제26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타이거상과 제15회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을 수상했다.

‘오! 수정’(2000)은 전작 ‘강원도의 힘’에 이어 제53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되었다. 배우 문성근, 정보석, 고(故) 이은주가 함께 했는데, 이 영화가 이은주의 첫 주연작이다. 이 작품까지 홍상수의 초기작 3편이 2003년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에 개봉됐다.

‘생활의 발견’(2002)은 제47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명대사가 회자되었다. 배우 김상경·추상미·예지원이 나온다. ‘극장전’(2005)은 ‘극장 앞(前)’이라는 뜻과 ‘극장 이야기(傳)’라는 뜻을 모두 가지며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우 김상경·엄지원·이기우와 작업해 전작에 이어 제58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다.

‘해변의 여인’(2006)은 배우 고현정·김승우·송선미·김태우와 함께했는데, 이 영화가 고현정의 영화 데뷔작이다. 제9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받으며 홍상수는 감독 데뷔 10주년을 맞는다.

‘밤과 낮’(2007)은 홍상수가 처음으로 디지털로 촬영한 작품으로 제58회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되어 호평받았다. 배우 김영호·박은혜·황수정과 협업했으며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오르세미술관에서 촬영할 당시 미술관 관장이 홍상수의 팬이라 2천만원에 달하는 대관비를 받지 않고 무료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는 홍상수 자신의 제작사 전원사를 통한 저예산 영화제작과 배우들의 노개런티 출연 시스템이 본격화된 작품으로, 김태우·고현정·엄지원·정유미·공형진·하정우·유준상 같은 화려한 배우들의 연기를 맛볼 수 있다. ‘하하하’(2009)는 전작에 이어 수 많은 배우들의 반짝이는 출연이 이어진다. 배우 김상경과 유준상, 예지원과 김영호 모두 홍상수의 전작들의 모습들을 반복하거나 변주하면서 새로 합류한 문소리·김강우·윤여정과 멋진 앙상블을 선사한다. 제63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대상(그랑프리)을 수상했다.

‘북촌방향’(2011)은 ‘오! 수정’에 이은 두 번째 흑백영화로 제6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었다. 배우 유준상·김상중·송선미·김보경·김의성이 함께했는데, 특히 김의성은 이 영화로 12년 만에 배우로 복귀했다.

‘다른나라에서’(2011)는 제6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작품으로 주연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는 2011년 3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열린 홍상수 회고전에서 홍상수를 처음 만난 인연으로 출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유의 언덕’ (2014)은 제7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작품으로, 평소 홍상수의 팬이었던 일본 배우 가세 료는 2012년 일본에 영화 개봉 차 방문한 홍상수 감독과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난 인연으로 캐스팅되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는 배우 김민희·정재영과 함께 작업해 제68회 로카르노 영화제 대상인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이는 1989년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후 26년 만에 한국영화의 수상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은 배우 고(故) 김주혁과 이유영이 주연을 맡아 제64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은조개상(감독상)을 수상했는데, 이 역시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이후 두 번째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는 ‘밤과 낮’과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이어 세 번째로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배우 김민희가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한국배우로는 최초로 은곰상:여자연기자상을 수상했다.

‘풀잎들’(2018)은 제68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뉴욕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 초청받은 작품이다. 배우 김민희·정진영·기주봉 등이 함께했다.

‘강변호텔’(2018)은 전작인 ‘풀잎들’에 이어 강박적으로 죽음에 대해 탐구한다. 배우 기주봉이 제71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지금까지 23편의 장편들을 만들어 온 홍상수 감독은 비슷한 시기에 이력을 시작한 다른 감독에 비해 분명 다작이며 다소 소품에 가까운 작품도 있었으나 분명 그만의 인장을 갖춘 작품들을 일관성 있게 찍어왔다. 1천만명의 관객이 몰리는 영화가 심심치 않게 쏟아지고 제작비가 100억원대를 훌쩍 넘는 영화도 우습게 나오는 시대에 분명 홍상수는 단출한 스태프와 소박한 제작비로 눈부신 작품들을 쉬지 않고 내놓고 있다. 홍상수가 만들어갈 변주가 어디까지 흘러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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