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신기술과 위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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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4   |  발행일 2019-06-14 제22면   |  수정 2019-06-14
신기술 개발의 그림자 존재
위험이 동시에 증가하기도
사고 나지 않는게 중요 가치
안전확보 위한 장치 갖추는
인간 존엄에 대한 투자해야
[경제와 세상] 신기술과 위험사회

1987년 10월 세계적인 알루미늄 제조회사이지만 심각한 재무적 문제를 겪고 있었던 ‘알코아’는 새로운 CEO 폴 오닐을 영입한다. 투자자들은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고 수익을 올릴 새로운 경영전략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폴 오닐은 기대와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를 선언한다. “알코아를 미국에서 최고 안전한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우리 목표는 무사고입니다.” 어느 한 월스트리트의 투자 분석가는 원색적으로 그를 비난하며 회사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불평을 쏟아내었다. 당연히 많은 투자자들은 실망하여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알코아는 폴 오닐이 퇴임할 때까지 순이익이 5배 증가하였고, 안전사고율은 미국 전체 평균의 20분의 1까지 낮아지는 등 마법과 같은 일이 이뤄졌다.

인류는 신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이를 접목하여 생산성을 높이고자 노력해 왔다. 산업혁명이라는 혁신적 변화의 역사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신기술 확보가 기업의 경쟁력으로 대변될 만큼 중시되는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신기술의 개발과 도입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생산 속도와 효율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위험도 동시에 증가하게 되었다.

우리의 대표적 효자 제품인 반도체의 경우가 예시가 될 것이다. 웨이퍼 등 표면에 도선 패턴 등을 만들 때 금속 오염물 등을 제거하기 위해 세정 작업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이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세정 재료가 ‘불산’이다. 안타깝게도 이 불산이 누출되면서 사업장 이외의 주거지까지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분명 생산성을 높여주는 신기술로서 수익을 가져다 주지만, 그 기술이 초래할 부정적 위험까지는 미쳐 알지 못했던 것이다. 불산 누출 사건 이후 사업장만이 아닌 사업장 주변, 즉 장외에 대한 위험까지 관리하는 ‘장외영향평가서’ 제출 의무화 제도가 시행되게 된다.

안전의 문제는 인간 존엄의 가치와 연결된 문제라고 이야기된다. 품질과 생산성만을 좇던 시대에서는 고려되지 않았던 작업장 환경 개선, 자동화를 포함한 작업 방법 개선, 근골격계질환 예방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스템적 혹은 공학적 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 이는 불가피하게 비용으로 연결된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산재 사고사망 만인율(만명당 사망사고율)은 0.51퍼밀리아드로 전년도보다 0.01퍼밀리아드 소폭 감소했고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수치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없이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건설업체의 사망 1건 발생에 따른 직간접적 총 손실액은 약 12억원이라고 분석되었다. 좀 더 자세히 소개하면 급여, 장의비 등 직접적 손실액은 약 2억원인 반면 복구비용, 생산손실 등 간접적 손실액은 10억원이었다고 한다. 5배 규모다. 향후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간접손실비용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니 어떤 대비를 할 것인지는 자명해 보인다.

우리가 보다 경쟁력 있는 국가, 존경받는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 신기술 확보와 함께 안전 확보는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가치다. 이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투자를 의미한다. 미국의 알코아에서 일했던 근로자들은 오히려 어떻게 수익을 높여 줄 수 있었을까?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저서 ‘위험사회’에서 “부를 위해서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생산력이었는데, 근대화 과정에서 생산력은 그 자체가 위험이 되고 있다”라며 “경제적 부를 희생하더라도 위험을 사전에 줄여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는 안전의 시대다.

전진우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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