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 승격 70년, 포항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다 .1] 일월정신이 깃들다

  • 박종진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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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9   |  발행일 2019-09-09 제11면   |  수정 2019-09-09
기술·문화의 통로…세상 빛 밝히며 풍요 지향하는‘해와 달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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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포항 호미곶의 해맞이광장에는 ‘연오랑과 세오녀’ 조형물이 세워져있다. 서기 157년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신라(사로국)의 해와 달이 사라졌고, 신라의 사신이 세오녀가 짠 비단을 갖고와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해와 달이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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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남구 동해면 도구리에는 신라시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장소인 일월사당이 복원돼 있다. 삼국유사에는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고도 했는데 도기야는 현재 도구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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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동해면 임곡리에 위치한 연오랑 세오녀테마공원. 공원에는 세오녀가 짠 비단을 보관했다는 귀비고(貴妃庫) 전시관을 비롯해 신라마을, 일월대, 연오랑뜰, 세오녀뜰, 산마루정자, 호미둘레길 등을 갖추고 있다.

▨ 시리즈를 시작하며…

포항은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도시다. 고대부터 강과 들, 바다를 근간으로 인구가 밀집했고, 고유한 문화를 일궈냈다. 특히 지정학적 특성상 수천년 동안 새로운 문물과 문화의 통로 역할을 해왔다. 또한 세상에 빛을 밝히며 풍요와 화합을 추구해 온 곳이 포항이다. 이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에서 엿볼 수 있다. 포항을 ‘일월(해와 달)의 고장’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항은 또 ‘호국의 고장’이다. 국난이 있을 때마다 군사적 요충지였고, 수많은 이들이 스스로 나아가 나라를 구했다. 무엇보다 시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호국의 신념을 올곧게 이어 온 곳이 포항이다. 근래에 들어서도 포항은 한국 경제·산업의 중추 도시로 근대화를 이끌었다. 새마을운동의 표본을 보여준 것은 물론 영일만 신화가 싹 튼 곳이다. 포항이 한국 근대화의 밑거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정신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속 강소도시 포항을 있게 한 것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정신적 신념이 내재돼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정신은 세상에 빛을 밝히며 풍요로움을 지향한 ‘일월 정신’,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스스로 일어나 온 몸을 바친 ‘호국 정신’,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근대화의 초석을 다진 ‘개척 정신’으로 요약된다. ‘일월·호국·개척’은 곧 포항의 정체성이자 새로운 포항을 이끌어 갈 시대정신이다. 영남일보는 역사 속에 깃든 포항의 정체성을 새롭게 조명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9차례에 걸쳐 다룬다.

국내서 거의 유일하게 배경지 알 수 있는
해와 달 상징‘연오랑 세오녀’설화 간직
日 건너간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제사 지내자
신라에 해와 달이 예전처럼 빛났다 전해져

일월정신, 포항 개척·호국 정신과 맞물려
화합과 단결 도모…새로운 삶 개척함 의미



포항은 호미곶의 일출과 포스코, 방사광가속기에 이르기까지 자연, 과학의 빛이 함께 어우러진 ‘빛의 고장’이다. 특히 국내에선 거의 유일하게 배경지를 알 수 있는 ‘태양과 달의 신’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바로 연오랑 세오녀(延烏郞 細烏女) 이야기다. 이 설화는 포항의 정체성 중 하나인 일월정신과 맞닿아 있다. 지역 역사와 문화의 뿌리이자 지역민의 자부심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오랑 세오녀 설화에 깃든 일월정신은 포항의 또다른 정체성인 개척·호국정신과도 맞물려 있다.

#1. 해와 달, 그리고 연오랑 세오녀

연오랑과 세오녀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三國遺事 卷第一 紀異 第一)’과 ‘필원잡기(筆苑雜記)’ 등에 수록돼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즉위 4년, 정유(丁酉·서기 157년)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연오가 바다에 나가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또는 물고기)가 나타나 그를 등에 업고 일본으로 데려갔다. 이 광경을 본 그 나라 사람들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며 연오를 왕으로 삼았다. (일본제기를 살펴보면 이 무렵 신라 사람으로 왕이 된 사람은 없었다. 연오는 변방 고을의 작은 왕이지, 진정한 왕은 아닐 것이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세오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연오가 벗어놓은 신발을 발견하고 바위에 올랐다. 그랬더니 그 바위도 세오를 태우고 일본으로 향했다. 이를 보고 놀란 사람들이 왕에게 아뢰었고, 부부는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후 세오는 귀비(貴妃)가 됐다.

연오와 세오가 떠나자 신라는 해와 달이 빛을 잃어버렸다. 일관(日官, 하늘의 조짐을 살피고 점을 치는 일을 담당한 사람)이 말했다.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내려와 있었는데, 지금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이한 변고가 생긴 것입니다.”

왕은 사신을 일본에 보내어 두 사람에게 돌아오라고 했다. 그러자 연오가 말했다.

“내가 이 나라에 도착한 것은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오. 그러니 이제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그 대신 왕비가 짠 고운 명주 비단이 있으니, 이것을 갖고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잘 해결될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곧 비단을 내려주었고, 사신은 돌아가 이 일을 아뢰었다. 연오의 말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해와 달이 예전처럼 빛이 났다. 그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보관하고 국보로 삼았으며, 그 창고의 이름을 귀비고(貴妃庫)라고 했다.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도 했다.

#2. 포항지역 곳곳에 남은 설화의 흔적

연오랑 세오녀 설화는 영일지역의 읍락국가인 ‘근기국’의 이야기로 보는 분석이 많다. 신라(사로국)의 세력확장을 피해 태양신을 숭배하던 소국의 주요 인물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학설이다. 즉 연오랑과 세오녀를 개인이 아닌 한 집단으로 봐야 하고, 이들이 일본 이즈모 지역으로 이동한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연오랑의 이름도 ‘영일’(迎日·해를 맞이하다)이란 지역명을 차용한 것으로 본다. 연(延)과 영(迎)은 한자 자체가 다르지만 두 글자는 음과 뜻이 비슷해 혼용되는 경우가 있으며, 실제 필원잡기에는 연오가 아닌 영오(迎烏)로 표기하고 있다. 오(烏)도 일(日)과 같은 뜻으로 풀이한다. 고대인들은 까마귀가 생명을 잉태하는 ‘태양의 상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삼족오(三足烏)다. 삼족오는 태양에 살면서 천상의 신과 인간세계를 연결해주는 신성한 길조(吉鳥)이자 동아시아에서는 태양신으로 숭배했다. 특히 태양의 광명사상, 맑고 순수한 생명정신으로 살고자 했던 정신이 깃들어 있어 이상세계를 상징했다고 한다.

지역명을 인물화하면서 신화적 요소를 넣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한 랑(郞)은 사내 또는 주인을 뜻한다. 결국 연오랑은 영일지역에 거주하던 세력의 우두머리인 셈이다.

포항 지명 곳곳에는 이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세오가 짠 비단을 갖고와 제사를 지냈다는 일월지를 비롯해 태양과 관련된 지명이 특히나 많다. 희날재(白日峴), 광명(光明)리, 옥명(玉明)리, 중명(中明)리, 등명(燈明)리, 일광(日光)리, 용덕(龍德)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곳 지명들의 유래를 살펴보면 연오랑 세오녀 설화와 밀접한 부분이 발견된다. 영일읍지에 따르면 광명리의 경우, 신라 때 해가 빛을 잃었다가 제사를 지내자 제일 먼저 이곳에 햇빛이 비쳤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중명리는 세오녀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자 광명이 비치는 한가운데에 위치했다고 해서 이름 붙였다고 한다. 또 일월지를 낀 마을이라 일광리, 일월지에서 용이 승천했고, 그후 마을 주민들이 덕을 입었다고 해서 용덕리라 불렀다고 한다.

#3. 기술·문화 통로이자 일월정신의 고장

선조들은 해와 달을 동등시하고 함께 섬겼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일월놀이푸념, 일월신 궁상이와 해당금이 등 설화와 서사무가에서도 해와 달은 동시에 등장한다. 연오랑 세오녀 설화와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포항이 ‘일월의 고장’이라 불리는 배경이다.

또한 포항은 고대부터 사철(沙鐵)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국가에서 철은 곧 경쟁력이었다. 제철기술이 뛰어나면 농사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붉은 용광로에서 나오는 검은 철 역시 ‘해와 달’을 연상케 한다. 포항이 세계적인 철강도시로 거듭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연오랑과 세오녀 이름에 쓰인 오(烏)자가 ‘태양’이 아닌 ‘제철기술’을 상징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검을 오(烏)’가 사철을 뜻한다는 설이다. 연오와 세오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표현한 것이 제철 기술자들이 떠나 대장간의 불이 꺼졌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연오의 연(延·두드릴 연)은 철을 두드려 펴는 기술을, 세오의 세(細·가늘 세)는 정밀한 기술(제철·길쌈)로 분석하기도 한다. 단순히 한 집단의 해외 이주가 아닌 기술의 전파로 보는 이유다.

일부 학자는 일본에서 신라 명신으로 추앙받는 ‘아메노히보코’와 비단 짜는 여신 ‘히메고소’를 연오와 세오로 풀기도 한다. 이처럼 기술·문화의 통로이자 태양(신앙)과 제철기술을 동시에 가진 포항의 중요성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볼 수 있다. 신라가 오랜시간 번영을 누린 배경에 포항의 철과 항구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미뤄 짐작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볼때 포항은 ‘일월정신’이 깊숙이 뿌리내린 고장이다. 일월정신은 온누리를 밝히는 광명(光明)을 뜻한다. 모든 세상에 빛을 밝혀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광명사상으로 대변되는 삼족오의 이상세계와 맥을 같이한다. 풍요는 화합과 단결, 근면, 성실, 기술, 개척 등의 정신이 요구된다.

즉 일월정신은 구성원들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고, 불굴의 정신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일월정신은 포항의 정체성이자 시대정신인 셈이다.

글=박종진기자 pjj@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참고=포항을 빛낸 포항인물, 포항문화원, 2010. 연오랑·세오녀 설화의 연구, 이상준, 2010. 한국민속문학사전. 영일읍지. 국역 읍지 흥해, 영일, 장기, 청하, 포항문화원, 2003.
공동기획지원: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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