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11] 조고각하(照顧脚下)...가지런한지 살펴라, 섬돌 위에 신발을 벗듯…

  • 김봉규
  • |
  • 입력 2019-08-08 08:25  |  수정 2021-07-06 10:30  |  발행일 2019-08-08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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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절벽 위에 자리한 양양 낙산사 홍련암. 이 암자로 가는 길 초입에 ‘조고각하’ 팻말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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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미황사의 세심당 섬돌 위에 붙여놓은 ‘조고각하(照顧脚下)’ 글귀.

몇 년 전 중국 산시성(陝西省)에 있는 화산(華山)을 등산한 적이 있다. 중국의 오악(五嶽: 泰山 衡山 崇山 恒山 華山) 중 하나에 속하는 명산인데, 그중 가장 험준한 바위산으로 유명하다.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가파른 절벽, 산줄기를 따라 바위를 깎아 만든 계단과 사다리길, 잔도(棧道) 등이 이어진다. 이 길은 대부분 좁고 아찔한 낭떠러지에 있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하는 곳도 많다. 물론 주변 풍경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절경이다.

이런 길을 따라 화산의 다섯 주봉 중 가장 높은 남봉을 비롯해 여러 봉우리를 오르내렸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발 디디는 곳을 잘 살펴 무사히 화산 등산을 마칠 수 있었다. 마음 속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면 절경을 훨씬 더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화산이 얼마나 험준하고 아찔한지 잘 알게 하는 일화가 있다. ‘한퇴지투서처(韓退之投書處)’에 관련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한퇴지투서처’는 화산의 많은 등산로 중 창룡령(蒼龍嶺)에 있다. 북봉으로 가는 가파른 절벽 능선 위에 낸 길인데, 검푸른 용의 등줄기 기세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 ‘창룡령’이라 불린다. 전체 길이가 1천500m 정도에 달하며, 폭1m의 돌계단 250개 정도로 이뤄져 있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 능선 위에 있는 이 길은 경사도 40도 정도로 심하다. 이 길도 걸어내려 왔는데, 누구나 심장이 쿵쾅거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두려움을 느끼는 길이다.


해남 달마산 미황사 세심당 섬돌
양양 낙산사 홍련암 초입 팻말 등
법당·선방 앞에서 종종 보는 글귀

법연선사와 세 제자 일화서 유래
道와 禪 수행자의 마음 요체 집약
‘마음의 다리’도 잘 디디란 가르침



당나라 최고 문장가였던 한유(韓愈 768~842)가 화산에 올라 하산하는 길에 이 창룡령에 이르게 되었다. 하늘에 닿을 듯한 바위 봉우리가 상하 수직으로 드리워졌고, 바위 산의 능선은 칼날과 같았다. 좌우의 낭떠러지 골짜기가 천길이나 되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그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공포에 휩쓸린 그는 결국 방성대곡을 했다. 그리고 절망 속에 붓과 종이를 꺼내 유서와 구원요청서를 써서 절벽 아래로 던져 내렸다. 마침 약초 캐는 사람이 있어 그를 발견해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유가 너무나 심한 두려움에 떨어 술을 먹여 취하게 한 후에야 데리고 내려갈 수 있었다.

후세인들은 이 일을 기념해 암벽 한 곳에 ‘한퇴지투서처’라는 글귀를 새겼다. 지금도 이 글씨는 남아있다. ‘퇴지’는 한유의 자이다.

이 이야기는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우리가 특히 험한 길을 걸을 때는 정신을 차리고 발 아래를 잘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고를 당하는 실수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찰에 가면 만나는 글귀 ‘조고각하(照顧脚下)’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이 있다. ‘다리 아래를 잘 살펴라’는 의미의 이 글귀는 사찰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다. 법당과 선방 앞, 스님들의 처소나 외부인이 머무는 곳의 섬돌 위 마루 등에 이 글귀를 붙여놓고 있다. 해남 달마산 미황사의 경우, 대웅보전 옆에 있는 세심당(洗心堂) 건물의 섬돌 위 마루 몇 군데에 이 글귀를 붙여놓고 있다. 세심당은 외부 손님이 머물며 사용하는 건물이다. 동해안 절벽 위에 있는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 가는 길 초입에도 이 글귀를 담은 소박한 팻말이 하나 서 있다.

‘조고각하’라는 글귀가 유래된 일화는 선어록인 ‘종문무고(宗門武庫)’와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에 나온다.

오조산(五祖山)에 주석한 오조 법연(五祖 法演) 선사에게는 뛰어난 제자 세 명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세 사람을 삼불(三佛)이라고 불렀다. 불감 혜근(佛鑑 慧懃), 불안 청원(佛眼 淸遠), 불과 극근(佛果 克勤)이다. 극근은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라고 칭송을 받는 ‘벽암록’을 지은 원오 극근 선사(1063~1135)이다.

법연이 어느 날 이 세 명의 제자와 함께 어디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어 들고 있던 등불이 꺼지고 말았다. 어둠을 밝혀 주던 등불이 꺼지자 칠흑같이 캄캄해서 앞뒤를 분간할 수가 없게 되고 만 것이다. 이때 스승인 법연이 물었다.

“그대들은 이 순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말해보라.”

먼저 혜근이 대답했다.

“붉은 봉황새가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하늘에서 춤을 춥니다(彩鳳舞丹).”

청원은 “쇠 뱀이 옛길에 누웠습니다(鐵蛇橫古路)”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극근이 말했다.

“다리 아래를 살피십시오(照顧脚下 또는 看脚下).”

그러자 법연은 “우리 종문을 망칠 놈은 극근이다”라고 말했다.

스승인 법연 선사의 물음에 각자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세 제자는 각기 자신의 경지에서 답을 했고, 법연은 ‘조고각하’라고 답한 극근을 ‘우리 종문을 망칠 놈’이라며 특별히 칭찬한 것이다.

이 일화에서 유래된 ‘조고각하’라는 글귀는 쉬우면서도 도(道)라는 것이 무엇인지, 수행자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요체를 잘 담고 있다. 그래서 이후 수많은 선 수행자 사이에 회자되면서 유명해지게 되었다.

◆항상 맑은 정신으로 살라는 가르침

이 글귀는 단순히 발 아래를 살펴서 신발을 잘 신고 벗을 것을 주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유혹이 난무하는 혼탁한 세상에 휩쓸려 불행한 삶을 살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살 수 있도록 언제나 자신이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살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육체적인 다리만 아니라 ‘마음의 다리’도 잘 디디고 있는지 살피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은 즐거운 감정과 동일시하고, 고통은 불쾌하거나 나쁜 감정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은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은 번뇌의 근원이 고통이나 슬픔 자체에 있지 않고, 이 같은 일시적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깨닫고 이에 대한 갈망을 멈추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 오는 즐거움과 행복은 차원이 다르다.

이런 진정한 즐거움에 이르기 위해서는 항상 ‘조고각하’의 마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불이 꺼져 캄캄해졌는데, 발 아래는 잘 살피지 않고 당황하며 두려움에 빠져 있는 꼴이 아닌지 돌아보며 살 일이다.

글귀가 꼭 ‘조고각하’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옛날 선비들은 ‘경(敬)’자를 거처에 크게 써붙여놓고 마음을 챙겼다. 글귀가 아니라도 좋다. 무엇이든 맑은 정신으로 돌아가게 하는 수단을 한 가지씩 가지고 일상생활 속에서 순간순간 양심을 자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조고각하’이다. 점점 극단으로 흐르는 사람이 늘고, 자신의 주장과 이념, 지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식인이 많아지는 것도 ‘조고각하’를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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