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사권 조정, 누구를 믿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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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07   |  발행일 2019-06-07 제21면   |  수정 2019-06-07
20190607
이성용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 경찰은 버닝선으로, 검찰은 김학의 사건으로 치명상을 입고 있다. 토머스 홉스(1588~1679)는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국가권력을 필요악의 괴물로 표현했다. 검찰, 경찰 모두 가장 강력한 국가의 수단이다.

권력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의심하고 또 의심하세요. 권력이 점점 뭉쳐서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분리시키세요.”

구성원 개개인의 윤리적 덕성은 신뢰할지언정 그 집합체의 도덕성까지 믿어서는 안 된다. 시민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는다는 영국경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휘두르다 1986년 국가기소청(Crown Prosecution Service) 창설로 기소권을 검찰에 넘겨주었다.

하지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가 필요하다는 국가 기소청의 주장은 거부되고 수사와 기소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누가 더 선한가’의 문제가 아니고 ‘누가 더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경찰이 아무리 탈탈 털어 수사해도 검찰이 영장청구권으로 견제하면, 누구도 구치소에 보낼 수 없고, 통화내역 조회도 안 되고 실오라기 하나도 압수할 수 없다. 반면 검찰수사에 대한 견제는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그런데 경찰과 검찰이 수사지휘관계로 협력한다면?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간신히 조직을 분리시키고 권한을 나누었는데, 그들이 너무 친하게 지낸다면? 이것 또한 패착이다. 직접수사를 하는 경찰과, 체포·구속, 압수수색 등 영장 청구권을 독점하는 검찰이 친근하게 협조하고 발맞춘다면 수사는 미끄럼이지만 인권은 가시밭길이다. 형사사법기관은 사법절차에서 서로 견제할 수 있어야 통제가 가능하다. 밖(외부기관 통제)에서는 들여다봐야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최근 언론에서 대검찰청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은 형사사법구조를 복싱에 비유하며 “청코너에 경찰이 있고, 홍코너에 피의자가 있으면, 검찰은 링 위에서 레프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역시 명석한 검찰이다. 그런데 정확한 공식을 엉뚱하게 대입해서 오답을 쓰고 말았다. 진정한 레프리가 되려면 개별선수의 인파이팅이나 아웃파이팅 스타일에 관심 갖지 말고 공정하게 경기만 진행하자. 검찰이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가지려는 것은, 링 위의 ‘레프리’가 청코너 뒤쪽에서 의자와 수건을 들고 선수(경찰) 코치를 겸하겠다는 속셈일 뿐이다.

레프리 권한은 영장 청구권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이제 링 위에서 챔피언 트로피 들고 생색내기 그만하고, 공정한 레프리로서 명예회복에 나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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