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찬란한 만찬

  • 이춘호 음식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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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6   |  발행일 2019-09-06 제33면   |  수정 2019-09-06
■ 팔도 전어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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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저급한 어종으로 수협 위판장에서 푸대접을 받았던 전어. 이제는 가을전령사는 물론 ‘국민 생선’으로 등극했다. 20여년 전부터 전어 특수가 일었고 그중 부산 낙동강 하구 명지시장 회타운, 전남 광양시 망덕포구, 경남 하동군 술상포구, 충남 서천군 홍원항 등이 전국적 전어축제 명소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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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의 3대 요리는 크게 뼈째썰기 버전의 회, 구이, 그리고 무침회 등으로 대변된다. 뼈째썰기는 보기와 달리 썰기가 무척 어렵다. 초보의 미숙한 칼놀림으로는 제대로 된 식감을 낼 수 없다.

“개천에서 용났다!” 어쩜 가을 전령사로 등극한 ‘전어’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가을 전어가 전국민적 지지를 받은 지 얼추 20년이 돼 간다. 예전엔 송이가 전어 자리를 꿰찬 것도 사실이다. 이젠 전어가 송이 자리를 밀어내고 있는 형국이다. 봄 도다리는 못 먹어도 괜찮지만 가을 전어는 예방주사처럼 맞으려 안달이다. 저급 어종이었던 전어는 이제 고급 어종이다. 하지만 우린 전어만 먹을 줄 알지, 전어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은 바닥권을 맴돈다. 골수 마니아가 아니고선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지는 ‘전어 찬가’의 속내를 다 알 도리가 없다.


수온 내려가면 흙 토해내 자연해감…비린내 적은 ‘가을전어’
낙동강·금강·영산강·섬진강과 바다 맞닿은 ‘기수역’주활동
20년째 열리는 ‘망덕포구 전어축제’등 전국 10여곳서 개최
물동량 60% 남해서 산출…낙동강권 살려낸 ‘국민생선’ 등극



그동한 전어에 대한 푸드스토리는 책으로 묶어내도 좋을 정도로 풍성하게 축적됐다. 남·서·동해안에 걸친 각기 다른 전어 이야기는 여행작가, 음식칼럼니스트 등을 통해 많이 노출됐다. 그래서 위클리포유는 이번 주 전어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한데 담아보기로 했다.

전어는 미꾸라지처럼 갯벌 바닥의 개흙을 즐겨먹는다. 수온이 내려가면 속에 품은 흙을 다 토해낸다. 자연스럽게 해감이 된다. 그래서 비린내가 가장 적게 된다. 그게 바로 가을철이다.

회귀어종인 전어는 강과 바다가 맞닿은 ‘기수역(汽水域·Brackish water)’이 주 활동무대다. 자연 갯벌존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동해는 전어를 제대로 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전어를 잡으려면 낙동강·한강·금강·영산강·섬진강 기수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울진 왕피천, 영덕 오십천도 기수역이 있지만 거긴 갯벌존이 아니라 사질토라서 은어는 가능해도 전어 시장은 형성되지 못한다.

대한민국 전어 메카는 어딜까. 국내 전어축제도 얼추 20년 세월을 맞고 있다. 현재 전국에 10여개가 순차적으로 가동된다. 가장 오래된 전어축제는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열리는 ‘망덕포구 전어축제’(20회). 지난달 30일부터 9월1일까지 열렸다. 19회째를 맞는 곳도 3군데가 있다. 낙동강 하구 마지막 포구로 불리는 부산 강서구 명지동 신포마을 옆 명지시장 회타운에서 열리는 ‘명지전어축제’, 그리고 충남 서천군 서면 홍원항, 더 북쪽에 있는 충남 보령군 무창포에서 열리는 전어축제다. 서천 홍원항과 보령 무창포에서는 대하·꽃게축제와 묶어져 치러진다. 아울러 경남 사천시 팔포음식특화거리 옆 삼천포항에서 열리는 전어축제는 올해로 18회째. 연조는 조금 뒤지지만 여기는 8~9월이 아니라 7월에 열린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열리는 햇전어축제로 유명해졌다. 이밖에 전남 강진·보성·고흥, 경남 마산어시장·진해 등지에서도 전어축제가 열린다.

지난달 28일 포항 죽도어시장에서도 첫 전어가 위판됐다. 포항권도 형산강 때문에 전어잡이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2009년 9월 영일신항만이 축조되면서 포항 앞바다 물길이 교란돼버렸다. 그때부터 전어잡이가 신통치 않다. 그래도 죽도시장은 전어의 추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한다. 2012년 9월22일부터 형산강 하구인 동빈나루 일원에서 포항물어를 겸해 전어축제를 열었다.

서해와 동해보다 남해 전어가 국내 전어시장을 좌지우지한다. 전체 물동량의 60% 이상이 남해에서 산출된다. 특히 섬진강 마지막 포구로 불리는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그리고 경남 하동군의 끝자락에 있는 진교면 술상리 술상포구 전어가 언론에 가장 많이 노출되었다. 망덕포구 선소마을 초입에 있는 산책데크 에는 스테인리스스틸 파이프로 만든 전어 조형물이 있다. 술상포구에선 한발 더 나갔다. ‘며느리전어길’을 새로 깔았다. ‘전어굽는 냄새 때문에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속담을 모티프로 했다.

하지만 수소문 결과, 전어의 신화가 섬진강권이 아니라 낙동강권에서 먼저 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장을 확인하고 싶어 부산의 대표적 식객인 최원준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와 함께 전국에서 처음으로 활어 전어시대를 개척한 천동식씨(61)가 아들 승훈씨(38)와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장터횟집을 찾아갔다. 부산역에서 지하철1호선을 타고 하단역에서 내려 택시로 10여분 만에 도착한 명지시장 회타운. 무려 80여개의 횟집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16℃ 어름에 세팅된 수족관에 전어를 담아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 업소에서 피워 문 전어굽는 냄새가 동낙동강의 저녁 해풍에 업힌다. 그리고 회타운을 찾은 식객의 미각을 마구 쑤셔댔다.

글·사진=이춘호 음식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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