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자유한국당의 패스트트랙 원내전략 실패

  • 권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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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4   |  발행일 2019-09-04 제30면   |  수정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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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 서울본부 취재부장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둘러싼 여야 대치 전선에선 자유한국당이 20일 넘게 대여 공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잠시 가려졌지만, 한국당이 5개월째 수세에 몰리고 있는 취약지대가 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전선이 그곳이다. 4월말 한국당의 물리적 저지에도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 등이 패스트트랙에 태워진 이후 제1야당은 계속 밀리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여야 4당 공조에 견인차 역할을 해온 선거법안이 정개특위를 통과, 패스트트랙 소요기간 두 달을 단축하며 법사위로 넘어갔다.

한국당은 직진 고집하다가
패스트트랙전선서 ‘나홀로’
공수처 수용안해 궁지 몰려
작은 것을 풀어서 큰 것 얻는
욕금고종이라는 말 명심을


한국당이 밀리는 배경에는 이번 대치 구도가 ‘4대 1’이라는 게 결정적이다. 지난해 2월 바른미래당 창당 이후 국회 판도는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진보 3당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 2당이 맞서는 구도였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국면에선 바른미래당이 진보 3당과 한편이 되면서 한국당은 ‘나홀로’가 됐다.

이면에는 ‘양손의 떡’을 놓지 않으려는 한국당의 과욕이 자리잡고 있다. 연동형비례대표제(연비제)에 대해선 사실상 지역구 감소 때문에 반대하고, 공수처는 ‘정권의 맹견’이라고 거부한다. 그 바람에 연비제 도입에 목을 매는 군소 야3당과 공수처 설치에 사활을 거는 여당 간에 전략적인 공조가 성사된 것이다.

한국당의 강경 반대는 이들 사안을 정치철학이 아닌 선악(善惡)의 문제로 보는 경향과 무관치 않다. 여권을 향해 ‘좌파 독재 장기집권 플랜’이라 비난하는 데서 그런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일제 치하의 독립지사나 군사 정권의 민주화 투사가 가졌던 소명의식을 스스로 주입하는 듯하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쟁점은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공수처만 하더라도 한국당은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한 검찰이든 공수처든 정권의 주구(走狗)가 될 것’이라며 반대한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윤 총장”이라며 임명장을 줬던 윤석열 총장의 검찰이 여권과 사전교감 없이 조 후보자 수사에 전격 착수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의 직업윤리의식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야당일 때도 공수처 법안을 발의했고, 여당 때도 그랬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 견제용이란 그들 주장에 일관성이 있다.

패스트트랙과 관련한 한국당의 원내전략은 한마디로 실패작이다. 법안은 본회의를 향해 달리고 있고, 소속 의원 59명은 고소고발돼 경찰 출석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이 한국당은 국회선진화법 이후 7년만에 ‘동물국회’를 재연해 보수의 가치인 ‘법치’를 스스로 훼손했다. 보수 야당도 재집권에 성공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규제혁파 등 우파 철학에 기초한 법안을 상정해 표결을 시도할 때 좌파 야당이 물리력으로 막는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이 법안은 여야 합의 관행이 지켜져온 선거법과는 다르지 않나”라는 항변으로 그들의 실력저지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회는 “돌격 앞으로!”만 외쳐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전쟁터와는 다르다. 상대가 셀 때는 정면대결보다 유연한 협상 자세가 더 유용하다. 손자병법에는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주라’는 욕금고종이란 말이 있다. 만약 한국당이 진작에 공수처를 수용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당이 낙마에 힘쓰는 조 후보자에게 버팀목이 되는 ‘사법개혁 적임자’라는 구실도 설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당 지도부는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 지금이라도 협상 여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행여 ‘선거법안이 본회의 표결에 부쳐지더라도 내부 반란표로 부결될 수 있다’는 요행을 바라보고 ‘직진’만 고집하다가는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을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허탕 친 야당의 몰골은 문재인정부 실정에서 얻어진 반사이익을 까먹는 악재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권혁식기자 kwonh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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