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착공 100년이 지나도 완공하지 못한 가우디의 ‘사그라다 성당’…방문객에 주는 미완의 감동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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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9   |  발행일 2019-08-09 제40면   |  수정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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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보물로 알려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해질 무렵이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산책길로 나를 등떠민다. 여름엔 낮에 부는 바람보다 밤바람이 시원하다.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도 있다. 가만히 귀를 모은다.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바람이 꽃잎에 가닿으면 꽃소리를 낸다. 물에 스치면 물소리를 낸다. 풀잎소리, 가로등소리 외에도 촘촘한 대나무 숲에서는 철옹성 같은 쇠소리를 내는 바람. 바람은 부딪히는 대상의 실체를 소리로 증명한다.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먼 세상도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우리가 하찮다고 여긴 것까지 편견 없이 드러내는 바람은 볼품없는 돌멩이 하나도 방기하는 법이 없다. 그곳이 바닥일지라도. 본연의 소임에 충실한 바람의 매력 하나를 더 꼽으라면 향기를 실어 나른다는 점이지 싶다. 실려 온 향기에는 생동하는 삶의 풍경이 담겨있다.

기분 좋은 향기는 도처에 널렸다. 그중에서 으뜸은 사람 사는 냄새가 아닐까 싶다. 빵 굽는 냄새에는 빵집 풍경이 담겨 있다. 차 향에는 차를 덖은 이의 정성과 찻집의 정취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바짝 마른 빨래 향엔 주부의 개운한 하루가 담겼고, 된장 냄새에는 어머니의 온정이 스며있다. 한약 냄새에는 약초꾼들의 노동이, 위생차 냄새에는 현장에서 흘린 담당자들 땀방울이 흥건하다. 생생한 삶의 과정을 건드리는 바람은 쉴 틈이 없이 움직인다. 갖가지 냄새를 맡으며 걷는 7월의 산책길에도 바람이 동행했다. 바람을 따라 동네 골목길 어귀를 도니 옥수수 가게가 나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큰 솥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온다. 말랑한 옥수수 알들 톡톡 씹을 절호의 기회니 구매를 마다할 리 없다. 찐 옥수수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적당한 간식거리다. 철없는 아이처럼 옥수수 알 길게 두 줄 남겨서 하모니카를 분다고 누가 뭐라 할까. 평범한 일상에 살짝 얹어먹는 소스 같은 옥수수 향도 산책길을 동행한 바람이 건넨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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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의 가치는 받는 이의 기준점에 비례한다. 말 속에도 선물은 있다. 일상적인 행위나 사물일 수도 있겠다. 작아도 온 가족이 행복하다면 그보다 더 나은 선물이 있을까. 담소의 매개체가 되어준 옥수수도 선물이긴 마찬가지. 달달한 식감을 음미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집 한 채가 스멀스멀 기억을 밀며 올라온다. 그 집의 지붕이 옥수수를 닮았다.

15년 전의 일이다. 대학 건축과 학생들과 수업을 할 때다. 꿈 많은 새내기들이었다. 꿈의 출발 단계에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수다. 공동 작업으로 건축모형을 만들자고 제안한 이유였다. 여러 모델 중 ‘사그라다 성당’이 선택됐다. 조립모형의 원본을 복사해서 잘라 붙이는 방식이었는데, 문제는 복잡한 형태였다. 형태를 파악하는데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학생들은 종종 복잡하고 불규칙한 형태를 타박했다. 결국 그들은 약속 시간에 완성을 하지 못했다.

아쉬워하는 그들에게 질책보다 원인 분석과 과정에 의미를 두자고 했다. 배후의 사연을 참조하는 것도 방법이지싶어 들려준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의 걸작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보물로 알려진 이 성당은 벽과 천장의 곡선미를 살렸고 불규칙한 형태는 자연을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이다. 세부에 신앙심을 표현해 색채로 장식을 더했다. 31세부터 1926년까지 43년간 성당 건축에 생을 다 바친 가우디는 16년 동안 현장에 머물며 공사를 지시했다. 기부금과 입장료만으로 공사비용을 충당하다보니 착공한 지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공사는 진행 중이다.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가우디의 유해는 사그라다 성당 지하 납골묘에 안장됐다. 성당은 미완성된 모습으로 세계인을 맞이하지만 방문자들의 감동은 비할 데가 없다. 더하여 완공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공교롭게도 가우디와 학생들은 약속처럼 미완의 집을 남겼다. 미완성을 질책할 수만 없는 것은 가능성 때문이다. 미완성은 더 큰 꿈을 허용한다.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할 수도 있다. 옥수수를 닮은 사그라다 성당도 세상을 하나로 엮어주는 바람도 완성을 향해 달리는 과정이기에 우리는 설렌다. 학생들은 지금쯤 완성에 한걸음 다가간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바람이 마음을 쓸어담아 먼 몸을 하나의 마음으로 엮어줄 것이라 믿어본다.

미술학 박사 shunna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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