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때 젊은 피 수혈→당내 지지세력 구축→대통령 선거 도전

  • 권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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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0   |  발행일 2019-07-20 제5면   |  수정 2019-07-20
[토요일&] 정치권 인재영입과 대권의 함수관계
201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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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각 당이 내년 총선에 대비해 이른바 ‘젊은 피 수혈’로 대변되는 인재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신인은 향후 현역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물갈이 공천’을 위한 인재풀로 활용될 것이다. 각당이 이들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개혁공천의 성패가 갈리고 총선의 향배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재영입 성공 사례

정치권에서 인재영입은 주로 대권 도전을 앞둔 ‘당 오너’의 관심사였다. 총선을 통해 당내에 지지세력을 구축해야 대권 가도가 본인에게 유리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지세 구축은 현역 의원 재공천을 통해서도 이뤄지지만, 신인에게 공천을 밀어줘 당선시킴으로써도 가능했다. 역대 총선에서 초선 당선 비율을 보면, 16대(2000년) 40.7%, 17대 62.5%, 18대 44.8%, 19대 49.3%, 20대 44.0% 등에 이른다. 이들 중 무소속 당선자를 감안하면 평균 40% 이상의 물갈이 공천이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젊은 피 수혈’이란 용어를 처음 구사하며 세대교체를 추진했던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천정배·신기남·정동영·추미애 등을 영입해 당선시켰다. 이들은 1997년 15대 대선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대권 도전을 지원하는 중요한 인적 기반을 제공했다. 이들 중 ‘천·신·정’은 한때 개혁 정치인의 대명사로 인식되며 상종가를 누렸다. 이후 정동영·천정배·추미애 의원은 대권후보 내지는 당대표급 중진으로 성장했으며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15대 총선 때 천정배 등 영입한
김대중 대통령 첫 ‘젊은피 수혈’
김영삼·박근혜 시절도 신인발탁
역대총선서 평균 40% 이상 교체

신인, 잘할 것이라는 기대줘 장점
보수진영, 성공한 전문인 등 선호
진보진영은 운동권 선·후배 공천
대구경북 선거때마다 교체 희생양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선 1980년대 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인영·우상호·임종석 등 386 운동권 출신을 집중 영입했다. 문재인정권 탄생에 기여한 임종석 전 의원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고, 우상호·이인영 의원은 여당 원내대표직을 번갈아 맡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도 인재영입과 물갈이 공천은 반복됐다. 1996년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주도한 공천은 세대교체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이회창 전 국무총리의 신한국당 입당과 함께 민중당 출신인 이재오·김문수가 영입됐고, 홍준표·맹형규 등도 출마해 원내 1당의 지위를 지켰다. 경북에서 김광원(영양-봉화-울진)·임인배(김천) 등이 영입돼 배지를 단 뒤 3선까지 내리 당선됐다.

2000년 16대 총선 전야에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윤여준 총선기획단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김윤환·이기택·신상우 등 당 중진들을 전격 낙천시켰다. 구미에선 김윤환 전 의원 대신에 김성조,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버티고 있던 칠곡에선 이인기 등이 각각 발탁돼 3선까지 갔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아 최대 위기를 맞았을 때도 물갈이 공천이 이뤄졌다. 박근혜 비대위 체제에서 최병렬 대표와 서청원 전 대표 등이 공천에서 탈락하고 신인들이 대거 공천을 받았다. 이때 등원에 성공한 인사가 4선의 바른미래당 유승민 전 대표(대구 동구을)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3선의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 등이다.

◆인재영입 방법 차이

진보진영의 더불어민주당에는 의원 당선 전에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신인들이 적지 않다. 여의도 정치무대가 의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훈련장인 셈이다. 의원 보좌진, 당료 등을 지내면서 정치경험을 쌓아 총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에는 의원과 보좌진 사이에 운동권 선·후배 관계인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의원 보좌진 이력으로도 얼마든지 총선 공천에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이라고 말했다.

반면, 보수진영에선 정치권 밖의 전문분야에서 성공한 유명인사들을 선호한다. 최근 한국당 인재영입위는 박찬호 한국야구위원회 국제홍보위원, 이국종 아주대 교수, 이재웅 ‘쏘카’ 대표 등을 본인들 의사와 무관하게 영입 대상이라고 언론에 흘렸다가 비난을 듣기도 했다.

한국당에선 예전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검사와 판사 출신의 법조인이 환영받았다. 장·차관 등 고위직에 오른 행정관료도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실력이 검증된 데다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생활에 익숙한 인사들이어서 보수정당 체질과도 통했다는 지적이다. 국가관이 투철하다는 이유에서 경찰과 군인 출신도 선호됐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권에서 이력을 쌓은 보좌진이나 당료들의 몸값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들이 지역구 공천을 얻기는 바늘구멍이었고, 비례대표를 받더라도 당선권에서 벗어난 후순위에 배정되는 사례가 많았다.

◆신인 강점과 현역 평가절하

정치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성 정치인보다 낫다는 법은 없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이상득 전 의원이 물러난 포항남구-울릉에 김형태 전 KBS 국장이 김성조 전 의원의 구미갑에는 심학봉 전 경제자유구역기획단장 등이 각각 공천을 받아 당선됐으나 둘다 불명예스럽게 도중하차했다. 고령-성주-칠곡에선 이인기 전 의원 대신에 이완영 전 대구지방노동청장이 공천을 받았으나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달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신인에게는 선거에 유리한 장점이 몇가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엇보다 신인의 자질과 역량을 유권자들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잘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정치 신인이 유창한 언변으로 자기 홍보를 잘하면 화려한 상품 포장에 손이 가는 소비자처럼 유권자의 마음이 움직이기 쉽다”고 분석했다.

그에 비해 현역 의원들은 선수가 올라갈수록 탈락 가능성은 높아진다. 유권자들로선 현역 의원의 활동상을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신선감이 떨어지고 피로도가 쌓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선으로 가기 위해선 그런 악재를 상쇄할 수 있는 위상 변화와 업그레이드가 요구된다. 한 경북 의원실 관계자는 “재선·3선에 성공하려면 유권자들에게 왜 그렇게 돼야하는지, 당선되면 뭘 할 것인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선거 표심에 현상유지라는 것은 안 통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경우 강남을 제외한 지역구 선거에선 후보 개인기 덕분에 당선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현역 본인만 지역구에서 인기가 좋으면 물갈이 칼날을 피해갈 수 있고, 다선으로 가는 길도 열려있다. 경기도 지역구에서 5선인 심재철·정병국 의원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대구경북에선 선거 때마다 보수정당 의원들을 상대로 대규모 현역 교체 공천이 이뤄져왔다. 기본적으로 보수정당 지지도가 높아 신인 발탁에 따른 위험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 표심에 개혁공천을 어필하기 위해선 안방 격인 대구경북 등 영남권 현역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대권 도전과 물갈이 공천 가능성

인재 영입에 나름대로 성과를 거둬 총선 대비용 ‘실탄’이 준비됐더라도 어떻게 ‘장전’할 것인가도 관건이다. 과거에 당지도부가 ‘전략공천’이란 이름으로 공천을 내리찍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당원들과 유권자의 의향을 공천에 반영하는 ‘상향식 공천’이 당내 민주화라는 명분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당은 상향식 공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경선을 장려하되, 정치신인들에게는 가산점을 주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확정한 공천룰에서 신인에게 10~20% 가산점을 주기로 했고, 한국당도 그에 준하는 기준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정도의 가산점이 신인에게 지역구 의원을 제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산점을 주더라도 신인 득표율의 10~20% 가산이기 때문에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경선 선거인단의 통상 50%를 차지하는 당원들이 대부분 현역 의원과 연결된 인사들이어서 현역이 기본점수는 따고 들어간다는 전언이다. 이를 감안해 한국당 내에선 당 지도부가 공천에 깊숙이 개입하는 하향식 공천의 효용을 재평가는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내년 총선이 임박할수록 각 당의 인재영입과 그에 따른 공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개혁공천 정당’이란 유권자 평가가 내려지면 후보 개인에 대한 인물평을 능가하는 바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민주당 비대위 대표로 영입돼 계파를 가리지 않고 칼날을 휘둘렀던 김종인 전 의원이 성공사례로 꼽힌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 등 각 당 지도부는 인재영입과 물갈이공천을 어떻게 연결시켜 차기대권에 유리한 발판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권혁식기자 kwonh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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