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질문 허용의 중요성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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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6 07:51  |  수정 2020-09-09 14:14  |  발행일 2019-09-16 제18면
“주말마다 대화의 시간 가져 질문하는 가족문화 만들어야”
20190916

교육에 있어서 ‘아이들의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서 논한다는 것은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질문이 있는 수업은 교사 대부분이 인정하는 ‘좋은 배움’이 일어나는 필수 조건이다. 이러한 관심에 따라 ‘하브루타(havruta)’ ‘질문 교육과정(question curriculum)’ 등 여러 교육자들의 이론이나 교육과정들이 번져가는 한편, 자발적 교사 연구체 역시 꾸준히 맥을 잇고 있다. 질문은 수업을 자기 주도적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한편, 학생들을 정말 탐구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런 수업을 위해서는 학생은 좋은 질문을 하는 연습을, 교사 역시 질문을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연습을 해야 한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변하는 태도 길러
의문 가진 아이는 문제도 스스로 해결
가정에서 체득한 습관 학교서도 도움


가정에서도 질문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질문은 학생들의 학습 능력만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인격과 사회성 형성, 더 나아가 가족 공동체의 유대감, 친밀감 등에도 깊게 영향을 미친다. 앞서 언급했던 ‘하브루타’ 또한 질문하고, 대화하며, 토론하면서 논쟁하는 유대인들의 가정교육 방법이기도 하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R. G. 콜링우드는 사고를 ‘질문과 대답의 복합체’로 이야기하고 있다.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진정한 사고,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거다. 그는 질문을 ‘지식의 정신(soul)’으로 정의하며, 질문이 없는 지식의 무용성을 이야기한다. 심리학자 스턴버그는 문제 해결의 능력보다 문제 제기의 능력을 강조한다. 문제해결능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해결에 대한 필요성을 찾지 못하면 문제해결능력이 발현될 리 만무하다. 이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새로운 사회 변화 속에서 학습자는 스스로 문제를 찾고, 이에 대한 의구심과 궁금증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공동의 주장을 하고 있다. 미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갖추어야 할 역량이라는 것이다. 가정에서 질문이 살아나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논의들과 그 맥락을 함께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정에서 질문을 시작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질문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질문거리가 있는 집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질문은 알고자 하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알고 싶은 것이 없다면, 질문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가정에 항상 특별한 것을 준비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대화가 이어지는, 가족 구성원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주말마다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고, 가족이 일상적으로 같이하는 일을 일주일에 한 번쯤은 만드는 것도 좋다. 내가 아는 지인 한 분은 일요일 아침 식사는 반드시 가족과 같이하도록 가족 규칙을 정하고 있는데, 이런 가운데에서 대화가 된다고 했다. 가족의 상황에 맞는 어떤 자리에서 일단 이야기를 시작해야 질문거리가 생긴다. 더불어 질문거리가 생겼다 해도 질문을 하고 싶게 만드는 대답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에게 질문이 생겨났을 때 무시하거나 면박주거나, 성의 없는 대답은 아이의 질문을 포기하게 한다. 그리고 함께 질문하자. 아이에게만 질문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질문하는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질문이 허용된 아이들은 어떠한 삶의 국면에서도 호기심, 그리고 적극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원동력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아이들은 어떠한 상황이든 궁금한 점, 해결하고 싶은 것, 나누고 싶은 맥락이 있다. 주어진 대로 그저 수동적으로 생활하는 아이들과는 어떠한 측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똑같이 배워도 받아들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삶의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문을 가진 아이들은 고민하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하게 되고, 이는 온전히 이 아이만의 성장점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이는 좋은 답변을 하는 태도로 번져나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체득한 질문하는 습관은 학교에서도 충분히 전이가 가능하다. 실상 학교보다도 가정이 그러한 습관 형성에 훨씬 용이하다. 아이에게 공부 잔소리를 할 바에는 질문을 이끌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면서도 효과적이다. 소크라테스도 ‘지식은 가르침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소위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방법’이 질문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질문하는 가정을 만드는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은 접어두자. 사실 일반적으로 모든 가정은 한때 아이들에게 질문을 허용하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이게 뭐야?’를 연발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님 모두는 그 어떤 말도 안 되는 질문에도, 수십 번 반복되는 같은 질문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답을 해 주었고, 끊임없이 격려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무시하거나 일방적으로 질문을 막지 않았으며, 가정에는 아이들의 질문거리가 가득했다. 과장하거나 특수한 유형이 아닌, 정말 일반적인 가정 이야기다. 전혀 없었던 일이 아닌 분명 존재했던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때의 아이도 그대로이며, 아이에 대한 사랑도 변한 것이 아니다. 이제 질문이 가득했던 그 때의 가정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김견숙<경북대사범대학부설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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