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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죽은 제갈공명과 옥중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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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17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쳤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는 위나라의 사마의(중달)가 숙적인 촉나라의 제갈량(공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촉군을 추격하다 멀쩡히 살아 있는 공명의 모습을 보고 혼비백산해 달아났다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중달이 본 것은 공명의 생전모습을 본떠 만든 목각인형이었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물리친 셈이다.

이 같은 일이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연말 사면설’과 ‘옥중정치’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그는 내년 4·15 총선을 앞두고 다시 ‘부활’했다. 우리공화당은 그와의 ‘정치적 교감’에 따라 당명을 바꿨다고 주장하고, 자유한국당은 ‘친박·비박’ 논란에 휩싸였다. 박근혜정부에서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황교안 대표 체제가 되면서 친박계 인사들이 주요 당직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에 당 안팎에선 ‘도로친박당’이라는 조롱섞인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재는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을 촉구하는 대여(對與) 공세로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지만 친박·비박 간 계파 갈등은 언제 재발할 지 모른다.

이런 이슈는 16일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지 900일 만에 서울구치소를 벗어나 외부 병원에 입원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어깨 수술을 받는 그가 구치소 밖에서 최소 2개월 이상 머무를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이 올 연말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해 여당의 총선 승리를 모색할 것”이라는 소문도 다시 확산하고 있다.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TK)에서도 신(新) 박근혜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는 “TK 지역구에 출마할 우리 당 후보들의 준비가 완료됐다. 추석 이후 그 면면이 공개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자못 자신감이 넘치는 발언이다. 실제로 동구을에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수성구갑에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당시 변호를 맡았던 서석구 변호사, 달성군에는 곽성문 전 의원 등 인지도 높은 보수권 인사들이 공화당 소속으로 총선에 나설 것이라는 풍문이 지역 정치권 전반에 나돌고 있다. 이들의 출마설이 현실화될 경우 총선 판도까지 뒤흔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이 사면된다면 또다른 TK를 중심으로 한 보수정치권의 ‘이슈 블랙홀’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의 ‘진박’마케팅이 다시 고개를 들지도 모른다. ‘수감 상태인 박근혜가 현실 정치인들을 곤경에 빠뜨린 꼴’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이 보수정치에 미친 영향력과 상징성은 누구보다도 크다. 노년층 보수 지지자들에게 그는 추억이고 살아있는 역사다. 한때는 그들이 기대하던 ‘미래권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더이상 미래권력이 아니다. 집착은 또다른 갈등과 분열을 낳는다. 정치는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TK도 박근혜를 이만 떠나보낼 때가 됐다. 그를 역사 속으로 보내고 새 정치를 시작해야 할 때다.

민경석기자<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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