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살과 냉면의 깔끔한 조합 ‘닥살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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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4   |  발행일 2019-06-14 제34면   |  수정 2019-06-14
[이춘호 기자의 푸드로드] 대구상륙 팔도 냉면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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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출신으로 1999년 사라질 뻔 했던 진주냉면을 개발해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식생활문화연구가인 김영복씨. 그가 4년 전 수성못 먹거리타운에 상륙한 종로국시와 손을 잡고 대구식 진주냉면격인 ‘닥살냉면’을 개발했다.

닥살냉면. 이건 부산밀면의 기운을 조금 차용한 새로운 버전의 진주냉면이다. 이게 대구에서 먹힐 줄은 몰랐다. 나는 닭앞가슴살(이하 닭살) 가루를 냉면 재료로 사용한 김영복씨의 역발상이 궁금해 그를 만나러 ‘종로국시’로 갔다. 가장 인상적인 건 닭살 고명이었다. 찢어놓은 느타리버섯 같은 닭살 몇 점이 무절임 위에 고요하게 앉아 있다. 기존 진주냉면에는 고명으로 육전을 올린다. 그런데 여긴 닭살을 올려놓았다. 깨와 참기름, 양념, 김가루 등을 정신없이 퍼붓는 자극적인 요즘 대구식 냉면과는 좀 거리가 있다. 깔끔하고 단아한 포스다. 면을 맛 봤다. 진주냉면은 대체적으로 굵은 스타일인데 여긴 대구 정서에 맞게 조금 가늘게 뺐다. 찰기를 유지하려면 접착제 구실을 하는 전분을 사용해야 된다. 진주냉면의 메밀과 전분 비율은 평균 6대 4. 강원도 막국수는 7대 3 비율. 대구는 3대 7 비율. 대구는 여전히 졸깃한 면발이 강세다. 현지 사정을 감안 31%의 메밀가루를 사용했다. 거기에 고구마전분과 닭살가루를 합쳐 69%를 섞는다. 졸깃함의 정도는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중간 지점 정도다. 대구·부산·진주·강원도식 냉면의 기운까지도 과감하게 흡수한 상태. 면발 전면에 미세한 구수함이 감지된다. 닭살이 냉면과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닥살냉면이 국내 최초로 보여준 셈이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가 전수한 ‘닥살냉면’
닭가슴살 가루 사용한 구수한 면발 국내 첫선
닭 특유의 비린내 제거 문헌 등 연구로 찾아내
무절임 위에 찢어 올린 닭살 고명, 깔끔한 맛
닭살·닭발 사용 진한 육수, 동치미 국물로 희석



닥살냉면은 어떤 연유로 대구에서 태어났을까. 김씨는 고조리연구의 신지평을 연 한양대 이성우 교수의 뒤를 잇는 푸드스토리텔러.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그는 한때 군사평론가의 길을 생각하다가 미래가 불안해 요리연구가로 터닝했다. 그가 푸드스토리를 연구할 당시만 해도 그 유명한 음식칼럼니스트 백파 홍성유조차 등장하기 전이었다. 이런저런 요리연구가는 많았지만 다들 식품영양학과 교수 범주였다. 강단파라서 현장의 정보는 극히 어두웠다. 그는 20년쯤 발품을 팔기로 결심했다. 사라져 가는 한식의 연대기. 그걸 찾아 현장을 누볐다. 그 와중에 영천에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국수방’을 어렵사리 발견할 수 있었다. 국수방은 밀가루산업이 부재했던 시절 반가에서 사용하던 고운 밀가루 추출 공간이었다. 이는 멧돌로 억세게 갈아놓은 밀가루를 부채로 부쳐 느슨하게 붙여놓은 벽지에 내려앉게 하는 원시적인 집분방식이다. 그는 그동안 무려 700여가지 한식 메뉴의 원형을 문헌에 입각해 정리했고 조만간 그걸 시리즈로 펴낼 계획이다.

닥살냉면의 출발점은 20년전 그가 만난 고조리서인 ‘산가요록’ 중 ‘진주면’ 항목. 그는 단번에 그 메뉴에 밑줄을 그었다. 닭살에 전분을 섞어 완자처럼 만든 신형 냉면이었다. 밀가루에 꽁치살점을 섞어 만든 울릉도의 꽁치수제비를 닮았다. 그는 당시 진주면을 모티브로 언젠가 냉면스타일의 진주면을 개발하겠다고 결심한다.

그 결심이 사업으로 진척될 수 있었던 건 한국 치킨산업의 성지 중 한 군데인 <주>BBQ치킨에서 근무하면서부터. 거기서 그는 한국인의 닭에 대한 부위별 선호도를 알게 된다.

지난해 5월 도계된 닭의 수는 무려 941만5천여마리, 7월에는 1천72만6천마리로 급증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부위는 다리·날개·정육순이다. 마리당 250~300g 닭살은 천덕꾸러기 신세. 퍽퍽하고 맛이 없다는 이유로 잘 먹히지 않고 방치된다. 현재 국내 닭살은 월평균 약 2천565t이 생산된다. 치킨 소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닭살 재고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늘어나는 닭가슴살의 재고를 줄여주기 위해서 소비자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한 것이다.

“치맥의 도시 대구는 대한민국 닭 1번지라 해도 될 정도로 다양한 닭 요리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성공하면 전국을 공략할 수 있죠. 그러면서도 새로운 메뉴에는 상당히 배타적인 게 대구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대구의 입맛을 제 방식대로 바꿔보고 싶어 도전장을 낸 겁니다. 4년 전 문을 연 종로국시 정상자 사장과 손을 잡고 2년여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닥살냉면을 완성하게 됐습니다.”

닥살냉면은 전국에서 처음 개발된 것이다. 선행사례가 없어 완성품을 만들기까지 고생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닭살 분말조차 제대로 만들기가 번거롭고 어렵다. 특히 닭 특유의 비린내와 닭살과의 매칭이 과연 잘 어울리는가 하는 점이 늘 궁금했다. 메밀·전분과 섞였을 때 과연 기존 냉면처럼 졸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닭살 입자 크기 조절도 난제였다. 알갱이가 너무 굵으면 면이 쉬 끊어진다. 너무 가늘면 닭이 주는 구수함이 사라지게 된다. 다음은 닭 특유의 비린내 제거도 역시 난제였다. 너무 많이 노출된 고만고만한 한약재를 잘못 사용하면 전체 식감에 타격을 준다. 그는 여러 문헌을 연구하면서 적당한 구근(식물 뿌리)을 찾아냈다. 남은 건 육수만들기. 일단 기름기가 많은 한우 육수는 지양하기로 했다. 닭살과 닭발을 이용해 진한 육수를 추출하고 거기에 동치미 국물로 희석시켰다. 식물성과 동물성의 식향이 자연스럽게 후각을 건드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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