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준지(Juun.J)’ 정욱준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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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3   |  발행일 2019-08-23 제40면   |  수정 2020-09-08
‘준지’에 의한 클래식의 전환 ‘오버사이즈 트렌치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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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FW ’(왼쪽). ‘2020 SS MENSWEAR’

패션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파리 컬렉션을 꿈꾼다. 2007년 마흔의 나이로 파리 컬렉션에 데뷔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묵묵히 선보이는 한국 디자이너가 있다. 지난 12년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25번의 컬렉션을 꾸준히 개최하고 남성복에서 여성복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자신의 브랜드 ‘준지(Juun.J)’의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다지고 있는 디자이너 정욱준.

아동복 판매하는 부모님 영향, 패션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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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업체 경험 거쳐 5평짜리 사무실서 시작
브랜드‘론커스텀’론칭…타임지 亞 최고 4人
볼혹에 세계시장 도전, 트렌치코드 재해석
매시즌 성역 경계 모호 젠더리스한 디자인
세계적 아이돌 BTS 착용…젊은층도 열광
창의·감각적 디자인 대기업과 만나며 성장
글로벌 300여개 매장진출·1천억 매출 목표


정욱준 디자이너는 1967년생으로 서울 남대문에서 아동복을 만들어 판매하던 부모님 덕분에 어린시절부터 옷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가 선택한 옷은 유달리 잘 팔렸고 옷에 대한 관심은 학창시절로 이어져 외국 패션잡지를 구해서 보거나 도매시장을 다니며 패션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당시 패션을 하는 남자가 흔치 않아 미술대학의 공예과에 진학하고 군에 입대하였으나 제대 후에도 그는 여전히 옷이 만들고 싶었다. 때마침 프랑스 유명 패션스쿨인 에스모드(ESMOD)가 서울에 분교를 내게 되면서 그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에스모드 서울 분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패션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는 매달 학생작품을 심사하여 우수작을 선정한 후 복도에 전시했는데, 패션에 대한 그의 열정과 노력으로 정욱준은 졸업할 때까지 3년 동안 단 한 번도 우수작 전시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1992년 에스모드를 졸업하고 유명 남성복 브랜드였던 쉬퐁에 입사하여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이후 클럽 모나코와 돔, 닉스 등 캐주얼 브랜드에서 경험을 쌓은 다음 모방하는 디자인이 아닌 자신만의 디자인을 펼치기 위해 1999년 서울 신사동에 5평짜리 사무실을 열고 남성복 브랜드인 ‘론 커스텀’을 론칭한다. 이후 론 커스텀은 서울컬렉션에 꾸준히 참가해 트렌치 코트와 케이프, 베스트 등의 아이템을 기반으로 하는 캐주얼한 남성복을 선보이면서 정욱준은 신진 디자이너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2003년에는 타임지가 뽑은 아시아 최고 디자이너 4인에 이름을 올리며 공인된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좀 더 디자인에 집중하길 원했고 디자이너로서 겪는 경영의 어려움과 국내 유통시장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 진출이라는 과감한 도전을 시도하게 된다. 마침내 2007년 자신의 이름과 성의 이니셜을 딴 준지(Juun.J)라는 브랜드로 파리컬렉션에 참가하고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트렌치 코트를 기본 아이템으로 기존 실루엣을 완전히 해체하여 재해석한 오버사이즈의 트렌치 코트를 선보인다. 준지에 의한 클래식의 전환이라는 현지 언론의 호평과 함께 주목해야 할 6인의 디자이너에 선정되며 성공적이고 화려한 데뷔 컬렉션을 치른다. 이후 정욱준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신진 디자이너 육성을 목적으로 지원되는 삼성패션디자인 펀드의 수혜자로 연속 선정돼 준지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2012년에는 삼성물산 패션브랜드로 합류한 후 매년 5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면서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서 잠재돼 있던 준지의 가능성을 증명하였다. 또한 2016년에는 세계적인 남성복 전시회인 이탈리아의 피티워모에서 한국인 최초 게스트 디자이너로 초청돼 컬렉션과 전시회를 가지는 등 전 세계 24개국 100여개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그의 옷은 해외시장에서 준지의 입지를 견고히 다지며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분명 정욱준은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 디자이너다. 20년 전 그가 처음 선보였던 니트 소매가 달린 화이트 셔츠는 그 당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했지만 이제는 그를 대표하는 아이템 중 하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스트리트 테일러링이라고 수식되는 정욱준의 디자인은 무채색 위주로 전개되는 클래식한 아이템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실루엣을 분해하고 조합하거나 스타일의 레이어링 과정을 통해 성역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대담한 실루엣을 섬세한 디테일로 풀어내며 네온이나 레드와 같은 포인트 컬러가 더해지는 등 조금씩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남성복에 접목시키거나 남성스러운 실루엣을 여성복에 적용시키는 등 남성과 여성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 젠더리스한 디자인은 그의 전매특허로 매 시즌 색다른 볼거리를 통해 즐거움을 선사한다. 준지에서 제안하는 다양한 비율과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 조합은 한류를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인 BTS(방탄소년단)가 착용하는 것처럼 준지는 보다 젊은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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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준이 전개하는 준지는 또 다른 면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디자이너가 가진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대기업의 자본력과 만나면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대표적인 사례로서 또다른 준지가 되길 희망하는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 1999년 5평의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했지만 올해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인근에 브랜드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여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국내 소비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2020년까지 전 세계 300여개의 매장 진출과 매출 1천억원을 목표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디자이너는 때에 따라 떠오르는 영감으로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특성 때문에 즉흥적인 이미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만, 정욱준은 자신이 세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매우 계획적인 디자이너이다. 그의 계획은 10년 단위로 세분화되어 있으며 30세에는 자신의 브랜드 론칭을 목표로 했고, 40세에는 해외시장에 진출했으며, 50세에는 남성복뿐만 아니라 여성복까지 브랜드를 확장하고, 60세에는 샤넬이나 디올처럼 액세서리·향수 등 토털 라이프 스타일까지 아우르는 하우스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의 바람처럼 머지않은 날 한국에도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하우스 브랜드인 준지 하우스가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rh0405@kri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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