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제이니 존스’(데이비드 M. 로젠탈 감독·2010·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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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6   |  발행일 2019-04-26 제42면   |  수정 2019-04-26
“내 삶에 와줘서 고마워”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제이니 존스’(데이비드 M. 로젠탈 감독·2010·미국)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제이니 존스’(데이비드 M. 로젠탈 감독·2010·미국)

며칠 앓았다. 과로였다. 독한 몸살을 앓으며, 오래 전 책에서 읽은 내용을 떠올렸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이따금 말에서 내려 지나온 길을 바라보며 멈춰 선다고 한다. 이유는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였다. 지금 내게 하는 말로 들렸다. 아픔이나 고난 같은 문제의 개입이 없으면 멈출 줄 모르는 것이 우리다. 그러기에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하는 문제나 아픔을 ‘위장된 축복’이라 하는 모양이다.

영화 ‘제이니 존스’는 아빠와 딸의 이야기를 매력적인 음악 속에 담아낸 영화다. 한물간 록스타 에단은 다혈질에 사고뭉치다. 술과 투어의 나날 속에서 정상적인 생활은 꿈도 꾸지 않은 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불쑥 한 여인이 나타나 딸이라며 두고 간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옛 연인이다. 딸이 있을 리 없다며 한사코 부인해보지만 별수 없다. 여인이 마약중독치료를 받으러 가야 한다며 맡긴 딸은 13살의 제이니 존스다. 자기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에단은 꼼짝없이 제이니를 떠맡게 된다. 자신의 투어 공연에 제이니를 데리고 밴드와 함께 떠난다. 철부지에 사고뭉치인 아빠와 달리 제이니는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소녀다. 자신의 아픔과 외로움을 음악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아이다. 아빠를 닮아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딸의 존재가 당황스럽고 귀찮기만 하던 에단은 사고를 치고, 밴드마저 해체된다. 하지만 착하고 순수한 딸 앞에서, 사고뭉치 에단은 자신을 돌아보며 조금씩 변해간다. 어린 시절,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겪었던 그는 비로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몇 년 전 이 영화를 봤을 때 참 좋았다. 명작은 아니지만, 마음에 쏙 들었다. 수많은 영화들을 혼자서 섭렵하며 외로움(?)을 달랠 때였다. 혼자 슬픔을 삭여내는 제이니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본 건지도 모르겠다. 내면의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어른스러운 10대 소녀, 그녀가 철부지 아빠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빠의 삶을 바꿔놓게 되는 이야기였다. 딸을 받아들일 줄 모르던 아빠는 마침내 뒤늦게 만난 옛 연인에게 말한다. “제이니를 내 삶에 들여보내줘서 고마워”라고.

주인공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들이 특히 좋았는데, “아무 것도 생각 안 나. 머릿속은 온통 잿빛”이라고 노래하던 에단이 마지막에 딸과 함께 노래한다. “허리케인이 몰려와도 물러서지 마. 거센 강줄기 속에서도 사랑을 찾아, 그 사랑을 나누자”라고 함께 노래하는 마지막 장면이 아름답다. 제이니가 부른 노래는 아일랜드 가수 젬마 헤이즈가 작곡했고, 에단이 부른 노래는 ‘클렘 스나이드’의 이프 바젤리가 만들었다. 영화 중간 중간에 흐르는 노래는 영화 전개에 알맞은 가사로 영화의 내용과 인물의 감정을 풍부하게 한다.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젬마 헤이즈의 ‘Waiting for you’의 매력적인 선율이 영화의 여운을 더한다.

영화에서 유독 돋보이는 것은 제이니 역의 아비게일 브레스린이다. 6살에 ‘미스리틀선샤인’의 올리브 역으로 “햇살처럼 반짝이는 연기”라는 찬사를 받은 그녀가 10대 소녀가 되어 선한 외모와 함께 진실된 연기를 선보인다. 이번에는 직접 기타도 치며 노래도 불렀다. 약간 서툰 기타 솜씨와 노래가 풋풋한 매력을 안긴다. 각본과 감독을 겸한 데이비드 M. 로젠탈 감독의 경험을 소재로 했다고 하는데, 아마 제이니가 자신의 분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만큼 록밴드, 투어 등등 환락(?)의 세계를 목격하는 10대의 순수한 모습이나 대응을 자연스레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에단 역의 알렉산드로 니볼라는 오우삼 감독의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의 동생인 사이코패스 역할을 했던 연기파 배우다.

2012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경쟁작으로, 어딘가 닮아보이는 아비게일 브레스린과 알렉산드로 니볼라의 선한 눈빛과 미소가 보기 좋다. 음악이 있어 좋고, 해피엔딩이라 좋다. 마음이 지쳤거나 메말랐을 때 보면 좋을, 잔잔하고 따뜻한 소품이다. 인디언들처럼 달리던 길을 잠시 멈춰 서서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려줄 때 보면 좋을.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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