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영덕군 달산면 청정 오지 산성계곡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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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3   |  발행일 2019-08-23 제37면   |  수정 2020-09-08
청석 빛 품고 흐르는 계류수, 영적 기도 길 청석 바위지대…꿈에서 만나는 태초의 에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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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군 달산면 산성계곡의 환상적인 청석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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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들머리인 옥계계곡 하류와 데크길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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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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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계곡에서 건너게 되는 목교와 암벽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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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의 오지에서 만난 독가촌 전경.

물은 맑고 고왔다. 그 계류는 8월의 눈부신 빛에 마치 신라 왕관의 곡옥처럼 보였다. 영덕군 달산면 옥산리 옥계계곡에서 산성계곡 들머리로 걷는다. 계류수는 너무 청정하고 투명해 신비 그 자체였다. 옛날 오십천의 은어가 귀소해 저 맑디맑은 물로 돌아가면서 번뜩이던 그 영롱한 무지개 비늘처럼. 저 투명한 물은 내 내면의 수문을 열고 들어와 흘러간다. 함께 들리는 물소리 그리고 저 영원한 말씀으로 아름다운 암벽들. 그날의 트레킹 시작은 성경이었다.

계곡 들머리, 청정하고 투명한 신비
詩가 되어 종소리처럼 울리는 물소리
대궐터 가는길 깎아지른 절벽의 요새
한폭 수묵화 같은 암벽자락 나무다리
아름다운 협곡·제2목교·독립문바위
산·하늘만 보이는 곳 노부부의 독가촌

맘씨 좋은 산장주인이 안내한 조망터
물결치는 산의 파노라마는 神의 화음


풍경과 물소리는 시편이 되어 종소리처럼 울린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어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편 90:2). 영원부터 영원까지 그 투명한 물처럼 흘러가는 영성이 느껴지는 계곡이다. 산성계곡 들머리인 출렁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 풀이 자라고 틈새에 예쁜 산꽃들이 보인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시편 90:6)’. 저 8월의 풀꽃도 언젠가 시들 것이고, 우리의 평생도 순식간에 다할 것이다.

이 곳에는 순간과 영원이 하나이고 아침과 저녁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형이상학의 시(詩)들로 가득하다. 이내 계곡이 나오고 원시의 자연 그리고 하늘이 모두이다. 아등바등한 나이가 자랑일지라도 여기서는 한낱 수고와 슬픔일 뿐이요, 저 허공에 흩어지는 물소리처럼 너무 짧고 신속하다. 당신의 시간도 나의 시간도 티끌로 돌아가는 한순간의 반짝임일 뿐이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서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한 무의미가 의미로 바뀌는 오지 탐험의 심리적 단순함에 깊숙이 빠져 버린다.

트레킹 로드는 사람의 때 타지 않은 태고 그대로이다. 문명의 코뚜레에서 벗어나 자연속의 자연인이 된다. 그 잡풀 사이로 가름목이 있다. 대궐 터 가는 길이다. 30분 거리의 대궐 터까지 오른다. 들어가는 좁은 입구 말고는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천험의 요새다. 대궐 터는 지척에 있는 주왕산과 연관이 있다. 주왕산은 신라 때 주왕이 피신해 있었다고 주왕산이 되었다. 주왕은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으로, 스스로 후주천왕이 되어 반란을 일으키고 도읍지였던 장안으로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한 뒤 이곳저곳 쫓겨 다니다 영덕 달산 궁터, 산성계곡 대궐 터 주왕산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이런 설화를 이곳 주민들은 모두 사실로 믿고 있다. 대궐 터 입구에는 아직도 그 때 돌로 쌓은 산성이 남아있다. 이곳 산성계곡 이름도 이 산성에서 연유되었다. 계곡 길로 돌아 내려온다. 갈수록 경치는 더 깊어지고 천연림은 우거진다. 작은 폭포도 나타난다. 드디어 제2목교를 건넌다. 암벽 자락 길에 나무다리는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옛 한시(漢詩)처럼 놓여 있다.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른다. 저 다리를 건너면 다시 돌아 나오지 않으리라. 어느 트레커의 감성에 젖은 한탄이다.

암벽과 언틀먼틀 없는 바닥 암반도 나를 황홀하게 하고, 청정한 물은 목탁소리로 흐른다. 황소바위가 보인다. 황소를 타고 가는 동자가 피리를 부는 것 같은 조형이다. 사찰에서 흔히 보는 십우도이다. 만약 누가 나에게 ‘너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저 암벽과 흐르는 물을 가리키리라. 나는 나의 내면의 저 바위와 물속으로, 시나브로 들어가리라.

갑자기 창백해지고 홀쭉해진다. 사랑도 미움도 나이 따라 늙고 쇠잔해지면 바람머리 풀고 허리 굽혀 흐른다. 좁은 협곡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제2목교도 지난다. 여러 번 계곡물을 건너기도 한다. 독립문 바위를 지나면서, 이런 바위를 독립문으로 작명한 그 식견에 아연해진다. 이런 곳에 독립문이 왜 등장하나.

드디어 산성계곡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청석 바위지대로 들어선다. 이 길은 꿈에서 만나는 트레킹 로드다. 웅장한 바위 군들이 감탄스럽고 계류수도 청석 빛을 품고 아름답게 흐른다. 그 풍경과 물빛이 너무 청아하고 수려해 태초의 에덴을 상상했다. 그 계곡을 걸으면서 영성의 리듬과 자연의 숨소리를 퍼즐처럼 맞춰 본다. 인생은 그렇게 덧없이 흘러가는 허무의 노래가 아니라, 어떤 영혼이 흘러가는 흔적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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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석 바위지대는 영적 기도의 길이다. 나는 이 길에서 불이 꺼진 나의 감정을 본다. 그리고 초점 없는 갈색의 눈, 그러면서 세상과 우주를 다보고 있는 예수의 눈을 본다. 보리수 아래에서 욕망의 몸을 벗고 깨달음의 몸을 얻은 부처님의 모습도 본다. 저 청옥빛 바위 어디쯤이 사랑과 자비인 줄 이제 알았다.

나무 그림자 물속으로 내리고, 바람이 환하게 불어와 더 할 나위 없이 상쾌하다. 오지(奧地) 계곡 트레킹은 어떻게 걸어가도 자기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내 마음을 탐험하는 것이다. 내 눈은 이제 마음과 하나가 되었다. 심안부동(心眼不動)이다. ‘이 집이나 저 집이나 같은 한집이라(彼家自家共一家)’ ‘설하고 들음이 영원함에 만물과 나를 잊는다(說聽恒然物我忘)’.

마음의 눈으로 보면 모두 공성(空性)이다. 바위도 바위가 아니고 나도 내가 아니다. 물질과 나를 포승으로 묶는 자박심(自縛心)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나저나 청석바위지대도 지나고 계곡을 벗어나는 흙길을 오른다. 거기 궁궁이 짚신나물 물봉선화도 눈에 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며 독가촌이 나타난다. 독가촌에는 노부부가 살고 있다. 산과 하늘만 보이는 오지에 그들은 이미 자연인이다. 물소리가 피어오르는 그 위에 묵묵한 산이 고승의 도를 이야기 하고, 지저귀는 산새가 부처의 선을 설하는 곳에 그들은 살고 있다.

피는 꽃에서 피지 않는 봄을 보고, 지는 꽃에서 지지 않는 가을을 보고 사는 분들이다. 시간이 재촉해 곧 헤어져야 하지만, 헤어지고 만나고 그렇게 돌고 도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되풀이되는 어떤 현실을 느낀다.

할머니는 일을 하고 할아버지는 방안에서 눈은 감은 듯 뜨고, 뜬 듯 감고 앉아 있었다. 더 머뭇거리기 어려워 독가촌 윗길 10여분 거리에 있는 산성산장으로 애면글면 오른다. 달산면 봉산리 394번지의 산성산장은 금강송과 개간된 밭으로 ‘나는 자연인이다’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산장 주인인 이영문씨는 이곳 달산면 출신으로 포항제철고를 나와 부산에서 사업을 하면서 주말에 찾아와 그것도 혼자 힘으로 산성산장을 개간했다고 한다. 우리를 접대하는 그 마음이, 얼굴이 얼마나 순수하고 덕성으로 넘치는지. 말마다 복음(福音)이고 법음(法音)으로 들렸다. 저 자연의 소리와 풍경을 보고, 그 소리와 풍경이 되고자 노력하신 분이었다. 어떤 때는 한밤중까지 이 깊은 산속에서 혼자 일을 한다고 했다. 그의 땀은 흙에 떨어져서 쉬다가 새벽이면 산안개가 되어 떠나곤 했다. 그의 말은 땅속으로 들어가 뿌리를 깨우고 허공으로 사라지며 바람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온다는 기별을 받고 산장 뒤 능선에 조망대 터를 닦아서 안내하는 그의 인간애에 나는 뼈 속 깊이 울리는 감사를 느껴야 했다. 단지 내 산장에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한다는 것만으로, 하루 주야 포클레인 작업을 했다고 한다.

조망터는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득히 산의 파노라마가 물결치듯이 낮은 곳에서 높아지며 흐르고, 흘러가서 하늘이 되어버리는. 그건 신의 화음이고 건반이었다. 이영문님의 노고에 틈틈이 도와주는 김상일 흥해 서일데크 회장도 산장 조성에 큰 역할을 보탰다고 한다. 김상일 회장은 오지 않았지만 낯선 방문객을 위해 싱싱한 영덕 회를 보내왔다. 나는 그 회를 먹으면서 그 고마움에 앵통해 했다.

아파도 좋은 게 있고 좋아도 아픈 게 있다, 끝없이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산성계곡 트레킹 로드, 사무치게 정겹고 그리운 오지 트레킹이었다. 이런 산성계곡 청정 오지 트레킹에 더 많은 분들이 찾아와서 자기를 보고, 자기 영혼을 확인하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인·대구힐링트레킹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 문의: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054)734-4664, 산성산장 주소: 영덕군 달산면 봉산리 394 (이영문 산장주 010-4567-0034)

☞내비게이션 주소: 들머리 유성모텔(영덕군 달산면 팔각산로 1037. 달산면 옥산리 513), (054)734-4664

☞트레킹 코스: 유성모텔 - 삼림욕장- 출렁다리- 제1목교- 황소바위 - 제2목교-독립문 바위 - 청석바위 - 독가촌을 지나자마자 우측 뒤편 오르막 경사길 10여분, 산성산장 (이영문님에게 문의해 버스를 산성산장으로 오게 함), 버스귀가.

☞ 주위볼거리: 옥계계곡, 삼사해상공원 , 고래불 해수욕장, 블루로드 길, 신돌석 장군 생가, 축산 죽도유원지, 강구어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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