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영의 시중세론] 돌아오라! 일본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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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6   |  발행일 2019-08-16 제22면   |  수정 2020-09-08
美에는 끝없이 고개 숙이고
아시아에선 고개 바짝 든 日
서구국가라고 착각하기도
저지른 만행 진심사과하고
이제는 아시아로 돌아오길
20190816

올해 8·15 광복절은 어느 때보다 생각이 많았다.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위협 속에서도 우리 민족 모두가 목이 터져라 외치던 그 광복의 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격동의 한반도 상황에서 일본이 자행하는 작금의 제국주의적 경제도발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그로테스크한 기시감(데자뷔) 때문이다.

일본은 1905년에도 지금과 같은 방자한 태도로 우리 민족과 한반도를 모욕했다. 당시 미국의 전쟁부 장관이던 테프트와 일본국의 총리였던 가쓰라는 비밀약속을 통해 내통했다. 이때 가쓰라는 “러일 전쟁이 끝난 뒤에도 대한제국을 내버려 둔다면, 대한제국은 반드시 또다시 경솔하게 다른 외국 세력과 조약이나 협정을 맺는 옛날 버릇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대한제국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철없는 어린애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한제국을 식민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에 대해 당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었던 테프트가 전적으로 동의했다는 사실 또한 경악스럽다. 미국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이 타국으로부터 부당하거나 억압적인 대우를 받으면 중재를 해서 우의관계를 보장하겠다는 법적 합의까지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강대국 미국이 친구라고 믿고 있던 대한제국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지금 일본은 한국이 약속을 어기는 나라라며 경제력의 우위를 무기로 굴복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국내적 경제위기와 일본의 경제보복이라는 두 개의 전쟁을 치르며 악전고투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동맹국 미국 정부는 수수방관하면서 도리어 이미 1조원이 넘게 부담하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내년에는 5배를 더 올려달라고 한다. 100년 전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목숨을 건 결기로 일본의 제국주의 강점에 저항했던 순국선열의 정신과 비교하면 지금 우리 국민의 일본을 넘어서기 위한 의지와 노력은 빈약하다. “독립운동은 못해도 불매운동은 한다”거나 “No 아베” 정도는 스케일도 너무 작고 몸을 사리는 듯한 보신주의로 비칠수 있다. 우리 지역은 임정(臨政)의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해서 수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했다. 또한 빈부귀천 없이 지역민 모두가 참여해서 일제의 조선경제파탄정책에 저항한 1904년 국채보상운동의 본고장이다. 3·1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으려면 우리 지역의 정치인과 시·도민은 더 센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온전함을 추구해서는 한일관계의 새 역사를 만들 수 없다. 이번에는 옥쇄(玉碎)를 해서라도 더 이상 일본이 우리를 만만하게 보지 못하도록 끝장을 낸다는 정신이 필요하다.

8·15를 종전일(終戰日)로 기념하는 일본도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저절로 끝난 전쟁도 아닌데 종전이라는 면피용 명칭은 가당치 않다. 정확하고 진실되게 자신이 도발한 태평양전쟁의 패전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2차 대전에서 미국에는 패배했지만 아시아 국가들에 패전한 것이 아니라는 제국주의적 망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런 분열적 사고방식 때문에 미국에는 끝없이 고개 숙이고 무릎을 꿇지만 아시아 국가들에는 고개를 바짝 들고 고압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탐욕으로 인해 수천만 명의 아시아인이 죽거나 다쳤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 자신은 아시아를 벗어난 서구국가라는 착각이 아시아를 홀대하고 주변 국가를 억누르려는 태도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봐야 일본사람 머리가 검은 색이라는 사실과 아시아의 동쪽 한반도에 붙어 있는 섬나라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비록 미국의 냉전논리와 철저한 국익추구 덕분에 천황제가 유지되기는 했지만 일본은 패전국이다. 전쟁도발의 죄과로 자국민은 원자폭탄의 비극적 희생물이 되었다. 아베가 바꾸려는 평화헌법은 그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전쟁하지 말라고 연합국이 요구하여 제정된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전쟁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희생을 기회로 일본 경제는 성장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사죄하라. 그리고 아시아로 돌아오라. 일본.


대구대 법학부 교수·대구시민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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