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그늘] <중>사면초가에 빠진 구직자

  • 명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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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7   |  발행일 2019-07-17 제3면   |  수정 2019-07-17
직업소개소 구인전화 ‘뚝’…임시·일용직 “앞날 캄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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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주점. 지난해까지만 해도 개점시각이 되면 알바생들이 영업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지만, 업주가 임금인상으로 고용을 포기하면서 예전의 풍경이 사라졌다.


청와대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이틀째인 지난 14일 최저임금 인상의 경제적 부작용을 사실상 인정했다. 김상조 청와대비서실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지난 2년간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청와대측의 인식을 전달하며 “(정부의) 부족함이 없지 않았다고 인정한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정부의 임금인상책이 경제적 부작용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김 실장은 “지난 2년간의 최저임금 인상은 ‘표준고용계약’ 틀 안에 있는 사람에겐 긍정적 영향을 줬지만, 밖에 분들에게는 큰 부담이 됐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는 최근 2년간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임시·일용직 근로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입에선 ‘고용참사’라는 표현까지 서슴없이 나온다.

중소업체 판매직 경쟁 탓 임금 불이익 감수
대학생 알바는 몸값 낮춘 외국인학생 꿰차

기업·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움직임 기대감
근로자 임금인상·처우개선 관심도 높아져
자영업자 고용·인건비 상승 시각에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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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2.87%로 결정된 지난 12일, 대구 중구 대신동 달성공원 인근의 ‘ㄱ 직업소개소’ 앞에서 만난 A씨(54)는 근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인 A씨는 “벌써 3일째 허탕쳤다. 고정적으로 일자리를 주는 곳마저 연락이 없어서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며“사실 경기침체 때문에 몇해 전부터 일자리가 줄어드는 경향은 있었지만, 2년 동안 최저임금이 갑자기 오르면서 사정이 더 나빠졌다. 오늘 뉴스를 보니 내년도 최저임금이 또 오른다는데 앞날이 막막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ㄱ 직업소개소’와 같은 소개업소를 통해 단기·일용직으로 취업한 노동자는 63만6천여명이다. 2017년(72만1천여명)보다 11.7%(8만5천여명) 줄었다. 업계는 2018년에 이뤄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라 보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도 10.9%나 오른 만큼 연말 집계 시 지난해 대비 감소치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자가 들어가 본 ‘ㄱ 직업소개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소장 B씨는 “지난해부터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자 인력을 구하는 업소가 사라졌다. 구인전화가 하루 한통은 고사하고 한달에 2~3통이다. 폐업신고는 안했지만, 사실상 문 닫은 거나 다름없다”고 하소연했다.

대구지역 내 직업소개소가 몰려있는 중구에서 폐업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중구청에 따르면, 2017년까지 50여개에 달하던 중구 내 직업소개소는 2017년부터 올해 현재까지 17곳(2017년 7곳·2018년 6곳·2019년 4곳)이 사라지고 현재 36곳만 남아 있다.

◆돈은 돈대로 못 받고

임시·일용직 근로자들은 최저임금 급상승 탓에 일은 일대로 줄고, 돈은 돈대로 못 받고 있다며 하소연한다. 주부 D씨(59·대구시 서구)는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달 동안 일하는 ‘단기간 판매 알바’를 뛰고 있다.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기 때문에 최저임금 상승을 반길 것 같지만, 실제는 다르다. D씨는 “판매직 알바뿐만 아니라 보통 주부들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들은 경쟁률도 치열한 편이라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일하려 한다. 그래서 중소업체에 소속된 대부분의 판매직 알바들은 최저임금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실제로 D씨와 같은 임시·일용직 근로자 중 많은 이들이 최저임금을 못 받고 있다.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분석한 ‘2018년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4인 규모 고용 사업체는 최저임금 미만율(전체 근로자 중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의 비율)이 36.8%나 됐다. 5~9인 규모 고용 사업체도 19.6%로 10명 중 2명 꼴이다.

최근 2년간의 최저임금 상승 흐름을 볼 때, 최저임금 미만율의 증가폭은 더욱 가파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국내 전체 근로자 중 최저임금 미만율은 15.5%로 조사됐다. 전년도(13.3%) 대비 증감률은 2.2%포인트로, 이는 2007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이다. 사용자측이 2018년에 이뤄진 급격한 최저임금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긴 부작용으로 해석된다.

◆하늘의 별따기 방학알바

대학생들의 ‘방학 기간 등록금 벌이’는 옛말이 됐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사람 쓰는 자영업자들이 줄면서 요즘 대학생들의 알바자리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대학생 E씨(22)는 “예전엔 구직 사이트에서 찾지 못하면 지인을 통해서라도 일자리를 구했는데, 이번 방학에는 너무 힘들다. 알바는 진작 포기하고, 스펙쌓기에 열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도 부담이 커졌다. F씨는 “등록금까진 바라지 않지만, 아들이 용돈을 벌어 부담이 적었는데 요즘엔 사정이 달라졌다. 대학생들이 취업전에 알바를 통해 사회생활경험도 쌓으면 좋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근엔 일명 ‘셀프 염가’를 외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나타나면서 대학생들의 알바문턱은 더욱 높아졌다. 법적으로 외국인들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지만 유학생들은 한국말이 서툰 점을 내세워 자신의 몸값을 낮추며 알바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대학가 주변 일부 가게에서 유학생 알바가 나타났으나 최근에는 주요 번화가와 시내 중심가 등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시내 모 주점업주는 “술집 저녁 장사는 알바비를 최저임금보다 10~20% 정도 더 줘야 하는데, 외국인 학생들은 최저임금만큼만 받고 일하겠다고 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얼마라도 아끼기 위해 이들을 고용한다”고 해명했다.

자리를 잃은 대학생들은 ‘공공 알바’로 눈을 돌리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경북도가 시행 중인 ‘대학생 공공기관 직무체험’ 경쟁률은 2017년 3대 1에서 2018년 3.4대 1로, 올해는 4대 1까지 늘었다. 대구시가 모집하는 ‘대학생 국내 인턴 사업’의 경쟁률도 사업 첫회인 2016년 하계사업에 14.7대 1을 기록했는데, 올해 하계사업에는 28.8대 1까지 치솟았다.

◆새로운 희망의 빛줄기

최근 2년간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민생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하지만, 희망의 빛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임시·일용직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임금체계를 보다 관심 깊게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근로자 M씨는 “기존엔 고용자가 돈을 주면 주는 대로 받는 경향이었는데, 최저임금 인상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관심이 높아졌다”면서 “근로자들끼리 모이면 임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고, 서로 처우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근로자끼리 머리를 맞대면서 고용주측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아직 태동 중인 단계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도 힘을 싣고 있다. 최근 홈플러스는 무기계약직 1만4천200여명을 조건없이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사측의 불가피한 조치라는 시각도 있지만, 승진 기회를 제한하지 않는 등 조건없는 정규직 전환으로 경제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외에도 정부부처나 공기업·대기업 등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규직 전환 시 최저임금으로 인해 월급이 더 줄어들 수도 있지만, 고용 안전이라는 보호망은 정규직 전환 노동자에게 큰 이득이다.

자영업자들도 임금인상을 인정하면서, 차가운 시선을 거둬가고 있다. 자영업자 H씨는 “임금인상을 계기로 사람을 고용하는 부분에 대해 더욱 진중하게 생각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경영공부를 하게 됐다”며 “대책없이 자영업에 뛰어드는 예비 창업자들도 철두철미하게 준비토록 하는 계기가 생긴 것 같다.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자영업자가 많아지면, 민생경제는 자연히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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