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저 언덕너머로 가서 빨리 깨달음을 얻자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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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6 07:39  |  수정 2020-09-09 14:15  |  발행일 2019-09-16 제15면
[행복한 교육] 저 언덕너머로 가서 빨리 깨달음을 얻자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지난 여름을 떠올려보면 뜨거웠던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선 NO아베와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있었다. 한편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 ‘반일 종족주의’가 기름을 부어 3·1혁명 100주년에 맞게 기껏 입시문제 수준에 머물러 있던 역사지식을 깊게 만들어 준 역사교육의 장이 되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일본은 도쿄올림픽에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욱일기를 패럴림픽 메달 디자인으로 사용하겠다고 하고, 히로시마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을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하여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시민들의 감정을 욱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온 국민들은 NO아베를 너머 세계시민들과 함께 반전반핵평화운동을 공부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구교육청은 이에 대한 아무런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개학 직후 대부분의 교육청이 경술국치일을 맞아 조기를 게양하도록 했지만 대구 학교의 태극기는 동참하지 않았다.

NO아베운동을 언론에서 사라지게 한 것은 언론이었다. 언론은 온통 ‘조국대전’으로 도배를 하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진보로 살려고 노력하는 내가 가장 뼈아팠던 말은 ‘진보의 민낯이 드러났다’였다. 이 지적은 조국 장관도 자신이 가진 지식과 했던 말에 비해 현실 자본과 입시경쟁, 가족이라는 현실을 넘어서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일 것이다. 이 비판에서 민낯은 맨얼굴도 아름답지만 화장이나 분장으로 자신을 더 아름답게 보이려는 것이라는 해석보다는 가식이나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조국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사실 누구도 언과 행을 일치시키며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남을 가리킬 때 세 개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부족한 인간이 앎이 삶으로 나타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교육이고 수양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닌가. 조국도 그저 나와 다르지 않은 한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추석 연휴에 낙산사를 여행하면서 낙산사가 2005년 불에 탄 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불심으로 다시 복원한 전각들도 대단했지만 나는 숲이 불탄 곳이 이렇게 빨리 숲으로 쌓여 있다는 자연의 위대함에 놀랐다. 나는 홍련암에서 나누어 준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는 반야심경을 읽다가 옳다구나 싶었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어린이 둘이 나눈 말은 묘한 충격을 주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에 ‘맞아 결과만 좋으면 돼’라는 대화였다. 아이들의 말이 비바람과 가뭄, 화재와 같은 고난의 과정을 극복하고 좋은 결과를 얻으면 된다는 뜻이라면 귀한 깨달음이지만, 혹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높은 자리나 부만 얻으면 된다는 시쳇말을 아이들이 받아들였을까 걱정이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해서 유명해진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말은 현실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반야심경의 말씀을 외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른이 아이에게 유산처럼 물려준 것은 아닌가 씁쓸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고, 지금 좋은 말로 화장하듯 글을 쓰는 나도 가을 추수 때 풍구에 넣어 돌리면 아마도 쭉정이로 떨어질 것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것은 현실제도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경쟁과 차별에서 혐오로 까지 나가버린 현실에서 나약한 사람더러 바뀌라고 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지금 우리 곁에는 차별에 저항하는 수많은 현장이 있다. 인간이 욕망을 없애지 못한다면 이미 정해진 기회의 평등이나 현실로 굳어진 과정이 공정하기란 어렵다. 어쩌면 결과의 공평이라는 정의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을 한다. 그나저나 이 모든 논란도 기후위기로 지구별의 위기가 닥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반야심경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라고 맺는다. 가자 가자 모두 가자 저 언덕너머로 가서 빨리 깨달음을 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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