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매미들의 집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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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6   |  발행일 2019-09-06 제40면   |  수정 2020-09-08
수년간 허물 벗으며 지상의 삶 준비하는 매미, 수년간 무명의 시간 벗으며 성장하는 작가
[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매미들의 집
[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매미들의 집

며칠 사이 단비가 두 번이나 내렸다. 내리는 비에 살짝 더위가 씻긴 듯하다. 단풍을 꿈꾸며 견딘 가을의 승리를 예감하는 순간이다.

한낮 더위는 아직 남았다. 여름의 증표는 더위뿐만이 아니다. 마을이 통째로 매미소리에 포위된다. 대책도 없이 쏟아내는 매미소리를 막을 길이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요란함이 어림잡아 80데시벨은 넘지 싶다. 불편한 동거가 두 달째 지속되니 신기하게도 익숙해진다. 소음이 아닌 생명의 소리로 들리기 시작한 것은 사나흘 됐다. 오늘도 매미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7월 어느 날이었다. 아파트 화단 양지쪽에 유치원생들이 쪼그리고 앉아있다. 매미를 관찰하고 있었다. 살핀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 곁으로 다가가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었다. 성충으로 거듭나려는 매미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매미는 허물벗기에만 몰두했다. 먼저 빠져나온 발이 몸에 밀착된 껍질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내 새 몸이 드러났다. 새로운 탄생은 사람 곤충 할 것 없이 신비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몸에서 분리된 허물은 성충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했다. 속이 빈 것을 알아채지 못하면 생명체로 착각할 것이다. 한때는 보호막이자 집이었을 껍질이 선퇴(蟬退)가 되자, 미동을 않는다. 경직된 탈피는 기동력을 상실했다. 새로운 삶에게 자리를 내어 준 껍질은 형체로만 종족을 증명했다. 이런 매미가 사유의 촉매제일 때가 있다.

매미에게서 사람들의 행보를 본다. 2010년에 기획했던 ‘신진작가 발굴 프로젝트’가 생각난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20대 청년작가 8명을 ‘신진작가 발굴 예술창작 모색전’에 초대했다. 넉넉하지 않은 지원금으로 진행한 기획전이다. 주인공은 마음가짐으로 젊음을 증명하던 청년작가들이다. 성실한 청년들 덕분에 보람이 두 배였다. 열악하나 환경 탓을 하지 않던 그들은 현재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30대 작가로 성장했다. 국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 대열에 이름을 올린 이도 있다. 기쁨과 긴장, 분발을 하게 하는 동행들이다.

매미의 허물벗기에 청년작가들의 삶이 얼비친다. 땅을 파고 들어간 애벌레는 기나긴 지하 생활이 필수다. 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허물벗기만 수차례. 특정 시기가 되면 커진 몸에 새 껍질을 입히고 다른 도약을 준비한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 지하에서 지상의 삶을 준비한다. 생의 대부분을 땅 속에서 보내는 매미의 집은 지하인 셈이다. 햇빛 찬란한 창공을 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한 후에도 7일에서 30일 정도가 살아있는 날의 전부란다.

허물벗기는 곤충들만의 숙명이 아니다. 굼벵이가 매미로 변모할 때처럼 작가도 여러 겹의 허물을 벗으며 성장한다. 땅을 뚫고 나온 매미의 애벌레가 나뭇가지와 같은 발판을 찾듯이, 작가도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갤러리(또는 기관이나 단체)를 물색한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 발톱으로 있는 힘껏 나뭇가지를 잡는 매미처럼 작가도 든든한 지원자나 응원이 필요하긴 마찬가지. 그 사이 매미와 작가 모두 바람에도 끄떡없는 단단한 정신과 몸을 갖추어간다.

작가에게 무명의 시간은 매미의 지하생활에 비견된다. 무명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심은 희미해진다. 얕은 경험의 혈기는 공명심에 이끌린다. 작업의 숙성보다 작품 판매에 더 혈안이다. 간교한 자기 꾀에 자기가 속거나 남을 희롱하는 우도 범한다. 불공정한 평가에 눈을 감고 권모술수로 검은 기회를 노리기도 한다. 평생 일궈온 누군가의 자리를 낚아채거나 혹세무민에 동참할 때도 있다. 자기 합리화를 이성적 판단이라 우긴다. 유혹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실망은 상상 이상이다.

아도르노(1903~1969, 독일 사상가)가 지적한다. ‘합리적 이성이 권력과 결탁하면 도구화되어 인간을 파괴시키는 무기로 변질될 수 있다’고. 후기구조주의자들(푸코, 데리다)이 비판하는 이성의 역기능이다. “능수능란하기보다는 소박하고 우둔한 편이 나으며, 치밀하고 약삭빠르기보다는 소홀하고 거친 편이 나으니라”(채근담). 마부작침(磨斧作針)의 자세까지 요구하면 무리일까.

혹자는 예술가의 길이 미지를 찾아가는 여행길이라고 한다. 여행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지름길과 에움길. 평범한 인생길이라고 다를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냉철한 지조와 따스한 인덕이 혼탁한 세상을 중화시키는 기틀이 되었으면 한다. 묵묵히 어둠을 견디며 성장을 도모하는 매미소리에서 종·속·과·목의 경계를 초월한 울림을 듣는다. 맹렬히 토해내는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제 소임에 충실한 삶의 에너지로 다가온 이유였다.

화가·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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