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섬유도시 대구의 현주소 <5·끝] 쇠락한 섬유패션산업 재기 방안

  • 손선우 서민지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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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02   |  발행일 2019-05-02 제17면   |  수정 2019-05-02
“전문연 자체가 존립위기…경쟁시켜 성과따라 통폐합해야”

대구 섬유업계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빠졌다. 지역 수출의 절반에 육박하던 직물 수출은 10%를 간신히 넘는 수준으로 떨어졌고, 중소 섬유업체 지원을 위해 설립된 전문생산기술연구소(이하 전문연) 3곳은 정부 연구개발(R&D) 존립 위기에 처했다. 설립 취지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보조금 사업의 결과물은 낙제점에 가깝다. 게다가 섬유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반세기가 지나도 개선되지 않았다.

죽어가는 섬유산업을 되살리기 위해선 전문연의 통폐합을 재도약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경욱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장(51)과 안철우 전 경북대 상주캠퍼스 패션디자인학부 외래교수(54·업계 20년 경력),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58), 정문화 한국실크연구원 융합신소재연구팀장(43)으로부터 쇠락한 대구 섬유의 부활을 위한 전문연 통폐합과 관련한 조언을 들어본다.

▶전문연 통폐합은 가능한가.

△박경욱 지부장(이하 박)= “2010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전문연 통폐합을 추진한 적이 있다. 지역 의견을 모아달라는 조건에서 섬유 관련 정부출연연구원을 적극 검토했다. ‘섬유기술융합연구원’이란 가칭도 붙었다. 하지만 통폐합은 실패했다. 타 지역 전문연을 아우르는 출연연 설립을 요구한데다 업계에서 영향력 감소를 우려해 출연연 본부를 대구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전문연은 업계가 출자해 산업부 장관이 허가하는 방식인데, 대구의 3개 전문연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부동산 등을 다 출연해줬다. 각종 운영비 지원 등을 위해 조례도 제정했다. 전문연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기형적이다. 게다가 설립 취지인 중소기업 지원 기능은커녕 자립도 안 되고 있다. 패션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보조금 사업인 현행 섬유패션 활성화 사업의 일몰제로 지난해 사업비 지원이 중단되면서 연구과제중심제도(PBS) 의존은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PBS 수주를 놓고 정부 출연연과 경쟁해야 한다. 통폐합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따질 시기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 통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광현 사무처장(이하 조)= “‘통폐합을 할 수 있다’를 따졌던 때와 ‘통폐합을 해야 한다’는 지금은 입장이 다르다. 전문연 자체가 존립 위기에 처했다. 조직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경영 수익 구조 등이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살기 위해서는 통폐합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고, 통합에 대한 지역사회와 언론의 압력도 있다. 이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통폐합의 조건은 나아졌다. 하지만 통폐합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적으로 민간 연구소로 돼 있고, 이사회에서 동의를 해야 한다. 법률을 개정한다면 산업부가 개정안을 올리더라도 국회에서 법률을 개정할 것인가의 문제도 남아 있다.”

▶통폐합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정문화 팀장(이하 정)= “과거 대구 전문연 3곳만 통폐합을 한다는 얘기가 나왔을 땐 일부 찬성했다. 섬유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를 두고 각 전문연의 분야가 나눠져 있을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각 분야가 뒤섞여 있다. 특히 다이텍은 거의 모든 분야를 다 한다. 실크산업만 놓고 봤을 때 인프라는 한국실크연구원보다 다이텍이 더 잘 돼 있다. 그게 문제다. 다이텍은 모든 섬유 분야를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통폐합에 반대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섬개연과 패션연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있어 통폐합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전문연마다 온도차가 있다. 의견 조율이 안 되는 상황에선 7개 전문연 통폐합에 대해 부정적이다. 섬유 관련 7개 전문연 가운데 가장 큰 곳이 대구에 다 쏠려 있다. 통폐합을 통해 지역 섬유산업에 파급효과가 발생하는 게 가시적으로 보여진다면 다른 지역의 전문연도 흡수될 것이다.”

△안철우 전 외래교수(이하 안)= “통폐합에 앞서 각 전문연을 경쟁시켜야 한다. 5년 뒤 성과에 따라 전문연을 통폐합시킨다는 어젠다를 던져줘야 한다. 그래야 도태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내부적으로도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다. 통폐합에 대해서도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통폐합에만 매달리면 동력 자체가 상실된다.”

△박= “운영 정상화를 위한 각 전문연의 내부 개혁은 불가능한 상태다. 제도적 개혁을 할 수 있는 정부 출연연으로 가닥을 맞춰야 한다. 어느 정도 예산 확보를 담보하자는 뜻이다. 전문연은 지자체 지원 외에는 특별히 담보되는 것이 없다. 대구지역만의 전문연 통합은 말이 안 된다. 7개 전문연의 통합이 맞다.”

▶통폐합하면 뭐가 달라지나.

△박= “대구에 있는 섬유노동자 3만명 가운데 4대 보험 미가입, 퇴직금 미수령, 최저임금 미달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한다. 업계에 예산을 지원해주면 생산이 향상됨에 따라 고용창출이 일어나거나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다단계 하도급구조에서 패션·봉제 원도급 오너만 배를 불리고 있다. 통폐합을 통해 이사회 구성이 개선된다면 예산 배분이나 사업 집행의 효율성은 완전히 달라진다. 수혜 대상자가 달라지는 것이다. 1%를 위한 지원이 아니라 99%를 위한 정책지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통폐합은 산업 발전과 종사자들, 시민들을 위해 도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 “전문연이 가진 가장 중요한 문제는 헤게모니를 누가 쥐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사회 문제, 지원되는 사업비의 배분 문제 등이 생긴다. 또 기관별로 R&D 영역 중복 침범 문제도 있다. 오히려 정보에 대한 공유, 융합기술 이런 쪽으로 파생될 수 있는 내부 R&D도 많이 나올 수 있다. 전반적으로 산업 전체에 미치는 섬유 소재, 섬유 기술 연구가 체계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통합되고 난 후 이 모든 것이 명시적으로 되는 것이다. 그간 전문연은 예산이나 감사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예산의 규모도 적었고 원격지에 있고, 출연연에 비해 배제되는 쪽으로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통합이 되고 덩치가 커지면 외형이 달라져서 감시 등이 활발해질 것이다. 그간 치부를 드러내는 형태로 통합이 되면 해결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통폐합 이후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안= “지역 섬유패션산업이 쇠락하는 이유는 지역에서조차 일류로 평가받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해외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만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간 열어온 패션쇼는 국내 섬유산업의 구조에서 아무런 이득이 없다. 국내 패션쇼에서 선보인 의류는 산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패션쇼에 선보여진 의류가 기성복으로 만들어지는 구조는 파리나 뉴욕에서나 먹힌다. 파리·뉴욕 패션 바이어들은 패션 전문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정부나 지자체가 프레타 포르테(기성복 패션쇼)가 아닌 패션디자이너 개인의 예술을 지원해 온 것이다. 대구 섬유패션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통폐합된 전문연이 SPA(제조유통 일괄형)를 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 자라와 H&M은 혼자서 할 수 없는 형태다. 패션산업은 생산과 기획 등이 전문적으로 분화돼 있다. 협동조합 형태로 SPA를 한다면 신진 디자이너도 육성할 수 있고 섬유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파리나 뉴욕, 이탈리아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 인도 등에 우리 제품을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

△조= “통폐합된 전문연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문제인 것 같다. 기존의 기능을 유지할 것인가, 더 추가할 것인가. 전문연 이사회 구조도 어떻게 바꿀 수 있을 지 고민해봐야 한다. 통합이사회를 구성하든가 정부 출연연으로 국가과학기술연구소가 이사회가 돼 젊고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들이든지. 외부적인 요인에 기대는 방법이 슬프지만 이것밖엔 없다.”

△박= “전문연이 쌓여있는 노하우가 있고 상업화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SPA를 한다면 원천기술 개발에 상업화까지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정= “현재 전문연은 예산 부족으로 못하는 것들이 많다. 출연연이 된다면 이 문제를 해소하고 보유한 설비를 가동하는데 드는 적자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업계끼리의 마찰 등 불협화음을 해소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정리=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서민지 수습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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