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 정치칼럼] 이순신, 의병, 동학, 국채보상운동…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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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2   |  발행일 2019-07-22 제30면   |  수정 2019-07-22
일본에 항거한 역사적 일들
공통점은 나라를 잃었거나
지도자 무능해 백성이 고통
경제보복에 자꾸 들추는 건
정권능력한계 스스로 인정
20190722

그들의 일본 경제보복 대처 능력에 회의가 든다. 대통령과 청와대, 행정부, 집권여당까지 대체 해법을 찾자는 건지, 문제는 얽히든 말든 국민 편 가르기의 수단으로 삼아 정치적 이득을 보겠다는 건지 혼란스럽다. 정권을 잡고 국정운영을 하는 집권층은 국익을 최우선 가치에 두고 국민여론을 잘 관리하면서 상대국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 민심의 물결이 감정에 지배돼 적정수위를 넘어버리면 상황관리가 되지 않아 두고두고 낭패를 겪은 일은 우리 현대사에서도 몇 번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정부 사람들은 마치 위정자가 아니라 민심 선동꾼 같은 어휘를 쓰며 죽창을 높이 들자고 외친다. 이를 비판하면 ‘이적(利敵)’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돌을 던지라고 부추긴다. 반대의견에 귀담아들을 자세는 물론 설득할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다. 신중론자, 현실론자들은 이미 그들의 국민이 아니다. 정권의 국가운영 기본자질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다.

위기상황에서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냈는데, 그 근저엔 이해하기 어려운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그들이 국정운영의 주체이고, 따라서 나라를 잘 못 이끌면 국민이 벼랑끝에 선다는 인식을 아직도 못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일본의 치졸한 보복이 시작된 이후 그들이 국민을, 정확하게는 지지자들을 선동하며 들었던 사례를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전남도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열두 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SNS에 ‘죽창가’ 노래 동영상 주소를 링크했다. 조 수석은 21일엔 “문재인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서희’와 ‘이순신’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며 서희 장군까지 불러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우리는 국채보상운동으로 위기를 극복한 민족의 우수함이 있다. 또 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를 해서 빚을 다 갚았다”고 했다. 민주당의 최재성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장은 “의병을 일으킬 만한 사안”이라고 했다.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그들이 예를 든 것들은 모두 나라가 없을 때, 있어도 집권자들이 무능했기에 보잘것없는 병력을 가진 장수가 장렬한 전사를 각오하고 나섰거나 도탄에 빠진 백성이 목숨걸고 궐기했던 일이다. 문 대통령과 조 수석이 언급한 이순신 장군만 해도 그렇다. 선조는 당쟁에 발목을 잡혀서 일본의 침략 징후를 애써 외면했고, 율곡의 10만양병론까지 묵살했다. 침략을 받아 도성이 함락되고 백성은 참혹한 피해를 입었지만 자기는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피란길에 올랐던 인물이다. 이순신은 무능한 군주 때문에 배 열 두 척으로 맞서야 했고, 나라를 지키기까지 수많은 군졸과 백성이 희생됐다. 죽창가의 배경이 된 동학농민운동은 고종 때 조정의 무능으로 외세가 득세하자 밑에서부터 일어난 반외세운동이다. 대구의 국채보상운동 역시 지배계급이 무능할 때 일제가 조선을 속국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대한민국은 산업화 세대가 일궈낸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우뚝 서 있는 중견국가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응할 가용수단이 얼마든지 있다. 집권층이 있는 수단조차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지 않다면 임진왜란이나 일제시대처럼 병졸과 병기없는 장수가 백척간두에 홀로 설 일이 없다. 국민이 죽창 들고 나설 일은 더욱 없다. 외교 갈등을 외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국민이 떨쳐 일어나라고 하는 건 정권의 무능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아닌가. 혹은 불 끄는 일은 국민에게 맡기고 그들은 다른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하는 건가. 이참에 보수세력을 친일파와 등치시켜서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교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가려는 건 아닐까.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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