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막말의 정신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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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5   |  발행일 2019-06-15 제23면   |  수정 2019-06-15
[토요단상] 막말의 정신병리
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주위에 막말을 아무렇게나 뱉어내는 사람이 한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는 독특한 특징과 패턴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친절해서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가 갑자기 화를 내고 막말을 해서 사람을 놀라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사고패턴은 항상 극과 극을 달린다. 자신의 편이라 생각하고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잘해주다가도, 조금이라도 거절당했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는 몹쓸 사람으로 전락시킨다. 항상 내편과 상대편을 가르고 내편은 좋고 상대편은 나쁘다고 여긴다. 그렇게 편을 가르려고 하다 보니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서 저 말하면서 이간질을 잘하고 뒤에서 조종하려 든다. 이들은 거짓말과 위선적인 행동을 잘 하는데, 처음에는 다들 그 사람의 포장된 모습을 믿게 된다. 만약 자신의 위선이 드러나거나 상대방이 자기 뜻대로 조정이 안 되면,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막말로 상대방을 비난해서 꼼작 못하게 만든다. 이것도 잘 안 먹힌다고 생각되면 자해나 자살을 하겠다고 위협해서라도 상대방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한다.

이유는 분리(splitting)라는 정신기제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경계성 인격장애’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이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는 막말, 즉 되는대로 함부로 말하거나 속되게 말하는 것이다. 막말은 순간적으로 화를 못 참아서 쏟아 붓기도 하지만, 다분히 의도를 가진 경우가 많이 있다. 막말의 첫 번째 의도는 상대방의 약점이나 실수를 꼬투리삼아 비난을 퍼부음으로써 일단 자신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 의도는 그렇게 우위를 점한 뒤 주변인에게 자신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려 함이다. 세 번째 의도는 상대방과 자신의 주변인들의 경계를 지음으로써 자신의 편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처음에는 이런 시도가 생각보다 잘 먹히기 때문에 이들은 이 방법을 반복해서 쓰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가족까지 관계를 끊거나 멀리하게 된다. 또한 그들의 공감능력은 바닥을 치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멀어진다. 막말의 끝은 결국 외톨이이며, 급기야는 혼자가 될까봐 너무 두려워 주변 사람을 붙들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도 서슴지 않게 된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헝가리 유람선 참사 후 페이스북을 통해 ‘일반인은 차가운 강물에 빠졌을 때 골든타임은 기껏해야 3분’이라는 표현을 했을 때, 갑자기 내 가슴에 말뚝이 콱 박히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라는 의문에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구조대를 파견하면서 속도를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입장을 ‘대변’했다고 했지만, 의도는 분명해 보였다. 세월호 참사를 빗대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면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편을 가르려는 의도를 느낀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슴에 말뚝 박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가족도 아닌 필자가 가슴에 말뚝이 박히는 느낌이라면, 유가족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 이상일 것이 분명하다.

달창, 걸레질, 천렵질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위험한 표현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막말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당의 입장은 막말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제1 야당이 보여줄 수 있는 정치적인 비판기능이라고 하기에는 쑥스럽다. 개인이라면 소송이 난무할 발언들이다. 만약 분노과 공포를 통해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라면 국민을 너무 아래로 본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분노를 일으켜 분리를 시도하는 것이라면 당장은 효과가 있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손해나는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이어지는 막말들에서 기존 보수세력의 불안을 엿본다. 목표는 분명히 내년 총선이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 건전한 보수를 원하는 사람들은 실망해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내부로부터 몰락할 수도 있다. 아무리 자신의 입장이 맞다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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