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주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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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20   |  발행일 2019-09-20 제23면   |  수정 2019-09-20

최근 개봉된 영화 ‘사자’의 주역 안성기가 영화 개봉 전 인터뷰에서 한 말이 화제가 됐다. “예전에 내가 찍은 광고에서 내 주름을 지웠더라. 주름을 살려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름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힌 말이다. 연기인생을 오롯이 주름에 새겼다는 평가를 받아온 안성기다운 발언이다. 조금이라도 젊어보이려는 동안(童顔) 열풍 속에서 뚝심있게 주름 가득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안성기는 그래서 더 인기가 높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요즘은 주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쉰, 예순을 넘겼는데도 TV나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주름, 잡티가 없고 20대 피부처럼 탱글탱글하다. 이런 연예인들 덕분에 성형외과, 피부과는 문전성시다. 얼굴 주름은 연륜을 새겨 표현하는 나무의 나이테와 같다. 사람 얼굴에는 다른 동물과 달리 표정 근육이 있어 표정주름이 생긴다. 젊었을 땐 표정주름이 생겼다가 원상회복되지만 20대 후반부터 피부노화가 진행되면 고정주름으로 자리잡는다. 이 주름에는 인간 삶의 희로애락이 스며있다. 주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배우 조민수는 “희로애락이 느껴져야 살아있는 얼굴이고 주름도 나의 이야깃거리”라 했다. “주름에서 깊이가 나오고 주름에 감정이 많이 묻어있다”는 안성기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나이를 먹어서 생기는 주름은 표면적 변화이지만 여기에는 연륜이 주는 성숙미가 있다. 나무는 나이테가 커질수록 주위에 더 넓은 쉼터와 더 많은 목재를 제공한다. 인간의 주름도 나이테처럼 가치있는 변화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름에 거부반응을 가진다. 이는 늙음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각도 한몫한다. 우리 사회에서 늙음은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됐다. 노인에게 부정적 의미의 충(蟲)을 붙여 ‘노인충’ ‘연금충(노령연금 등으로 생활하는 노인)’ 등으로 폄훼한다. 이런 현상은 비판받아야 하지만 아름다운 노년을 만들어가는 지혜 역시 필요하다. 미국배우 리즈 위더스푼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배우의 의무다. 외모를 관리한다며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단 내면에 투자하는 게 더 매력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여기서 품위있는 주름이 나온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는 나라다. 이미 유엔이 정한 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2025년쯤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름다운 주름이 더 간절하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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