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호국 역사 걸맞은 시립박물관 세워져야

  • 이은경
  • |
  • 입력 2019-08-07   |  발행일 2019-08-07 제29면   |  수정 2020-09-08
20190807
최기문(영천시장)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고려말 불사이군(不事二君) 충절의 아이콘이 된 포은 정몽주. 나라의 운명과 힘이 다해가던 14세기말 화통도감을 만들어 화약과 화포를 개발, 진포대첩에서 왜구 500척의 적선(敵船)을 격침해 이들의 침략을 물리친 최무선 장군.

16세기말인 임진년 4월13일 대한해협을 건너 부산으로 쳐들어온 왜군이 울산과 경주·영천을 차례로 함락하자 구국(救國)의 기치를 높이 올려 창의(倡義)한 유무명(有無名)의 영웅들.

그들은 5월 한천(漢川)과 7월 박연(朴淵)에서의 승리를 발판삼아 인근의 의병들로 구성된 창의정용군(倡義精勇軍)으로 7월27일 드디어 영천성을 탈환함으로써 전쟁초기 국면을 전환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조홍시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송강·노계·고산으로 이어지는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가사문학가로, 임진왜란을 맞아서는 의병으로 전쟁 후에는 군인과 자연시인으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노계 박인로. 실학과 청백리로서 수많은 저작을 남기신 병와 이형상 선생과 암울한 일제식민시대 어두운 거리를 밝히는 한 줄기 등불처럼 민족의 앞날을 비추어 주던 백신애 그리고 왕평 등. 이 분들 모두가 영천이 낳은 위인이다.

삼한시절 골벌국에서 6·25전쟁 당시 영천수복전투에 이르기까지 수천년에 걸친 호국과 충효의 역사, 그 유구한 강물이 바로 영천(永川)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처럼 역사는 그 민족의 정체성이자 미래를 향한 도약의 발판이며 따라서 헬레나 로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다.

국보와 보물·사적·명승·기념물 등은 선조들의 삶과 정신이 깃든 겨레의 위대한 유산으로, 박물관이란 이들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보관·전시하고 미래세대에 물려주는 공간이다. 박물관은 단순한 경제논리로 그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역사의 정수(精髓)와 같은 것인데, 경북의 10개 시(市) 가운데 영천만이 유일하게 공립박물관이 없다는 것은 지역민의 수치다.

보물 제1110호인 정몽주 초상은 경주국립박물관에, 보물 제668호인 권응수 장군의 초상은 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금호읍 어은리의 청동기 유물과 신녕면 화남리의 신라시대 유물 등 현재 1만여점에 달하는 영천시 발굴 유물이 국가에 귀속된 상태다.

또 영천은 은해사·거동사·영지사 등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사찰을 비롯해 임고·도계·도잠서원과 영천향교·신녕향교 등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만 90건 344점에 달한다.

영천시립역사박물관의 건립은 지역의 문화재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관리는 물론 교육·예술·문화·관광·경제 등 폭넓은 분야에서 지역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 박물관이 건립되면 영천에 산재한 문화재와 유적들에 ‘스토리’라는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또한 영천한의마을·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와 더불어 관광클러스터가 조성되어 도심지 확장 등의 지역개발에도 기여할 것은 자명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백범 선생께서 말씀하셨듯이 역사와 유물을 담는 영천시립역사박물관의 가치는 이처럼 무한하다. 다시금 임란 당시 영천복성(永川復城) 전투에서 승리한 의병들처럼, 그들의 혼이 담긴 유물과 유품들이 10만 시민의 우레같은 환영과 함성 속에서 영천으로 돌아오는 그날을 간절히 바란다.

 

최기문(영천시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