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역사 청송 문화재 여행 .1] 대전사 보광전과 석조여래삼존상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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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09   |  발행일 2019-07-09 제13면   |  수정 2020-03-18
주왕산 품에 안긴‘보광전’347년 변함없는 불교문화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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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기암을 병풍 삼아 터를 잡고 있는 대전사 보광전. 불교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7월28일 보물 제1570호로 승격됐다.

◆시리즈를 시작하며=‘산세는 기복이 있어 용이 날아오르는 것 같고, 냇물은 서리고 돌아서 마치 가려다 오는 것 같구나. 소나무와 잣나무는 울창하고 노을과 연기는 침침하게 잠겨 있어도, 맑고 그윽함으로 동학(洞壑)이며 선경(仙境)이 이곳이로다’. 조선 전기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홍여방(洪汝方)이 기행문을 통해 청송을 표현한 문구다. 설악산과 함께 3대 암산 중 하나인 주왕산을 품고 있는 청송은 예로부터 수려한 자연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하지만 청송을 단순히 자연이 아름다운 고장으로만 기억한다면 큰 오산이다. 푸른 솔밭(靑松) 곳곳에는 옛 선조들의 정신과 혼이 담겨 있는 유서 깊은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들이 천혜자연과 한데 어우러져 지금의 청송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영남일보는 청송지역 주요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로 육성하기 위해 ‘살아있는 역사 청송 문화재 여행’ 시리즈를 연재한다. 1편에서는 주왕산에 터를 잡고 있는 대전사 내 보광전(보물 제1570호)과 석조여래삼존상(경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의 역사와 그 가치에 대해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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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전사 보광전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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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불상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대전사 보광전 석조여래삼존상. 석가모니상을 떠받치고 있는 세 마리의 사자상이 눈에 띈다.

언제나 분명하고도 가차 없는 놀라움을 주는 주왕산 기암. 그 아래에, 그것을 등지고, 대전사가 앉아 있다. 아마 1천 년도 더 전부터 자리잡은 좌정이다. 오래되어 익숙한 공식으로 조형되어 있는 건물들은 자연과 과격한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정신을 안으로 모아들이면서 또한 살아 있는 균형을 이룬다. 
#1. 주왕산 대전사

대전사(大典寺), 절 마당이 많이 넓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장쾌히 선 은행나무가 충일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경내의 중심에 선 것은 본전인 보광전이다. 좌측으로는 봉향각, 수선당, 관음전을, 우측으로는 명부전, 산령각을 거느리고 있다. 보광전 앞마당에는 유적 발굴시 부서져 흩어져 있던 잔해를 모아 세운 삼층석탑이 있다. 석탑의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된다. 현재 대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다.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인 67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또는 진성여왕 6년인 892년에 낭공대사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고려 태조 2년인 919년에 눌옹(訥翁)이 창건했다는 등 분분하다. 대전사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惠勤)이 붙였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당나라 말기 후주(後周)의 왕이라고 자처하던 주왕(周王)이 당과의 싸움에 패하여 이곳으로 도망왔는데, 그의 이름을 따 주왕산(周王山), 그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했다고 전한다. 그 뒤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전사 절 이름은 나옹화상이 붙여
단순하지만 준엄한 맞배지붕 보광전
내부 단청 회화성 돋보여 가치 높아
1685년에 조성한 석조여래삼존상
전체적으로 조선후기 불상 양식 반영



현재 전해지는 정확한 중수 연도는 조선 현종 13년인 1672년이다. 1976년 대전사의 본당인 보광전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歲在康熙十一年壬子五月初十一日(세재강희11년임자5월초11일)’이라는 상량문(上樑文)이 나온 것이다. 1798년에 청송부사 홍의호(洪義浩)가 쓴 글을 보면 대전사를 ‘거찰’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후 대전사는 쇠락한 것으로 보인다. 방산(方山) 허훈(許薰)은 1895년에 주왕산을 유람하면서 ‘대전사는 다 무너져 없어지고 다만 두 불당만 남아 있다’고 기록했다. 두 불당 중 하나가 보광전이다.

#2. 보물 제1570호, 대전사 보광전

기암을 지붕 머리에 이는 자리에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화강석 주춧돌을 놓았다. 그리고 주춧돌 위에 약간 흘림이 있는 기둥을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세웠다. 기둥머리에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주는 창방(昌枋)과 평방(平防)을 걸고 층층으로 짠 공포를 올렸다. 기둥머리와 기둥 사이 평방 위에도 공포를 얹어 다포식(多包式)의 건물을 꾸몄으나 측면에는 공포를 두지 않았다. 외부로 보이는 쪽의 공포는 위로 치솟아 올라간 앙설형(仰舌形)으로 하였고 내부 쪽은 하단을 둥글게 굴린 교두형(翹頭形)으로 조형하였는데, 이는 조선 중기 이후의 목조건축 양식의 특징이었다. 내부에는 2개의 기둥을 세웠다. 측면 기둥의 열과 맞지 않게 뒤쪽으로 가깝게 배치해 예불 공간이 넓도록 했다. 그리고 1672년 5월11일, 건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마룻대를 올렸다. 상량이다.

마룻대에 서까래를 걸쳐 지붕을 완성했다. 단순하지만 준엄한 느낌을 주는 맞배지붕이다. 공포가 없는 측면에는 풍판을 내렸다. 정면의 처마는 겹처마로 하였고 배면은 홑처마로 구성했다. 내부 천장의 가운데는 우물천장을, 그 주변으로는 빗천장으로 마감했다. 그리고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중창 당시의 것으로 짐작되는 내부의 단청은 회화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으로 조선 중기 불교미술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후 1976년에 중수 및 단청을 하였을 뿐, 보광전의 뼈대는 상량한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대로다. 대전사가 쇠락해가는 가운데서도 보광전은 347년을 그 자리에 있었다. 건축물이 시간에 도전하는 능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보광전은 1985년 10월15일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02호로 지정되었다가 불교 문화재적 가치를 높게 인정받아 2008년 7월28일 보물 제1570호로 승격됐다.

#3.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 대전사 보광전 석조여래삼존상

보광전 내부에는 석조여래삼존상(石造如來三尊像)이 봉안돼 있다. 본존불은 석가모니(釋迦牟尼), 좌우 협시불은 각각 보현보살(普賢菩薩)과 문수보살(文殊菩薩)로 추정된다. 본존불의 크기는 높이 108㎝이며, 왼쪽의 보현보살상은 높이 80㎝, 오른쪽의 문수보살상은 높이 79㎝이다. 삼존상은 복장조상기문이 나와 강희(康熙) 24년, 즉 숙종 11년인 1685년에 조성됐음이 확인됐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는 세 마리의 사자상이 두 발을 들어 올려 떠받치고 있는 특이한 대좌에 앉아 있다. 얼굴은 각이 진 사각이다. 앞으로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반쯤 뜬 눈과 곧은 코, 굳게 다문 입술이 근엄한 인상을 준다. 머리는 둥글고 소라모양처럼 촘촘하게 말려 올라간 나발(螺髮)이 검게 표현되어 있다. 정수리에는 둥근 금빛 계주(珠)를 올렸고 정면 가운데에는 반달 모양의 중앙계주로 장식했다. 어깨는 살짝 둥글게 떨어져 오른손은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고 왼손은 살짝 오므려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게 하고 있다. 하체는 오른발을 왼발 위로 올려 가볍게 발목을 교차시킨 길상좌(吉祥坐) 형태다. 두 다리 사이에는 옷 주름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있다.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조금 더 앞으로 숙이고 있다. 그 외 얼굴 표현과 신체 비례 등 전체적인 조형은 본존불과 유사하다.

대전사 보광전의 석조여래삼존상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의 불상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조성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또한 내구성이 뛰어나며 조형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조선 후기 가파른 한 세대에서 나온 그들은 역사의 부침을 겪어가면서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진 존재들이다. 삼존상은 2004년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로 지정됐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청송군지. 주왕산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청송대전사보광전. 정밀실측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11. 최선일, 조선 후기 조각승과 불상 연구, 경인문화사, 2011. 경상북도문화재도록, 동해문화사, 1955. 경상북도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 경상북도, 1984.

공동기획지원 :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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