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13] 반야사 배롱나무...우러러 500여년 자태에 혹하고…발아래 붉은 자취에 취하고

  • 김봉규
  • |
  • 입력 2019-09-19 08:05  |  수정 2021-07-06 10:29  |  발행일 2019-09-19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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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백화산에 있는 반야사 배롱나무. 그동안 본 산사 배롱나무 중 최고다. 1994년에 수령 500년의 보호수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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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신원사의 대웅전과 독성각 사이에 있는 배롱나무. 이 나무도 보기 드물게 오래된 산사 배롱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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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꽃잎들이 붉은 수를 놓고 있는 반야사 배롱나무 아래.

오래된 산사 중 배롱나무가 없는 곳은 거의 없는 것 같다. 100~200년 정도 된 나무에서부터 500년 이상 된 나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배롱나무는 산사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소중한 존재가 되고 있다. 이런 존재이지만, 배롱나무에 대한 사찰의 관심은 부족한 듯하다. 오래된 배롱나무가 있어도 사찰이 그 수령을 파악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안내표지도 없다. 고목 배롱나무가 있는 여러 산사를 돌아보며 확인하려 했지만, 답을 주는 이를 찾기가 어려웠다. 모든 사찰을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산사 배롱나무를 취재하며 많은 배롱나무 중 유일하게 보호수로 지정하고 수령을 추산해놓은 배롱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충북 영동의 백화산 반야사에 있는 배롱나무다. 그동안 직접 본 배롱나무 중 최고였다.

극락전 앞 활짝 꽃피운 두 고목
방문객들 사로잡는 사찰 주인공
보기드물게 郡 보호수로 지정돼

신원사 배롱나무도 많이 알려져
한아름 몸통…수령 400년 추정


◆산사 배롱나무 중 최고

지난 8월15일 광복절에 대구를 출발, 500년이 넘은 배롱나무가 있다는 반야사를 찾아갔다. 처음 가보는 사찰이었다. 도중에 비가 내리기도 했는데, 비에 젖은 배롱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위안하며 달려갔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반야사가 가까워지자 수려한 산세와 하천이 눈에 들어와 더위를 잊게 했다. 그곳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반야사 앞으로는 백화산(지장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石川)가 휘돌아가고 있다.

반야사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았다. 작은 사찰이었다. 대웅전과 극락전이 있고 몇 채의 다른 건물이 있는 정도였다. 반야사 마당에 들어서자 멀리 보이는 배롱나무가 바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배롱나무는 규모도 크고 모양도 좋으며, 꽃도 풍성하게 핀 상태였다. 극락전 앞에 두 그루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한 나무로 보인다. 극락전은 대웅전이 새로 건립되기 전에는 중심 법당이었는데, 삼칸짜리 작은 법당이지만 배롱나무가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배롱나무 앞에는 작은 삼층석탑(보물)이 서 있었다. 이 배롱나무는 단연 사찰의 주인공이 되고 있었다. 꽃을 피우지 않을 때도 그럴 것 같았다.

이 두 그루 배롱나무는 산사 배롱나무로는 보기드물게 보호수(영동군수 지정)로 지정돼 있었다. 1994년에 지정된 것인데, 안내판에는 당시 수령은 500년이고, 나무 높이는 8m와 7m, 흉고 직경은 1.5m와 1.2m 등으로 기록돼 있다. 반야사 배롱나무는 오래전부터 반야사를 대표하는 명물이었다. 사찰 옆 산자락의 호랑이 모양 돌무더기와 함께.

배롱나무로 다가가 다양한 포즈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이어졌다. 사진작가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조금 있으니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배롱나무 밑은 떨어진 꽃으로 붉은 색의 고운 비단을 깔아놓은 듯했다. 사람들이 혹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보슬비로 촉촉하게 젖으니 색깔은 더 고와졌다. 극락전 앞에 앉아 배롱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 근처 절벽 위에 자리한 문수전으로 향했다. 다녀오니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다시 이리저리 둘러보며 배롱나무를 감상했다. 한 스님이 지나가기에 잠시 배롱나무에 대해 물어봤다. 스님은 친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500년이 넘은 나무이고, 조선시대 무학대사가 가지고 다니던 배롱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꽂아두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둘로 나눠져서 자라게 되었다고 하는, 그야말로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런데 이 전설이 신빙성이 있으려면 수령이 100년은 더 늘어나야 한다. 무학대사(1327~1405)는 1405년에 별세했으니, 죽은 해에 심었다 해도 600년이 훨씬 지난 때의 일이다.

그리고 이 배롱나무는 오래전부터 사진작가들에게 많이 알려져 여름이 되면 해마다 수많은 전화가 걸려와 전화를 받는 일이 성가실 때가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꽃이 만발했는지, 언제 절정이 되는지, 언제 가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등을 물었는데,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 예전만큼은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고 했다. 70여년 전 관음전에 관음보살이 현신했는데, 당시 한참 동안 배롱나무 위에 머물다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할머니 신자들이 들려줬다는 말도 했다.

◆신원사 배롱나무

계룡산 신원사(新元寺) 배롱나무도 오래된 고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있는 신원사는 작은 사찰이다. 651년 열반종의 개산조(開山祖) 보덕이 창건했고, 신라 말기에 도선이 이곳을 지나다가 법당만 남아 있던 절을 중창했다고 한다. 그 후 1298년 중건, 1394년 중창(무학대사), 1866년 중수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는 이처럼 오래되었으나 규모는 크지 않다. 대웅전, 영원전, 독성각 등 몇 채의 전각이 있을 뿐이다.

이 신원사 대웅전 양 옆에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는데, 독성각과 대웅전 사이의 배롱나무가 보기 드물게 오래된 고목이다. 이 배롱나무는 지난 8월22일 찾아갔다. 붉은 꽃을 여전히 한창 피우고 있었다. 일부 가지는 말라버린 상태였지만, 전체적으로 건강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의 몸통 줄기를 가진 나무였는데, 두 팔로 안으니 한아름 되는 굵기(160㎝ 정도)였다.

인터넷에 수령이 600년 정도 된 나무라는 내용이 있어 근거가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도 할 겸 신원사를 찾아갔는데, 신원사 종무소 관계자나 스님들 중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 배롱나무는 반야사 배롱나무와 비교하면 굵기가 좀 가늘다. 반야사 배롱나무는 한아름이 훨씬 넘는데, 이 배롱나무는 딱 한아름 굵기였다. 단순히 굵기만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보호수로 지정된 서원 등지의 배롱나무 고목의 경우를 참고해 추정한다면 400년 정도 되어 보였다.

산사의 배롱나무로는 반야사의 두 그루 배롱나무와 이 배롱나무를 대표적 산사 배롱나무 고목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사찰들이 산사의 배롱나무 수령을 측정하거나 추산해 기록을 남기고 잘 키워가면 좋겠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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