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기초단체 카페, 장애인 바리스타 근무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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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7 07:13  |  수정 2019-08-17 09:46  |  발행일 2019-08-17 제5면
“장애·비장애 넘어 커피로 소통하는 구청 민원실 카페”
20190817
대구지역 구·군청 내 민원실에 있는 커피전문점에는 장애인 바리스타가 있어 훈훈함을 더해준다. 왼쪽부터 중구청 ‘소담카페’, 수성구청 ‘꿈앤카페 숲’, 달서구청 ‘I got everything’, 달성군청 ‘플라워카페’ 근무자들. <대구 중구·수성구·달서구·달성군청 제공>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커피전문점을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평범한 인사말이다. 그러나 대구지역 기초자치단체 민원실 내 커피전문점에서 듣는다면 특별하다. 원두를 볶고 갈아 갓 내린 커피를 건네주는 종업원. 해맑은 얼굴의 다소 수줍은 표정이다. 이들은 대구 중구와 수성구, 달서구, 달성군청사 내 커피전문점에서 근무하는 장애인이다. 지체·지적·자폐장애 등을 지닌 이들은 그동안 세상 밖으로 나서는 게 녹록지 않았다. 대인관계에 대한 어려움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 등이 사회 진출을 어렵게 했다. 그나마 취업할 수 있는 곳은 조립·가공 등 1차 산업. 그리고 저임금 속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이들은 공공기관 내 커피전문점에서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고 동료와 소통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어엿한 ‘바리스타(Barista)’로 거듭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중구·수성구·달서구·달성군
지체장애인 등 커피숍서 근무
처음엔 다소 불편함 있었지만
비장애인보다 실력 좋아 인기

카페이용자 피드백도 기대이상
‘만족한다’는 응답이 94% 달해


◆중구청 ‘소담카페’

지난해 7월 청사 내부 리모델링 직후 1층 로비에 오픈한 소담카페는 장애인 5명이 일하고 있다. 타 지자체 카페와 달리 근무하는 장애인의 평균 연령이 높다. 7개월째 일하고 있는 지적장애 2급 노순철씨가 43세로 제일 많고, 김은혜씨가 29세로 가장 어리다. 알고 채용한 건 아니지만, 오히려 사회초년생보다 노련함과 성실성에서는 높게 평가받고 있다.

지적장애 3급인 이주영씨(41)는 일하면서 언제가 가장 보람있느냐는 질문에 “손님들에게 커피를 건넸는데, 그 손님이 ‘진짜 맛있다’고 할 때”라고 답했다. 이어 애로사항이 없냐고 묻자 “손님이 한꺼번에 많이 몰리는 점심시간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웃어보였다. 이씨는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남산복지재단 마중물일터가 운영하는 제빵실에서 일했지만, 지난해 재단이 카페를 개업하자 용기를 내어 일자리를 옮겼다. 처음부터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혼자 출퇴근하는 것부터 밀려드는 주문을 모두 처리하는 것까지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다. 하지만 비장애인도 처음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업무에 적응하듯 이씨도 서서히 적응해갔다.

이씨는 “제빵실에서 일할 때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며 “출퇴근하면서 외부 구경도 할 수 있어 답답함이 많이 사라졌다. 업무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균 매니저(직업훈련교사 겸임)는 “장애인들이 카페 일에 조금 느리거나 실수를 할 수 있어도,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고 묵묵히 잘해내면서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사회에 이런 일자리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수성구청 ‘꿈앤카페 숲’

구청 1층 민원실에 위치한 꿈앤카페 숲. 2015년 4월 문을 연 이곳은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지원하는 ‘중증장애인 창업형 일자리사업’의 하나로 시작됐다. 당시 구청은 10.8㎡ 규모의 공간에 총 6천만원(국비 5천만원·구비 1천만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하고 커피머신 등을 갖췄다.

카페에는 일한 지 2년된 김지환씨(30)와 1년된 김현진씨(22)가 바리스타를 맡고 있다. 자폐 성향을 보였던 지환씨는 얼마전 모친과 함께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 지인들로부터 축하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 그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며 “처음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미래 계획을 세울 정도로 완벽하게 적응했다”고 말했다. 지환씨가 자폐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공무원들은 카페 앞을 지나가며 그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던 그도 말을 건네는 이들에게 답을 하기도 한다.

현진씨도 업무에 만족감을 보이고 있다. 김경란 매니저는 현진씨에 대해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주문 실수가 잦고, 손님과 눈을 맞추기도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똑 소리 날 정도로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어 김 매니저는 “그가 앞으로도 커피 분야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싶어한다”며 “사회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달서구청 ‘I got everything’

구청 1층 로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커피전문점 ‘I got everything(아이갓에브리싱)’. “우리가 함께 나누고 이해하면 행복해집니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16㎡ 규모의 이 카페는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수료한 장애인 4명과 비장애인 매니저 1명이 근무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수년 전부터 바리스타를 준비했고, 실력도 일반 바리스타보다 월등하단 후문이다.

근무한 지 2년 남짓 된 윤명열씨(27)는 카페 내 분위기 메이커다. 윤씨의 환한 웃음에 구청 내 젊은 여직원들이 행복한 비명을 지를 정도다. 지난해 4월부터 일한 유준원씨(23)는 성실하고 근면한 청년으로 불린다. 작은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매사를 꼼꼼하게 챙기는 스타일이다. 유씨는 “장애인작업장보다는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만족감과 보람이 더 커 앞으로 계속 커피 관련 일을 하고 싶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셔서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2015년 4월 이곳이 오픈할 때는 많은 곡절이 있었다. 일부 구청 간부들의 부정·비판적 시선이 있었던 것. 하지만 당시 부구청장을 맡았던 현 이태훈 구청장이 지역 장애인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 복귀에 크게 도움된다고 판단,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덕분에 현재에 이를 수 있게 됐다.

김균연 매니저는 “장애인들이 환경에 민감한 것을 고려해 서로 함께 도우며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며 “팀원들이 생각 이상으로 잘해줘 놀라우면서도 고맙다. 완벽한 파트너가 될 것으로 믿고, 그들의 사회복귀도 적극 돕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달성군청 ‘플라워카페’

군청 2층 로비 한쪽 10㎡ 남짓 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플라워카페’에는 중증장애인 5명과 매니저, 훈련생 1명 등 총 7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중 중증장애인은 카페에서 일하면서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따냈다. 2016년부터 근무한 박소현씨(23)는 처음엔 웃음기 없는 냉정한 눈빛으로 선뜻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전혀 딴 사람이 됐다. 늘 해맑은 미소로 손님들을 응대하는 한편 자신감도 붙었다. 최상완씨(31)는 수시로 김문오 달성군수에게 편지를 쓰는 쾌활한 직원으로 불리고 있다.

최씨는 “편지를 자주 쓰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이렇게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는 최씨는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한 수기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시상식은 오는 9월 열리지만 수상 소식에 싱글벙글이다.

카페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평도 좋다. 최근 군청이 외부 민원인 등 147명을 대상으로 벌인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카페 이용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94%에 달했다.

이경숙 매니저는 “중증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대화하는 자체가 작은 활력소가 된다”며 “앞으로 더 많은 지역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온 힘을 쏟겠다”고 했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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