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痛恨(통한)의 8월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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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7   |  발행일 2019-08-07 제30면   |  수정 2019-08-07
한중일 대해전 백강전투
한일합방과 일본폐망
모두 8월에 동시 발생
2일 아베의 선전포고
현대판 백강전투 우려
[동대구로에서] 痛恨(통한)의 8월
이춘호 주말섹션부 차장

8월.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통한(痛恨)의 달’이다. 1910년 8월29일 우리는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겨버렸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8월9일 나가사키는 두 방의 핵포탄에 초토화된다. 일제 군국주의도 참수돼 버렸다.

한양대 김용운 명예교수는 2014년 ‘풍수화(風水火·맥스 미디어 간)’란 책을 통해 일본원형의 여러 파편을 보여줬다. 660년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당군은 김유신의 5만 신라군과 협공, 백제의 주성 사비성을 함락시킨다. 하지만 당시 300여만명으로 추정된 백제의 민초들은 좀처럼 항복하지 않았다. 백제부흥세력이 다시 나타나 나당연합군과 대회전을 벌인다. 663년 8월27일 동아시아 최대 해전이 전북 부안군 동진강 하구에서 벌어진 ‘벽강(동진강)전투’다.

이때 백제 유민의 정신적 지주였던 귀실복신(鬼室福信) 대장수. 그는 왜왕에게 20여년간 왜에 머물고 있는 의자왕의 동생 여풍장(余豊璋)의 귀국과 원병을 청한다. 이때 3만2천명의 왜군이 지원된다. 이에 앞서 645년 왜왕 고교쿠(皇極)는 다이카개신(大化改新)을 통해 ‘백제의 뜻에 따라 분국인 일본의 정치를 개혁했다’고 선포한다. 왜의 욕망과 백제의 문명이 의기투합됐으니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피로에 지친 왜군은 나당연합군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백제는 역사에서 사라진다.

귀실복신의 아들 귀실집사(鬼室集斯). 그는 일본에 망명해 학직두( 문교부 장관 겸 대학총장)의 직책을 맡아 일본 탄생에 크게 공헌한다. 망명한 백제인의 집단 거주지인 백제사(百濟寺)가 일본 전역에 무려 5군데가 산재해 있다. 가야 김수로왕의 7왕자도 일본 규슈로 건너가 초대 천황 진무를 낳는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도래인(渡來人)이 일본의 미래를 그리기 시작한다.

백제·고구려 망혼은 일본 중심문화에 깊게 스며든다. 이어 신라의 도예정신까지 일본에 박힌다.‘도자기전쟁’으로 불렸던 임진왜란 때 끌려온 조선 도공은 수만명. 그들은 영웅 취급을 받는다. 이때 일본은 조선 국력을 3배 정도 앞지른다. 아리타에서 꽃을 피운 이삼평은 일본 도조(陶祖)가 된다. 16세기말 정유재란 때 일본에 끌려와 사쓰마(薩摩)도기를 연 전북 남원 출신의 심당길. 그의 14대 심수관이 지난 6월16일 향년 92세로 타계했다. 일본은 조선이 등한시한 도예를 유럽에 되팔아 엄청난 국부를 거머쥔다. 그게 훗날 메이지유신의 종잣돈이 됐다는 학설도 있다.

일본은 당나라 눈치를 보는 통일 신라와 달랐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마구마구 확장시킨다. 큰 일이 일어날 때 대동단결하는 일본의 야마토(大和)정신도 기실 거기서 연원된다고 볼 수 있다. 백제는 고려·조선을 고운 시선으로 볼 리 없었다. 당을 끌고와 자길 죽였으니. 고려 태조도 백제의 복수심을 읽었든지 ‘훈요십조’에 백제경계령을 내린다. 이후 백제의 반항정신은 전라도 항거정신으로 불붙는다. 정여립의 난, 녹두장군의 동학운동, 광주민주화운동….

왜는 일본으로 웅비했다. 그들은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선진문물을 깡그리 수입해 자기 것으로 반죽했다. 여전히 일본을 쪽바리·왜놈으로 멸시했다. 일본은 1930년대 영국을 벤치마킹해 항공모함을 직접 만든다. 그걸로 진주만을 쳤다. 문명지수 ‘제로’였던 일본, 하지만 동서양 기술카피력은 ‘무한대’였다. 아무것도 없는 일본이 모든 걸 카피해냈다.

2차세계대전 직후 인류학자 베네딕트는 연구서를 통해 ‘일본은 국화(평화)와 칼(전쟁)을 함께 물고 있다’고 갈파했다. 8월15일 폐망 후 일본은 74년간 국화로 지냈다.

그런 일본이 다시 칼을 물었다. 지난 2일이다. 백제 망혼이 아베를 통해 한국에 선전포고한 건가. 통한의 8월, 현대판 백강전투가 부활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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