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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진상 아베 정권의 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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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9

조정래의 ‘아리랑’은 깨어 있는 역사인식으로 일제 강점시대를 탐구한 대하소설이다. 현대사의 시작점인 20세기 초부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와이·도쿄·만주·블라디보스토크까지 공간적 시야를 확장했다. 전통사회 붕괴에서 식민시대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질곡과 고난, 투쟁을 밀도있게 그리며 우리의 웅혼한 힘을 다채로운 서사(敍事)로 녹여낸 작가의 역량이 경이롭다. ‘민족의식’ ‘친일’ 같은 묵직한 화두가 내내 소설의 저류에 흐르며 피지배 민족의 비애와 아픔을 자극한다. 아마 누구라도 ‘아리랑’을 읽었다면 일본 식민지배의 야만에 분노했으리라. 군국주의 시대의 ‘야만 DNA’가 부활한 걸까. 아베 정권의 경제 침탈에도 야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왜 야만이냐고? 자유무역을 봉쇄하고 ‘글로벌 밸류 체인’의 붕괴를 촉발하기 때문이다.

세계 일인당 소득이 급격히 늘어난 때는 18세기 말이다. 산업혁명과 자유무역 확산이 변곡점이 됐다. 국가 간 교역은 국제 분업을 촉진했고 분업은 생산성과 기술 숙련도를 가일층 향상시켰다. 자유무역은 소득 증가와 풍요를 가져오는 마법을 부렸다.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저서 ‘국부론’에서 분업의 효용성을 설파한 것도 그 즈음이다. 애덤 스미스의 절대생산비설과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생산비설이 국제 분업의 이론적 토대가 되면서 자유무역주의 사조는 더 빠르게 파급됐다.

오늘날의 국제 분업 체계는 더 정치(精緻)하고 촘촘해졌다. 전 산업에 걸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글로벌 가치 사슬이 정교하게 작동하며 분업의 효용성을 창출한다. 동아시아 IT 공급망은 일본 소재-한국 반도체-중국 전자제품의 사슬을 형성한다. 헨리 패럴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글로벌 밸류 체인을 분업이 낳은 ‘상호의존 네트워크’라고 정의했다. AI(인공지능)·자율주행차로 상징되는 압도적 산업기술 또한 국제 분업이 추동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데 일본이 기어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며 글로벌 가치 사슬 파괴의 전주(前奏)를 울렸다. 아베 정권에 묻는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뭉개려는 패도인가, 전범 국가 유전자에서 발현된 파괴 본능인가, 아니면 가해자의 비열한 코스프레인가. 어떤 저의든 수출규제는 글로벌 밸류 체인을 망가뜨리고 성장 동력을 타격한다. 초고도화된 국제 분업 시대에 이보다 더한 야만이 어디 있으랴. 가치 사슬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주로 관세장벽을 높이는 미중 무역 분쟁보다 훨씬 패륜적이다. 한일 경제전쟁은 제로섬 게임도 아니다. 패자만 남을 뿐이다.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가 공멸의 지뢰 매설 행위로 지탄 받는 이유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한일 갈등을 ‘루즈-루즈 게임’으로 묘사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일방적으로 깼다”고 말하는데 1965년 한일협정 그 어디에도 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소멸된다는 문구는 없다. 1991년 당시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이던 야나이 순지도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은 남아있다고 세 번씩이나 확인했다. 2012년과 지난해 10월의 대법원 판결 역시 국제법과 상치(相馳)되지 않는다. 아베 정권이야말로 견강부회와 말 바꾸기로 일관하고 있지 않은가. 전략물자 관리 미비로 꼬투리를 잡더니만 금세 국가 간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수출규제 이유를 번복한다. 조변석개에다 모순투성이다. 논거를 어떻게 바꾸든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란 사실은 확고부동하다. 표본겸치(標本兼治·드러난 문제와 근본적 원인을 함께 해결함)는 못할망정 우리에게 징용 판결의 해법을 내놓으라며 진상을 부려선 곤란하다.

일본은 분명 문명국가이되 아베 정권은 야만으로 가득하다. 국권 유린과 살상, 가학과 수탈로 점철된 한국 식민지배의 불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위선 또한 아베의 야만이다.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개헌 획책은 팔굉일우(八紘一宇)의 수사(修辭)로 침략전쟁을 미화했던 제국주의의 야만을 소환한다. 인권을 억압하고 헌정질서를 짓밟은 독재 국가였든,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말살한 전범 국가였든 야만 정권은 예외 없이 역사 속에 스러졌다. 야만이란 이념에도 ‘평행 이론’이 적용된다면 아베 정권 역시 패망한 군국주의 전철을 밟을 게 확실하다. 정녕 아베는 일제(日帝)의 야만을 답습하겠다는 건가.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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