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경쟁자 한국 반도체 산업 전략적 견제 의도”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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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0   |  발행일 2019-07-20 제3면   |  수정 2019-07-20
日 수출규제 보름째…장기화 가능성
20190720

우리나라를 겨냥한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19일로 보름이 지났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들어서면서 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반도체 산업이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글로벌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AI시대 반도체 강국 부활 꿈꾸는 日
시스템 반도체 시장 주도권 잡기 속셈
미중무역전쟁과 판박이…더 큰피해 우려

2차 보복으로 ‘화이트 국가’제외땐
수출통제 이외 품목도 개별허가 거쳐야
식료품 등 제외한 대부분 타격 가능성
전문가, 반도체 소재 국산화 목소리도
참의원 선거 이후 아베 선택에 관심

◆컨트롤 가능한 한국 정부 원하는 일본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 제작 때 쓰는 감광제인 ‘포토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의 대 한국 수출시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동안 한국에 수출할 때 한번 포괄적인 허가를 받으면 3년간 개별 품목에 대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포괄허가’를 부여했는데, 이를 전격 폐지하고 개별 제품을 수출할 때마다 경제산업성에 수출허가를 신청, 심사를 거쳐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이 중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 리지스트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각각 93.7%, 91.9%에 달해 공급 차질이 우려된다. 이어 일본은 2차 보복조치로 안전보장상 우호국에게 수출관리 우대조치를 하는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방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이 제외되면 수출통제 물자 이외 품목도 개별 수출 허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식료품, 목재 등을 제외한 대부분 품목이 해당돼 국내 주력 산업이 전방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 배터리, 자율주행차 등 한국 미래 성장산업 소재·부품 상당수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백권호 영남대 교수는 “한국 경제와 한국 정부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성립된 이른바 ‘65년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게 일본의 생각”이라며 “여기에다 일본이 핵심 산업으로 주목하고 있는 AI분야에 필수적인 반도체와 관련해 한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웨이 제재와 판박이

백 교수의 주장은 54년 전 경제건설 자금이 절실했던 개도국과 세계 2위의 아시아 최강 경제 대국 사이에 맺어진 조약으로 형성된 65년 체제가 한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면서 한계에 도달했고, 일본 정부는 이를 재건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AI 시대 반도체 강국 부활을 꿈꾸는 일본이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자인 한국에서 이 참에 아예 싹을 잘라 버리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제재가 미중 무역전쟁과 닮았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실체가 모호한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한국에 수출 제재를 가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 및 화웨이 제재와 ‘판박이’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의 시발점이 중국의 ‘제조 2025’(2025년 반도체 자급률 70%)인 점을 감안하면, 시스템 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비전 2030’과 매우 흡사하다. 트럼프는 ‘도광양회’에서 ‘대국굴기’로 나아가려는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은 반도체 산업의 비약을 준비하는 한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서막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 일본 경제산업성의 ‘일본 수출 통제 목록’에 따르면 민간용 전략물자 261개, 비민간용 전략물자 851개 등 총 1천112개가 일본의 전략물자로 분류돼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언제든 ‘전략물자’를 빌미로 수출규제에 나설 수 있다. 2차 수출규제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공작기계와 탄소섬유 등 화학제품이다.

또 ‘글로벌 가치사슬’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15일 일본 경제산업성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방침 철회를 촉구하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전경련은 건의서를 통해 “일본의 수출규제로 일본-한국-미국-중국-EU로 연결된 가치사슬 교란이 우려된다”며 “일본의 이번 조치는 한국업체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 그리고 일본 기업들에도 2차 피해가 예상된다”고 했다.

◆이번 사태의 교훈은

한일 양국이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 보다는 강대강 대결 국면을 이어가면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1차 경고한 데 이어 15일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이라며 강공드라이브를 이어갔다.

이에 따라 상대국에 대한 양국 국민의 감정도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자유무역 질서와 국제분업의 룰에 역행하는 일본의 기습적인 보복조치에 대해 일본 국민 과반이 지지한다는 일본 내 언론사의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왔고, 한국갤럽이 지난 9∼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에 호감이 간다’는 응답이 12%로, 1991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 아베 정권이 참의원 선거 이후 이미 예고한 ‘화이트리스트 국가 배제’ 카드를 유보하고, 대화로 해결 방안을 찾는 쪽으로 방향을 틀지 여부가 이번 사태 해결의 중대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의 이번 경제 보복을 두고 전병서 경희대 교수는 “미국의 대 중국 반도체 규제를 흉내낸 아베의 대 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제재는 장비, 재료, 소재의 국산화 없이는 언제든 일본에 당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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